brunch

매거진 3초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 universal seoulite Sep 19. 2023

신분증 주시겠어요?

일요일 아침은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날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 단정하게 차려입고 나는 마트에 갔다. 마트에 가는 거지만 단정하게 입고 가는 게 좋다.


예쁘게 보여서 손해 볼 건 없고 백의의 민족으로서 일종의 품격이란 것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냥 나만의 개똥철학이다.   

   

필요한 것들을 장바구니에 담은 다음, 장보기의 제일 마지막 코스이자 난코스인 맥주 코너로 향했다.


종류도 많지만 예쁜 디자인이 많아서 하나씩 공들여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림을 보면서 어떤 맛일지 상상하다 보면 고작 맥주캔 하나를 골라서 자리를 뜨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오늘은 새로 나온 맥주캔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공들여 골라 담고 계산대로 향했다. 별생각 없이 카드를 꺼내 계산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난데없는 질문 공격이 들어온다.

      

“신분증 보여주실래요?”     


‘신분증이요오오오???’ 지갑에 신분증이 있었던가 싶으면서도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신분증이라니요?? 제가 그렇게 어려 보인단 말씀입니까아아아아꺅?! 대체 몇 살이나 역행한 것입니까 제가??????


너무 신이 난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신분증을 꺼내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건넸다.  


'어머, 놀라셨죠 선생님? 그래요. 저 나이 많아요. 큭큭'

    

이 마트를 수십 번은 더 왔을 텐데 한 번도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이 분도 아시안계, 추정컨대 중국계분으로 보이는데 제 나이를 못 알아보신다구요옷??     


이건 필시 내가 회춘하고 있는 증거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합리적인 추론 아닙니까, 여러분? 건강한 식생활과 조금일지라도 운동을 매일 빼먹지 않고 하겠다는 의지로 게으름을 이겨낸 보람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 젊음을 되찾을 수 있게 선생님께서 방금 제게 격려의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욱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신나는 발걸음으로 춤을 추듯 집에 돌아와 마신 맥주는 말해 무엇합니까. 젊음의 맛, 꿀맛 그 자체이지요.


저와 함께 운동하시죠!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아무개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