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ea market -17살, 호주
날씨가 좋은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예쁘다’는 말을 많이도 쓴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 새빨개진 얼굴로, 가벼운 몸이든 육중한 몸이든, 열정적으로 달리기를 할 때도 ‘예뻐요!’라는 외침이 따라오고,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갔다가 몇 개 남지 않은 꽃다발을 들었다 놨다 -나는 심지어 내 집에 놓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할 때 역시 백발의 할머니가 흐뭇하게 지켜보다 ‘예쁘네요’ 칭찬해 주는 식이다. 두 번째로 시드니에 오면서 느낀 건, 큰 소리로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칭찬받는 일은 - 아직도 수줍지만 -좀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칭찬하곤 하는 것은 그 사람에 국한된 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곳 사람들은 내가 속한 장면이나 분위기, 또는 내 열정 같은 것을 때때로 웃으며 말해주곤 한다. (외국에 가서 달라진 점 같은 뻔한 얘기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조금씩 모르는 서로에게 웃으면서 칭찬을 하는 건 좋은 버릇이라고 적고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빈티지 숍의 이름은 ‘that's so mi'인데, 항상 들어가면 사장님인 중국인 노인은 작은 안경을 쓰고 구석구석 먼지를 털고 있고, 직원 -검은색 땋은 머리에 야무진 말투-은 땀범벅이 된 배낭 여행객들의 흥정을 상대하고 있다. 물론 조금 더 세련되고 정돈되어 있는 가게도 요즘은 많지만, 아마도 내가 그곳에 특별히 애정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나라 동묘와 다를 것 없이 마구잡이로 쌓여 있어도 사장님과 땋은 머리 직원이 아주 정성 들여 하나하나 관리해 주기 때문에, 샅샅이 뒤져서 마음에 드는 뭔가를 찾아내면 둘의 얼굴이 조금 놀란 표정이 되면서 ‘wow! You found it'을 외치는 걸 듣는 쾌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에는 질서 없이 보였던 물건들이 자세히 보면 각자 가진 멋이 아주 확고해서, 한번 뜯어보기 시작하면 용기를 얻고 족히 2시간을 불안불안한 선반들 사이에서 보내게 된다.
처음 갔을 때는 크리스마스이브였기 때문에 슬슬 닫는 분위기에서 작은 꽃 모양이 들어간 핑크색 목걸이를 찾았는데, 여직원은 부끄러워하면서 흥정을 시작하려는 나에게 통 크게 10달러를 깎아 주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첫 구매에 큰 할인을 받은 것이 뿌듯해서 상기된 얼굴로 웃었고, 그녀는 친절하게 나와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며 할인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아주 예쁘다고 말했다. 8천 원짜리 목걸이에 신난 내가 메리 크리스마스! 를 외치며 나오는데, 뒤돌아 걸어가는 나에게 중국인 할아버지가 -그때는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가게 주인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that's pretty on you! 하고 말해 주었다.
좀 감성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가게 이름 때문에 스스로 잘 어울리는 것들을 좁아터진 장식장 속에서 찾아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며칠이 지나서 좀 긴장이 풀리고 난 나는, 플리 마켓(벼룩시장)에 갔다가 나와 같이 혼자 온 여자가 레모네이드를 들고 티셔츠를 옆에서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을 보고 오늘만큼은 나도 누군가에게 잠깐 기분이 좋아질 만한 이유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중국인 사장님의 대사를 똑같이 써먹었다. 조금 긴장했지만 다행히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아주 고맙다고, 그렇지만 살 것 같지 않아서 만약 당신이 원한다면 가져가라며 유쾌하게 말해 주었다. 우리는 서서 조금 이야기하다가 하얀 레이스 셔츠를 입은 그녀가 어머니와 함께 건너편의 또 다른 빈티지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녀 덕분에 빨간색 치파오 원피스를 아주 싸게 살 수 있었다- 그곳으로 수다를 떨며 걸어갔다. 정말 비슷한, 밝은 인상을 가진 그녀의 엄마는 내가 그녀 나이일 때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 만큼 멋진 사람이었다. 멋진 모녀와 함께 돌아다니다가 나는 좀 쌀쌀맞은 할머니에게 두꺼운 팔찌를 흥정해서 사고, 잔디밭에서 공연을 하는 밴드의 음악을 들으면서 타코를 나누어 먹었다.
물론 호주에서 유쾌하고 꿈같은 일들만 있었다고는 못 하겠지만, 그날만큼은 아직까지도 먼저 한마디를
건넨 내가 대견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