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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쓰다 Jun 01. 2022

15살부터 아이가 갖고 싶었던 이유

#1.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다행히도 15살에 아이를 갖지는 않았다. 그 대신 나는 종종 동생에게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축구단을 만들 정도로 낳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나 아이를 낳고 싶어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마도 행복한 나만의 가정을 가지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이 있었을 듯하다. 진짜 임신을 하고 인생에서 한 숨을 돌린 지금에야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서 어설프게 이해해보려 할 뿐이다.


어린 시절의 나와 여동생은 엄마의 빡빡한 감시 속에 살았다. 매일매일 청문회를 하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 중학생 무렵에 나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아이가 되었고 어떤 것에도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성적은 떨어진 지 오래였고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지를 몰라 나쁜 길로 빠지기도 했다. 어쩌면 당연한 절차였는지도 모른다. 힘들고 화나고 슬픈 감정들이 모여 한 맺힌 사춘기를 보내야만 했다. 나는 어렸고 온통 부정적인 감정만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 수단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친구가 필요했다.  


#2.

한국에서 정의하는 친구란 나이가 같은 사람의 의미가 더 큰데 나는 그냥 마음과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친구라고 생각하곤 했다. 학창 시절엔 대부분 또래들과 잘 통하니 자연스럽게 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고 말이다. 사실 나는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고 싶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친구 관계에 대한 조언도 듣는 그런 좋은 관계를 갖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용을 써도 한 번 상하로 굳어진 관계성은 재 적립하기 어렵다는 이론만 입증해버렸다. 그런 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컸고 내가 커서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주겠다는 그런 다짐을 하며 자연스럽게 내가 아이를 낳은 후 행복한 모습들을 상상하게 되었다. 같이 맛있는 밥을 먹고 대화하는 모습, 여행하는 모습,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모습.. 당연하게도 상상 속의 내 아이는 늘 내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였다. 나는 스스로를 위해 스스로를 위로하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었다. 


아이에 대한 열망은 그 모든 것들을 극복 중이었던 20대 때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언젠가 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때가 있었는데 그쯤 친한 오빠가 보험 판매를 하는 영업직으로 취업하게 되었다. 적금처럼 넣을 수 있는 보험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말에 오빠는 바로 보험 하나를 추천해 주었고 언젠가 낳을 내 아이를 위한 저축이라며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완료했다. 한 달 십만 원씩 넣은 게 벌써 5년 차이다. 이렇게까지 빨리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가질 줄 몰라서 그런가 보험이 쌓인 액수를 보면 뿌듯한 기분이 마구 차오른다. 어떻게 미래의 자녀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까지 하게 되었냐고 한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 내 머릿속에서 항상 나를 위로해주던 그 아이에 대한 애틋함이라고나 해둬야 할 것 같다. 


세월이 지났으니 당연히 나의 엄마도 많이 늙었다. 여전히 나에게 모질었던 행동들을 전부 인정하는 것 같진 않지만 엄마 특유의 희생적인 모습으로 임신 초기의 나를 많이 위로해주고 있다. 이제 나는 서른이 되어서야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원했던 나의 아이를 품고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과연 나는 이 아이에게, 이 아이는 나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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