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미술관의 경비원

17살, 시드니

by Hyun

시드니 한복판에는 아주 좋은 미술관이 있다. 기억에만 의존해서 글을 적다 보면 흐릿하거나 정확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 미술관만큼은 장면과 색까지 기억난다 (아마도 미술관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알록달록한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일 여유로운 낮에 호주의 20세기 여성 화가들의 특별 전시에 갔었다-이유는 상설전을 관람하러 갔다가 뿔테 안경을 쓴 곱슬머리의 멋쟁이 여자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추천해 주었기 때문, 그녀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줄무늬 양말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티켓을 끊어 버렸다.

미술관 안의 식당에서 3달러짜리 팬케이크를 먹고 어머니의 모습부터 자신 안의 예술적인 감 같은 것을 햇빛이 잘 드는 일상 풍경에 예쁘게 집어넣은 그림들을 쭉 보다 보니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역시 한국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점은 그림과 함께 중간중간 사람들이 설치된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작은 목소리로 옆사람과 토론한다는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열성적인 예술가들 사이에서 핸드폰을 꺼내기가 뭐해진다- 점이다.

아주 마음에 드는,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건너편을 바라보는 그림 앞에서 금발머리 남자아이가 빳빳한 셔츠를 입고 안내 책자에 포함되어 있는 색칠놀이 페이지에 열심히 뭔가를 스케치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별 생각 없이 옆에서 그림을 바라보던 여자에게 그 아이에 대해 미래에 화가가 되겠는걸요, 하고 말을 건네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아이의 어머니였다. 흰 원피스를 입고 역시 금발인 그녀는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하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사방에 파스텔톤의 그림으로 둘러싸여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들을 감상하는 모자를 보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평화롭게 아주 어린 아들과 각자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가족적인 주말 풍경으로 가득 찬 그림들 사이에서 꼭 무슨 기획된 전시의 일부로 느껴지기도 한다.

전시장 끝쯤에 가니 현대로 와 상당히 냉소적으로 변한-투지를 드러낸다고 해도 좋겠다- 도자기들과 심플한 라인들의 작품이 많이 걸려 있었는데, 감상에 방해되지 않는 정도의 클래식 음악이 그곳에만 틀어져 있었다. 조금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진 나는 용기를 내어 긴 스툴에 앉아서 리듬을 타는 경비원에게 이 음악은 전시를 기획한 사람이 틀어놓는 것이냐 물었고,

그는 조금 생각하다가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음악이 분위기를 좀 더 ‘마법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조금 후에 다른 쪽의 그림을 보던 나에게 그가 다가와서 시드니 출신이냐고 물어와서 대화를 나누며 나는 그저 여행객, 그는 10년간 호주에서 일한 인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흥미롭게도 시드니라는 도시가 자기 자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 굉장한 도움을 준다고 말했고, 오래 그곳에서 산 사람답게 나에게 별관에서 진행되는 전시와 크리스마스 이브에 있을 폭죽놀이를 추천해 주었다. 차분히 말하는 그는 아주 멋이 있어 보였다. 우리는 한국의 미술관과 이곳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폐관을 알리는 벨소리에 아쉽게 작별 인사를 했다-언제나 그렇듯이 또 봐요!(see you!). 이날 저녁은 오랜만에 차이나타운의 플라스틱에 흰 쌀밥을 터질 듯이 꾹꾹 눌러 담아주는 차이니즈 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