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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중인생 Jan 09. 2022

004_[직장&] 독일 보청기 업계에서 일하기

독일 보청기 업계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들.

2022년 1월 9일.


나는 독일에서 보청기 회사에 다닌다.

다만 제조사는 아니고 보청기 제조사들로부터 제품을 떼어다가 고객에게 판매하는 리테일러이다.


거기서 난 지난 10월부터 BI 데이터 전문가로 재직 중이다.

주로 실적 관련 핵심성과지표(KPI)들을 관리하는 동시에 고객데이터 기반으로 새로운 Bullshit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아직 보청기 분야에 발을 들인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보청기 신생아지만 지금까지 재직하면서 흥미로웠던 점, 이전에는 몰랐던 점,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던 점 등에 대해 잠깐 다뤄볼까 한다.




1. 망자에게 함부로 말을 걸지 말라.


아무래도 고객 평균연령이 높다 보니(우리 회사의 경우 평균 75세 정도 된다) 광고성 우편 및 이메일이 이미 돌아가신 분들께 발송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런 경우 보통 유족들이 사망 소식을 알리며 더 이상 해당 우편 또는 이메일 주소로 광고를 보내지 말아 달라 요청한다. 그러면 우리는 해당 고객을 "비활성 고객"으로 분류하여 수신인 목록에서 제거한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 이 과정이 누락되어 고인에게 또 광고물이 발송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유족들이 매우 노여워하며 한 번만 더 발송하면 소송을 걸겠다고 경고장을 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는 최대한 방지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특정 고객을 "비활성 고객"으로 분류하는 작업은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데이터를 입력하는 사람이 더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유족에게 거듭 상처를 주지 않도록.



2. 무료청취는 많이 시켜드려라.


보청기 판매는 호흡이 꽤 길다. 핸드폰이나 랩탑과 같은 일반 전자제품과 달리, 이비인후과 청력손실 진단서부터 보청기 맞춤 테스트, 무료청취(Trial) 등 중간단계들이 많아서 고객 방문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 모든 과정을 한 세일즈 사이클(방문부터 판매까지)이라고 했을 때 가장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단계가 무엇일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무료청취이다.


청능사가 고객의 청력에 맞춰 보청기를 세팅하면 고객은 주로 1주에서 2주간 그 기기를 무료청취한다. 

보통 한 번의 무료청취 이후 구매를 결정하는 고객들이 많긴 하지만 세팅 상 문제로, 혹은 보청기 성능 상 문제로 재청취를 요구하는 고객들도 꽤 있다.


여느 B2C 업계가 그렇듯 보청기 업계에서도 평균판매가(ASP)가 매우 중요한 핵심성과지표 중 하나인데,

흥미로운 점은 재청취를 많이 하는 고객일수록 평균판매가가 높다는 것이다!


사실 기존 기기가 잘 안 맞는 경우 좀 더 좋은 기기를 테스트해보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이긴 하지만, 

반대로 고객들로 하여금 더 성능 좋은 고가의 제품을 한번 더 테스트해보도록 능동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면 평균판매가는 상승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 일장일단이 있듯이 고객이 여러 번 무료청취를 한다면 안 그래도 길어서 아쉬웠던(?) 세일즈 사이클이 더욱더 길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러한 변수들을 잘 고려하여 밸런스를 맞춘 후 매장들에게 명확한 영업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 독일 구인난? 보청기 업계만 구인난?


1년째 병가를 내고 있는 동료직원(얼굴도 본 적 없다), 곧 퇴사할 동료직원 등 회사에서 이탈했거나 곧 이탈할 직원들이 많아진 관계로 요즘 채용공고를 많이 내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이 잘 구해지지 않는다!

대학교를 졸업해도 피고용인으로서 월급쟁이 삶을 살기보다, 사업 쪽으로 가거나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청년층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거기에 특히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면서 수많은 공석들이 생기고 있는데 시장에 가용한 인력은 이보다 훨씬 적으니 상황은 점점 고용인에게 불리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


보통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외노자들에게도 많은 기회가 돌아가기 마련인데,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노동시장이 예전같이 유연하지 않아 해외채용을 진행하는 것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이런 구인난이 보청기 업계에 국한된 일인지 혹은 모든 산업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지는 경제학자가 아닌 내가 명확히 규명할 수는 없지만, 얼추 건너 듣기로는 다른 업계에서도 비슷한 류의 품귀현상(?)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구직 중인 청년들에게 좋은 소식이기도 하지만 곧 베이비부머들이 연금을 타서 쓰기 시작하면 낭보가 비보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독일 보청기 회사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점을 한번 자유롭게 끄적여봤다. 

아직 쓰고 싶은 것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은 이 정도로 정리하고, 다음 글에서는 좀 더 한국 기업문화와 독일 기업문화를 비교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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