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으로 바다에 빠지고 싶은 기분과 40킬로 캐리어

호주, 17살

by Hyun

오늘은 별로 재미없는 주제다. 여행을 하면서 정말로 ‘혼자’서 돌아다니다 보면, 상당히 초라해지는 순간들이 아주 종류별로 생긴다. 곤란한 지경이 아니더라도, 에어팟이 꺼졌다거나 발을 헛디뎠다거나 하기만 해도괜히 -외국이기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새빨개지고 걸음이 빨라지는 그런 상황 말이다. 이렇게 글로 써놓으면 좀 더 미화되어 보일 수도 있겠는데, 분명히 말해 놓자면 당사자는 전혀 낭만적이지가 못하다. 시드니에 있은 지 이 주 정도 후에 나는 근사한 화장실과-무려 천장에 유리 창문이 있어서 씻을 때마다 샴푸 광고의 모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화장실이다- 근사한 부엌이 딸린 글레베 숙소에서 돈이 다 떨어져서 40대의 독신 여자와 함께 쓰는 집으로 숙소를 옮기게 되었다. 주로 여행을 시작할 때 숙소를 제법 합리적인 가격으로만 예약해 놓기 때문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두 번째 방으로 옮기는 일이 생각보다 아주 힘들었다. 땀이 뻘뻘 날 정도로. 그날은 특히 폭염 주의보가 있던 날이어서 그랬던 건지, 늘어난 옷들로 (한 벌도 버릴 수는 없다) 가득 찬 40킬로짜리 캐리어가 무거워서 그랬던 건지 몸이 축축 늘어졌다. 하필 사용하던 숙소가 그만둔 한국의 고등학교 등굣길- 교복을 입고 등교하다 보면 눈밭에 여자애들이 족족 넘어져서 발에 금이 간 사람도 있었다- 만큼 가파른 언덕 밑에 있어서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내 몸만 한 검은색 가방을 끌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을 오르면서 동네 주민들의 안타까움에 의문스러움이 더해진 눈길을 끌게 된 나는 창피하기도 하고 초라하기도 해서 괜히 더 당당하게 행동하려고 애를 썼다. 정원에서 하얀 꽃나무를 다듬던 아저씨가 도와주냐고 물었지만 오기가 생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사실은 진짜로 탈진할까 봐 겁이 났다- 웃어 보이고 다섯 걸음에 한 번 물을 들이켜면서 등반을 마쳐 버스를 타고야 말았다. 과장하지 마!라고 소리치면 할 말 없지만, 그날은 정말 택시비를 안 내려고 시작한 등반이었기 때문에 버스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내 기분을 아는 사람은 절대 나를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갑자기 생각난 책이 하나 있었는데, 초등학교 영어 시간에 읽었던, 난민 아이의 자서전이었다. 사막을 횡단하던 도중에 길을 잃게 되어 포기하려던 도중에 어떤 아저씨가 그에게 목표를 정해놓고 저 바위까지만, 나무까지만 가보자 하는 식으로 조언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내 생각에 그는 -애초에 그들의 절박함에 내 경험을 들이대는 것도 말이 좀 안 되기는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것도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한국의 여고생은 이런 내용을 읽고 10년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뜬금없이 호주에서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생각해 완전히 똑같잖아, 하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문제의 버스 정류장

또 한 번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행색으로 페리(배)를 타게 되었다. 해변에서 놀다가 건너편으로 돌아가려고 탔던 거였는데, 그때 나는 바다에 들어갔다 나와서 모래가 잔뜩 묻은 머리카락에 스카프를 묶고 비키니 위에 다 비치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렇지만 야외석에 앉지 않으면 바깥이 잘 안 보이기 때문에 괜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억지로 꾸벅꾸벅 졸면서도 -날씨도 안 좋았다- 차가운 스틸 의자에서 버티고 있는데, 완전히 파티 차림인 내 또래 애들이 근사한 몸매에 얼굴을 하고서 몰려나왔다. (그걸 보고 나는 너무 기분이 우울해져서 바다에 빠지고 싶어 졌다) 내 나이 또래의 여자애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안 그래도 종종 초라해지는 내 짧은 머리카락이나 가슴은 그런 상황에서 더 강조되어 보이는 느낌이다.

풍성한 금발에 실크 원피스를 입고 음료를 마시는 애들과 멋진 미소를 보이는 잘생긴 남자애들 사이에서 나는 뒤죽박죽이 된 천 가방을 끌어안고, 이어폰을 끼고서 도착할 때까지 애써 자는 척을 해보았다. 써놓고 나니 내 첫 번째 글과 좀 상반되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항상 겉모습에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게 맞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더군다나 나에게는 돌아가서 따뜻한 물로 목욕할 수 있는 ‘근사한 화장실’과 어제 먹다 남은 음식을 먹어치울 수 있는 ‘근사한 부엌’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쪼록 괜찮았다. 어쩌면 그 애들은 그런 화장실은 가지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바다에 빠졌으면 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때 수영했던 해변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언젠가 또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아주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아마 이 기억이 떠올라서 더 유쾌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