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은쓰다 Oct 12. 2022

올리브 나무

나도 너 같기 때문에

아침부터 열심히 자고 있는 아가를 옆에 두고 또 눈물을 한참 쏟았다.

정지 버튼도 없는 사고 장면이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됐다.

마침 주차시간이 딱 4분을 넘겨 추가 금액 천 원을 내야 했던 것,

지갑을 쓸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지갑도, 카드 한 장도 들고 오지 않았던 것,

네일샵 예약을 오픈 카톡으로 하는 바람에 휴대폰 번호가 없어서 카톡으로 도움을 청하고 그 사람이 읽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

내 뒤로 기다리던 4대의 차들이 한참을 인내심 있게 기다리다 화가 났을 거라는 것,

경사진 면에 브레이크를 밟고 서 있어서 혹시라도 차가 뒤로 밀리면 어쩌나 긴장했던 것,

아직도 서울에서 운전하는 게 생소해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그 모든 사소한 것들이 합쳐져 기어를 후진으로 놓은 채 가속 페달을 밟아 기어코 사고를 내고야 말았다.

결국 네일을 받았던 샵 원장님의 도움으로 주차장을 빠져나온 뒤 떨리는 심장과 손을 뒤로 하고 사고 처리를 했다.

나를 쳐다도 보지 않는 피해자분께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며 더 많은 피해를 드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수습하려 노력했다.

수습이 끝나고 피해 차량이 떠나간 뒤 보험사 출동 직원분과 차 안에 앉아 설명을 듣는 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놀라서, 보험이 해결해줄 것도 알지만 혹여나 돈이 더 들어가게 될까 봐, 그리고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나는 자주 유튜브로 블랙박스 영상들을 보며 말도 안 되는 운전 실수를 어이없어하기도 하고,

내가 해보지 않은 운전 경험들을 보고 배우며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은 왜 그런 영상을 일부러 찾아서 보냐며 이해할 수 없어했지만, 늘 운전이 조심스러웠던 나에겐 예방 주사 같은 거였다.

그랬던 두려움을 뚫고 마침 그날 아침에 운전을 하고 가면서 맞아, 내가 울산에서는 운전을 꽤 했었지, 하고 거만스러운 생각을 했더랬다. 그 오만함은 늘 나에겐 이런 파괴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겸손의 미덕을 일깨우는 게 아니라 자존감만 파먹고 간다.

그날의 나는 ‘나 사랑하기 프로젝트’ 3일 차쯤 되어 자존감이 조금씩 생길락 말락 하던 시점이었다.

샤워 후 오일을 발라 정성껏 팔과 다리를 마사지하고 얼굴을 문지르고 온갖 화장품을 바르는데 30분도 넘게 걸렸다. 아무렇게나 먹던 음식도 잘 차려 예쁜 그릇에 먹기 시작했고 요가 수업도 듣기 시작했다.

그러니 예전부터 좋아했던 네일아트를 하고 싶어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친정 엄마가 아가를 봐주는 동안 당당하게 차를 끌고 나가 네일 아트를 받았고 그 사달이 난 것이다.

‘나는 집에서 밥만 축내는 식충이구나.’

사고 직후 머릿속엔 온통 이런 생각뿐이었다. 평소와 다른 억척같은 노력을 해서 10만큼 올려놓은 자존감을 갑자기 -100으로 만들어버린 찰나의 불행이었다.

괜찮다고 말하며 기분 풀라는 남편에게 고맙다고 이제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그 다음날 아침까지도 눈물이 쏟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하루를 살아야 하니 청소기를 꺼내고 빨래를 돌렸다.

그러다 물 주기가 이틀 간격인 여러 식물들이 약간 시들해져 물조리개를 들고 간 베란다엔 모든 잎이 다 쳐진 올리브가 힘없이 지지대를 붙잡고 서있었다.

데려올 때 아주 조그만 화분에 있었던지라 바로 토분으로 분갈이를 해주고 영양제에 수분 공급에 햇빛 명당자리까지 내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브는 시들어만 갔다.

1일차 올리브, 아직 잎이 쌩쌩하다.

눈물이 쏟아지던 그날 아침에 죽어가는 올리브는 마치 나 같았다. 물을 주고 영양제를 주고 햇빛도 쐬어 주고 갖은 노력과 정성을 들여 고작 ‘살아있는다’는 하나의 목표조차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는 존재.

고양이의 하찮은 콧바람에도 줄기가 나부끼는 연약한 존재. 생기 없이 못생겨진 나의 올리브를 보면서 또 한 번 눈물을 닦아내야 했다.

갈변되고 축 처진 올리브

그렇게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다가 문득 스페인 유학시절 버스를 타고 지나치다 보았던 올리브 나무 밭이 생각났다. 그곳의 올리브는 단단하고 두껍고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나무였다. 그 나무들도 어쩌면 갖은 노력을 다 해도 시들 거리며 물 주는 이의 속을 꽤나 썩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튼튼한 나무로 자라지 않았던가.

지금은 초라하게 베란다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연약한 줄기지만 살려만 낸다면 매해 더 튼튼하게 자라 언젠가는 분명히 열매도 내어줄 테다. 그건 3일의 조그만 노력으로는 턱도 없는 일이었다. 꾸준히, 지치지 않고, 열심히, 매일 해야 하는 일이다. 좌절 뒤에 새로운 힘이 찾아올 때까지, 그러니까, 올리브 화분을 멍하니 쳐다보며 꽤 긴 시간을 보내고서야 약간 기분이 나아졌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브를 튼튼히 키우고 계시는 분이 있어 게시물을 유심히 보았다. 식물 키우는 게 어렵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엄마가 날 키우는 건 얼마나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연비가 안 좋은 본인 때문에 엄마가 고생했겠다고 쓰여있었다.

댓글에 어느 다정한 사람이 그럼 너는 람보르기니 같은 사람이구나, 라는 멘트를 남겨두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달아놓은 다정한 댓글에 그날의 아침을 채우던 부정적인 감정이 녹아내리며 실없이 웃어볼 명분이 생겼다.

비록 당장은 죽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내 올리브는 튼튼해질 테고 나는 람보르기니 같은 사람이다. 잊지 말자.

어쩌다보니 네일아트도 올리브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