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인천 | 굿모닝인천 12월 Vol.372
오래된 창고의 낡은 문이 삐걱거리며 흘려보내는 시간의 떨림,
일상을 스쳐 지나가는 열차가 퍼뜨리는 금속성 메아리.
이 모든 소리가 도시의 피부 아래 스며들어
매 순간 도시의 숨결을 만들어낸다.
벽돌 틈에 새겨진 오래된 균열 속에도,
항구를 떠나는 배가 남긴 파도의 리듬 속에도,
사람들의 발걸음과 함께 쌓여가는 하루의 흔적이 있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도시와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오래된 언어다.
아침을 여는 설렘, 정오의 분주함,
늦은 오후의 느릿한 고요.
모든 순간이 소리에 스며들어
도시의 틈새를 메우고,
시간의 결 위에 또 하나의 흔적을 새긴다.
소리는 보이지 않아도 들린다.
멀어져도… 마음에 남는다.
일상의 소리 골목길
찬 새벽 공기가 어둠을 서서히 밀어내는 골목.
채소 트럭의 경적 소리가 담벼락을 타고 울려 퍼진다.
“무 있어요, 배추 있어요!”
돌담을 스치는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잠든 골목을 깨운다.
일상은 소리로 깨어난다.
경적 소리에 드르륵 열리는 창문,
트럭에 실린 채소를 고르는 분주한 손길,
고무 대야 속에서 굴러다니는 감자의 둔탁한 울림,
졸린 눈으로 엄마 손을 꼭 잡은 아이의 작은 발소리.
이 모든 소리가 아침을 열고,
골목에 하루의 온기를 퍼뜨린다.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하나, 둘, 셋!”
창영초 야구부가 외치는 힘찬 목소리와
모래 위를 박차는 운동화의 리듬이
골목 끝까지 퍼져 활기를 더한다.
배다리 헌책방 창문 너머로는
‘치익, 치익~’ 난로 위 주전자가 뜨겁게 김을 내뿜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고요를 가른다.
낮은 목소리로 읽히는 책 한 구절은
오래된 기억처럼 머물다, 귓가에 조용히 스며든다.
매일 조금씩 변해가는 삶,
그 순간마다 들려오는 소리는
누군가의 하루를 깨우고, 누군가의 마음을 감싸며
골목 구석구석에 깊이 머문다.
자연의 리듬
바다와 섬
새벽의 선착장은 어둠을 깨우는 소리로 가득하다.
‘부우우~웅’ 배의 모터가 물살을 가르고,
‘척척척~’ 파도가 선체를 두드린다.
그 규칙적인 울림 속에는 바다의 고단한 숨결과
삶의 치열한 무게가 흔적처럼 새겨져 있다.
낮고 거친 어민들의 목소리,
삶을 짊어진 작업 도구의 덜컹거리는 소리,
고무장화가 바닥을 스치는 둔탁한 울림.
이 모든 소리가 어둠을 헤치고 서로 얽히며
바다의 아침을 깨운다.
바다 너머, 머나먼 항해 끝에 다다른 백령도,
그 섬의 콩돌해안.
‘솨아~’ 물결이 둥글고 매끄러운 콩돌을 어루만진다.
‘콰르르~’ 거센 파도가 묵직한 진동을 남기며 부딪힌다.
파도는 물러났다가도 다시 밀려오지만,
단 한순간도 같은 리듬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자연은 층층이 시간을 쌓아,
깊숙이 비밀을 새겨 넣는다.
섬의 소리가 고요를 흔들고,
섬은 그 숨결로 하루를 잇는다.
활기와 온기
시장과 사람들
포구의 새벽 시장은 분주함으로 깨어난다.
“싱싱한 생선이에요! 하나 더 얹어드려요!”
흥정 소리가 물기 어린 허공으로 치솟는다.
훅 끼치는 비릿한 냄새 사이로 갓 잡아 올린 날것들이 파닥거린다.
‘쓱싹~’ 날카로운 칼이 도마를 스치며 경쾌한 울림을 남긴다.
그 안에는 어부의 땀과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정이 담겨 있다.
방금 건져 올린 생선이 가득 담긴 상자 위로 바쁘게 오가는 손길,
저울 위에 생선을 올릴 때마다
삶의 무게 또한 소리 없이 더해진다.
‘드르륵, 드르륵~’ 수레를 끄는 소리,
무엇을 살지 고민하는 어머니들의 담담한 대화.
그 발걸음과 속삭임 사이로,
오늘의 식탁을 채울 따스한 온기가 스며든다.
시장은 활기로 넘치면서도
문득 작은 고요를 품는다.
멈춘 칼끝에서 또르르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얼음 틈새를 스치는 바람이 생선의 냉기를 감싸며 지나간다.
소리와 냄새, 손길과 시선이 어우러지고
사람과 사람, 삶과 시간이 교차하는 공간.
그 살아 있는 풍경 속에서,
삶은 오늘도 묵묵히 흘러간다.
시간의 고요
비움의 공간
고요한 숲길 끝에 다다르면,
산사가 저녁노을 속에 고즈넉히 안겨 있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스님의 염불 소리가 산허리를 타고 퍼져 나간다.
그 소리는 마음의 결을 다독이며,
시간마저 잔잔히 멈추게 한다.
‘뎅~뎅~뎅~’
새벽 도량석 소리는 어둠을 깨우는 첫 울림이다.
고요를 가르며 퍼져 나가는 맑은 소리가
산사에 아침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잠들어 있던 새들이 날갯짓을 시작하고,
대웅전 마당에는 하루의 생기가 살며시 내려앉는다.
산사의 풍경은 소리로 물든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의 낮은 속삭임,
작은 연못에 떨어지는 물방울의 울림이
경내에 잔잔한 파문을 그린다.
긴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는 그 모든 소리를 안고,
말없이 시간을 이어간다.
비움으로써 마음을 채우고,
비어 있기에 충만함을 깨닫는다.
산사의 고요 속에서,
시간은 느리게, 그러나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흘러간다.
소리와 여운
도시와 기억
소리는 흘러가지만, 마음 깊은 곳에 흔적을 남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손에 닿지 않아도,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 우리를 감싼다.
느리지만 단단히 흐르는 시간.
비움으로써 채워지고, 멈춘 듯 이어지는 마음.
그 고요와 활기 속에서
삶은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이어간다.
소리를 따라가면 누군가의 하루와 만나고,
누군가의 꿈을 듣게 된다.
당신의 인천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가?
그 이야기는 어떤 소리로 당신에게 남아 있는가?
2024년 지금, 우리는 이 도시의 시간을 살아간다.
기억과 풍경이 어우러진 시간의 결 위에
새로운 하루를 그리고,
그 하루는 또 다른 내일로 이어진다.
※ 안병진 경인방송 PD는 인천의 소리를 사랑으로 품고 기록해 왔습니다. 잊혀가는 도시의 기억을 되살리는 그의 섬세한 작업은 우리에게 따뜻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기사에 첨부된 QR 코드를 스캔하면, 그가 채집한 소리를 듣고,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소리 제공 경인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