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천 | 굿모닝인천 8월 Vol.368
음악은 감각이고 기억이다. 그 시절, AFKN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로큰롤이 가슴에 훅 파고들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누구에게나 순수한 열정으로 빛나던 시절은 있다. 그 꿈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인천시 공무원 음악동호회 ‘공무수행 밴드’가 창단 20주년을 맞았다. 다가올 날도 지나온 날처럼, 가슴 뛰리라. 뜨겁고 거침없이, 인천시 공무원의 특별한 ‘공무수행’은 계속된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ㅣ 사진 임학현 포토디렉터
‘남들이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전부다.’ 그에겐 기타가 세 대 있다. 가장 사랑하는 건 스무 살 때 ‘노가다’를 해서 생애 처음 마련한 기타다. 저렴하고 성능이 좋지 않은 데다 세월 따라 망가졌지만, 지문이 닳도록 매만진 그 기타를 죽는 날까지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음악이 누군가에겐 ‘인생’이다.
최광진(55) 씨는 인천시 공무원이다. 젊은 날에는 인하대학교 밴드 동아리 플라곤Flagon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한 유명 가수의 세션으로도 활동했다. 음악가로 살 줄 알았는데 공무원이 됐다. IMF의 파고를 넘으며 삶에 적당히 타협하기를 택했다. 그래도 가슴 저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을 어찌할 수 없었다. ‘공무수행 밴드’에 들어갔다. 기타를 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이들과 울고 웃은 세월이 20년이다. 돌아보면 함께라서, 하루하루가 빛났다.
2024년 7월 19일, 깊어지는 밤, ‘둥둥’, ‘두 두두 두’, 도심 지하 깊숙이에서 로큰롤이 울려 퍼진다. 부평의 음악 클럽 ‘락캠프Rockcamp’, 인천시 공무원 음악동호회 공무수행 밴드의 20주년 기념 공연이 무르익었다.
공무수행 밴드 1기(보컬 최유리·오경수·유성한, 기타 최광진, 베이스 성시윤, 드럼 서정하, 키보드 박정숙), 2기(보컬 정라영, 기타 서민국·차지수, 베이스 김유민, 드럼 김귀환), 3기(보컬 강범령, 기타 임우람·차정우, 베이스 박재현, 드럼 설원근)의 열정적인 무대로 한여름 밤이 더 후끈 달아오른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 영화 ‘라디오스타’의 OST ‘비와 당신’, 인천 사람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연안부두’에 이르기까지…. 음악적 시대와 장르는 다르지만 록 스피릿으로 뜨겁게 뭉친 20년 세월과 ‘인천’이란 이름으로 모두 하나가 됐다.
시곗바늘을 정확히 20년 전으로 되돌린다. 2004년 7월 19일, 공무수행 밴드가 창단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인천시 공무원들이 의기투합해 ‘제대로 판을 벌이기’로 했다. 그해 달력을 한 장 남기고 시청 대강당에서 첫 공연을 열었다.
“처음 무대에 선 순간이 지금도 생생해요. 너무 긴장해서 관객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만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죠.” 처음 그것은 설렘이자 떨림, 후엔 그리움이다. 유성한(44) 주무관이 옅게 미소 짓는다. 수줍음 많던 스물다섯 꽃미남 보컬은 어느덧 세상을 알아가는 중년의 사내가 됐다. 하지만 무대에 오를 때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밴드는 20년을 서로 부대끼며 100회 이상 공연을 함께해 왔다. 사회 그늘진 곳을 밝히며 위문·자선 공연을 하고, 지역 축제가 열리는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같은 큰 무대도 거침없이 누비고 뜨겁게 달구었다. 이 모든 무대의 주인공은 오롯이 관객이고 시민이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우리는 광대다’라고 되뇌곤 합니다. 그 순간만큼은 한 개인도 공직자도 아닌,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광대일 뿐이죠.” 드러머 서정하(57) 씨는 올해로 공직 생활 31년 차를 맞았다. 함께할 시간이 이제 3년 남짓 남았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 얼마나 멋진가요. 음악으로 하나 되는 짜릿함, 그 맛에 공연을 해요.” 이 타고난 ‘공무원 딴따라’는, 마지막까지 드럼 스틱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만났지만, 동료이기보다 친구다. “참, 많이도 싸웠죠. 원수처럼 서로 달려들다가, 진짜로 당분간 떨어져 있기도 했어요. 그러다 열정과 정에 이끌려 다시 만나고, 너무도 당연하게 무대에 함께 서고….” 서 씨의 말에 오랜 벗들이 웃는다.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어요. 돌아보면 매 순간 행복했습니다. 공무수행 밴드는 선배님들이 남겨주신 유산이에요. 앞으로 20년,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지켜가야죠.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그리는 최유리(52) 공무수행 밴드 회장의 얼굴이 젊은 날처럼 싱그럽다.
무대 위 공연도, 인생도 끝은 없다. 살아 있는 매 순간 가슴이 뛰기에. ‘최고의 날’은 어쩌면 아직 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인천시 공무원의 무대 위 특별한 공무수행은 계속되리라. 생애 빛나는 시절 즐겨 듣던 음악처럼, 매일이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