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에서는 일생의 절반 동안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던 이유에 대해서 글을 썼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임신을 하고 나서는 나 다시는 임신 안 해,라고 생각했다. 바로 입덧, 그놈 때문이다.
#1.
가끔 우리는 작은 상처가 있는지도 모르다가 눈으로 확인이 되고서야 통증이 시작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경우엔 입덧이 그랬다. 임신을 확인한 바로 그날에는 실감은 안 났지만 기뻤고, 아이를 바랐던 남편을 놀려보려고 이것저것 요구하며 장난칠 정도로 멀쩡했다. 입덧에 대한 걱정이 별로 없었던 것은 엄마가 '먹덧'을 했었기에 나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딱히 입덧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 자료를 접한 적이 없어서 냄새에 좀 예민해질 거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입덧은 거의 유전된다는 보통의 사례와는 달리 나는 엄마의 입덧과 전혀 달랐다. 임신을 확인한 다음 날부터 극심한 입덧에 시달렸다. 공복에 토는 물론이고 물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으며 침대와 하나 되는 생활을 시작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인터넷을 뒤졌더니 내 증상은 '먹덧, 냄새 덧, 토덧, 체덧, 양치 덧, 두통'에 해당했다. 무려 여섯 가지의 입덧 증상을 한 번에 겪게 된 것이다. 입덧에 좋다는 입덧 사탕, 비스킷, 과일, 냉면, 토마토...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했으며 먹더라도 몇 시간 만에 다 게워내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입덧 약은 효과가 좋으면 평소보다 적게 토했고 아예 효과가 없는 날도 있었다. 살은 2주 만에 5kg가 빠졌다. 수분 섭취도 어려워 피부도 입술도 너덜너덜했다. 지방에서 날아온 엄마는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바람 든 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어느 날은 평생 겪어보지 못한 살인적인 두통(누가 내 머리를 톱질하고 있는 줄 알았다)으로 새벽에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옆에서 단잠 자던 남편을 두들겨 깨우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남편에게 정말 미안하다..ㅠ
#2.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한 법인데, 몸이 아프다 보니 마음도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이 없이 딩크족으로 살았어도 괜찮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부터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은 날에는 뱃속의 아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정작 아이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찾아와 준 것밖에 없는데. 남편이 출근하고 모든 아픔을 오롯이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에는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자 등록을 한지 몇 달 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반에 자리잡지 못하면 사업자를 접어야 할까 봐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도 컸다. 호르몬의 영향을 받은 불안한 마음 상태와 줄어드는 체력, 임신에 대한 낮은 이해도는 크고 작은 싸움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점점 눈물만 흘리는 시간이 늘어갔다.
무엇보다도 나를 힘들게 한 건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린 것 같은 스스로의 착각이었다. 3년이라는 짧은 직장 생활 동안 이른 출근, 늦은 퇴근, 주말, 공휴일 반납, 결혼식 전날에도 그 흔한 신부 마사지 한 번 못 받고 야근을 하던 나였다. 결국 노력한 만큼 벌 수 있는 사업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퇴사를 결심했는데.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어마어마했다. 어쩌다 생각이 그리로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밥값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자기 혐오감에 빠지기도 했다. 심지어 이런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은 없었고 어디서나 아이를 위해서 조심해야 될 것 혹은 챙겨야 할 것 등 정작 얼굴을 맞대고 있는 나란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뱃속에 보이지도 않는 아이를 위한 말들만 쏟아내곤 했다. 30년을 내내 '나'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닌 아기가 되어버린 상황이 당황스럽고 낯설었다.
그 모든 변화는 혼자서 온전히 겪어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몰랐다.
#3.
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듯이 입덧도 끝이 있다. 입덧 기간 동안에 많이 의지했던 수많은 랜선 산모 동지들의 글은 대부분 '입덧 언제 끝나나요'였다. 16주에 끝난다는 사람도 있고 분만실에 들어가서 힘주기 직전까지 헛구역질을 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결론은 어쨌든 끝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에는 12주 차를 지나면서 입덧이 잦아들기 시작해 15주 차인 지금은 저녁에만 조금 메스꺼운 정도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고 원망스러웠는데 겪어보니 정말 시간이 약이구나, 하며 지금은 완전히 입덧이 멎기를 얌전히 기다리는 중이다.
길어 보였던 그 고통의 시간도 지금 돌아보면 두세 달 남짓이다. 겨우 그 짧은 시간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입덧 기간 내내 지방에서 서울로 주마다 오가며 나를 보살펴 준 엄마는 '엄마가 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라고 말했다. 10달을 품는다, 는 그 짧은 문장 안에 이렇게나 많은 감정이 녹아있을 줄이야. 그저 행복해 보이는 광고 속의 산모들처럼 우아하고 고상하게 10달을 품고 낳는 아이인 줄 알았건만 나의 임신 초기는 생각보다 더러웠고 외로웠고 우울했고 고통스러웠으며 아주 잠깐씩만 행복했다. 알고는 못하는 게 임신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다행히 나는 입덧의 절정기를 넘었기 때문에 조금씩 움직이며 빠졌던 근육을 다시 채우고 있다. 여유롭게 공부와 일을 하고 글을 쓴다. 몇 달간 미뤄두었던 다이어리도 쓰고 설거지, 청소, 저녁밥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자기 혐오감에서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예전과는 절대 같을 수 없는 일상이겠지만 이제는 불안과 걱정보다는 행복한 기대감으로 가득 채우고 싶은 마음이다.
이 글을 빌려 임신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며 나를 위해 노력한 남편과 아픔을 반으로 줄여준 친정 엄마에게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