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혁은 괜찮은 학생이었다. 다만, 남들이 모르는 아주 큰 슬픔을 가지고 있었을 뿐. 미진은 규혁의 아픔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고 사귄 친구이자 비슷한 슬픔을 가진 규혁과 미진은 친해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사이였다. 폭력적인 아버지 그리고 규혁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 규혁만을 의지하는 어린 남동생. 미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어린시절부터 온 몸에 멍이 든채로 길거리를 배회하던 그 둘은 추운 한겨울에도 서로를 꼭 붙잡고서 문 열린 빌딩계단에서 온기를 나누곤 했다.
시간은 흘러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고 규혁과 미진도 남들처럼 아픔을 숨긴 채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파쿠르'였고 위험천만한 건물 사이를 장비도 없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돈 없이도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규혁은 과묵한 편이었고 미진도 규혁 못지 않게 과묵했으나 표정은 다양했다. 친구들은 그런 그들을 편견없이 받아주었고 그냥 그런 성향의 친구들이구나, 하고 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보통의 코스와는 다른 높은 곳에서 파쿠르를 하게 되었다. 아주 높은 계단에서 계단 사이로 뛰어내리는 코스였는데 간격이 좁아 성공확률이 거의 100% 로 아무도 누가 다칠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미진은 행복했다. 세상에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무리안에 들 수 있었다는 것도, 이제서야 행복이 찾아왔다는 것도. 그래서 생각했다. 죽어야겠다고. 죽어야 한다면 지금이 맞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뛸게.' 라고 말한 뒤, 바로 앞 차례였던 규혁에게 카메라를 넘겨 받았다. 멋있게 찍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규혁을 찍는데, 규혁은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그렇게 미진이 하려고 했던 계획을 먼저 실행해 버렸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미진은 헐레벌떡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흰 돌바닥 위로 빨갛고 탁한 피가 번졌다. 규혁은 텅빈 눈으로 미진을 바라보았다.
나는 규혁의 쏟아지는 피를 보며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왜 니가 먼저 죽냐며, 한참을 울었다. 피가 몸 밖으로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숨이 멎어가는 눈동자를 보면서 그렇게 한참을 오열하다가 눈을 떴다.
임신 3개월 차는 이렇게 생생한 꿈의 연속이었다. 하나의 꿈 속에서 최소 1년, 최대 1n년의 시간의 흐름을 세세하게 경험하고 느꼈고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꿈속에서 울면 그 날 아침은 울면서 일어나기도 했다. 딱히 재미있는 꿈도 꾸지 않았다. 온통 나를 괴롭히는 꿈 뿐이었다.
하루는 대통령 후보가 나타나 수학을 가르쳐주며 등비수열 심화 문제를 같이 풀어보자고 했다. 수포자인 나는 그 문제를 끙끙대면서 (체감상 3,4 시간 정도 고민한 것 같다)풀어냈는데, 또 앞에 나와서 설명을 하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그 자리에서 도망치면서 그 꿈은 끝났다. 내 깊은 무의식 속에 그 문제가 들어있었다는 것도 황당했지만 실제 머릿속으로 두자리 수 곱하기 등 산수를 했다는 게 새삼 충격적인 꿈이었다.
그렇게 꿈에서 온 힘을 쏟고 나면 현실로 돌아오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앞서 짧은 소설로 소개했던 충격적인 꿈은 임산부가 꾸기에는 너무도 잔인해서 뱃속 아이에게 해가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또, 감정적인 소비가 많다보니 지친 마음으로 시작하는 매일이 힘겨웠고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다행히 인터넷 서칭을 해보니 이런 악몽을 꾸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대다수의 임산부들이 기분나쁜 꿈을 꾸고 있었다. 유산하는 꿈부터 남편이 외도하는 꿈까지! 호르몬의 변화도 있겠지만 렘수면 상태도 잦아져 더 길고 자세한 꿈을 꾼다고 한다. 이번에도 역시나 경험자들의 짧은 댓글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개꿈입니다!!"
나처럼 악몽으로 인해 하루가 싱숭생숭한 초보 산모들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그냥 개꿈이구나 하고 넘기거나 나처럼 글쓰기 소재로 삼으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