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단상에서 언급되는 산타클로스

17살, 시드니-step up and speak your mind

by Hyun

도시에서 외로워지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찾아다니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 자연스레 끌리게 되는데, 딱히 갈 곳이 없어서 항상 가던, 큰 공원 옆에 있는 미술관에 간 날에 여유롭게 밖으로 걸어 나왔다가 아주 큰 나무 밑에 사람들이 복작복작 모여서 뭔가를 의논하고 있는 광경 -도쿄에 있을 때 본 야구 동호회의, 너무나 진지해서 마치 무슨 중세 마녀들의 집회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떠올리게 했다-을 만나게 되었다. 고목 밑의 작은 철제 단상에 올라간 할아버지는 상기된 얼굴로 주먹을 휘두르며, 잔디밭에 띄엄띄엄 앉은 청중들에게 뭐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자세히 들어 보니 ‘산타클로스는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아주 심각한 태도로 연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조금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팔짱을 끼고 서서 그의 ‘연설’을 듣고 있었지만

혼자 앉아 있던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마치 수업시간에 딴청을 피우는 학생을 꾸중하는 듯이 나에게 어서 자리에 앉으라고 말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이상한 모임에 동참하게 되었다.

단상 위의 할아버지가 꼬깃꼬깃한 노트를 참고하면서 명료한 목소리로 산타클로스가 실존하는 이유와

그 근거를 차근히 설명하고, 이상입니다, 질문? 을

외치자 집중해서 그의 말을 듣던 사람들은 손을 올리고 반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장면이 굉장히 생소하기도 하고 유머러스해서, 습관적으로 동영상을 찍으려고 했지만, 옥스퍼드 버금가는 학구열과 선글라스 남자의 따가운-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눈길에 그만 노트를 꺼내 들고 학생이 되기로 했다. 어떤 중년의 배불뚝이 아저씨는 화가 난 듯한 말투로 할아버지에게 이의를 제기하다 언성이 높아졌는데, 조금 언짢던 기색의 그 둘은 결국 ‘fuck you!'를 외치며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고, 가만히 토론을 듣고 있던 우리는 그들의 열정에 환호성을 보내며 박수와 야유를 보냈다. 나는 집(엄밀히 말하면 숙소지만)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목격한 열의의 토론은, 산타클로스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어쩌면 지구상에서 마지막일 순수한 ‘사람’들만의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스마트폰도, ai도 허용되지 않는 작은 공원 단상에서, 각자만의 공간에서 힘껏 준비해 왔을 구겨진 노트만을 믿고서 펼치는 열기 말이다. 전문가 따위 없기 때문에, 자신의 순서에 단상에 올라간 사람은 주어진 시간 안에 무슨 의견이든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일요일마다 진행되는 일종의 행사였는데, 꽤나 많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았다. 연설이 모두 끝나면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플라스틱 의자를 다 함께 정리하고 각자의 목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날 남은 동전을 모두 모아서 찾아간 식당의, 화려하고 투박한 가짜 크리스털이 가득 박힌 안경을 쓴 웨이트리스 아주머니도 어쩌면 커피와 빵이 담긴 쟁반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머릿속으로는 일요일에 있을 자신만의 연설을 복기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덕분에 나는 그동안에 있었을(1870년부터!) 수많은 연설자들의 주제가 무엇이었을까 상상하며 식당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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