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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쓰다 Dec 23. 2022

3.


태형은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늘 그렇듯 한 걸음 한 걸음에 바위를 매단 듯 발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음은 천근만근 발걸음보다도 더 무거웠다. 언제부터인가 엄마의 전화는 태형에게 마음의 짐이었다. 전화가 울리고 화면에 엄마의 이름이 뜨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 그런 자신을 보면서 가끔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방학이 되면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던데, 지난 여름 방학에 태형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학기 중보다 더 많이 뛰느라 쉴 틈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는 만큼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함께 놀고도 싶었지만 삶은 잠깐의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한 달에 한 번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있겠다 싶은 여유가 생길 때면, 징크스처럼 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렇다고 해서 아픈 엄마를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아픈 엄마와 태형, 서로에겐 둘 뿐이었으니.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아직은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은 나이인 태형이 어느새 집의 가장이 되어 있었던 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태형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걸어 여기저기 금이 간 벽에 간신히 붙어 있는 작은 문 앞에 섰다. 문 바로 앞에는 하수구가 있었다. 하수구를 타고 가끔은 바퀴벌레가, 가끔은 쥐가 문 안까지 들어오곤 했다. 태형은 이제 막 그 문 안에 있는 세상에서 벗어난 참이었다. 정확하게는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항상 더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고 만다. 낡고 오래된 철문 앞으로. 그 앞에서 태형은 쉽사리 손잡이를 돌리지 못하다가 결심한 듯 문을 열었다. 끼익 하고 찢어질 듯한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자 어둔 집 안에 작은 창문을 비집고 쏟아져 내리는 달빛이 눈에 들어왔다.


“태형이니?”


하나뿐인 방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렸다.


“어, 엄마.”


태형은 곧장 방으로 들어가 불도 켜지 않고 엄마가 누워 있는 이부자리 옆에 털썩 앉았다. 


“불은 안 켜는 게 편하시지?”


“응.”


“그럴 것 같았어. 근데 방이 왜 이렇게 추워.”


“아냐, 버틸 만해. 괜찮아.”


“날도 점점 추워지고 몸도 아픈데 방 좀 따뜻하게 해놔요. 자꾸 아끼지만 말고.”


“알겠어. 아들 자취방은 좀 살만 해?”


“응, 방이 다 똑같지 뭐.”


태형은 자취방이 아니라 고시원이라고 말할까 하다가 그냥 그만두었다. 어둠과 약간의 달빛, 그 사이에서 서로의 눈치를 보는 바쁜 시선이 오고 갔다.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는 이 없이 적막한 공기가 잠시 흘렀다. 엄마는 늘 자신이 아픈 걸 미안해했다. 하나뿐인 아들이 대학 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늘 일만 하러 다닌다는 것도, 그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짐을 지울 수밖에 없는 것도 미안해했다. 그래서 늘 먼저 말문을 여는 건 태형이었다.


“병원비가 많이 나왔어?”


“…평소보다 조금 더 나왔어.”


“얼마나?”


“60만 원 정도….”


“확실히 평소보다 좀 더 나오긴 했네. 근데 그게 뭐 대수인가. 엄마가 건강한 게 먼저지. 난 괜찮으니까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이제 나 돈 잘 벌어.”


태형의 대답을 들은 엄마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


“태형아, 미안하고 고마워…. 우리 태형이를 보면 엄마가 참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너 처음 가졌을 때도 그랬거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어도 여전히 삶에 허덕이기만 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네가 자라면서 점점 엄마를 알아보고 웃어주고 엄마, 엄마, 하고 말해줬을 때부터 너무 위로가 되었어. 어쩌면 부모가 주는 사랑이 먼저가 아니라 자식이 무조건적으로 바라봐주는 그 사랑이 먼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 때문에 부모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다시금 힘을 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했어. 어릴 때도 따뜻한 아들이었는데 변하지 않고 착하게 잘 커줘서 고마워. 너에 비하면 너무 부족한 엄마라서 미안해….”


“엄마가 부족하긴 뭐가 부족해. 엄마도 멋진 사람이야. 아무리 어려워도 나 안 버리고 아픈데도 열심히 일해서 여태 키워줬잖아요. 이제 내가 엄마한테 갚아야지. 그리고 부모 자식 간에 미안하니 어쩌니 그런 말 하지 마요. 당연히 해야지.”


엄마는 태형의 손을 슬며시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으나 울먹이는 숨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엄마는 또 울고 있을 터였다. 태형은 성인이 되어가면서 착한 아들처럼 말하는 법을 많이 배웠다. 처음엔 생활비와 엄마 병원비, 그리고 학자금 대출을 다달이 갚을 수 있을 정도로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통장을 스쳐만 지나가는 돈을 보면 속이 쓰렸다. 가끔은 엄마가 다시 일을 해줬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면 키워준 엄마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차올랐다. 그런 엉망진창이고 혐오스러운 자신을 감추려면 더 든든한 아들처럼, 더 착한 아들처럼 말하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밤잠을 버려가며 번 돈, 그중 악착같이 모아 마련해둔 여유자금 78만 5,900원. 엄마에게 60만 원을 건넨 태형의 계좌에는 18만 5,400원이 남았다. 한동안은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태형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 아빠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돈벌이와 학업 중에 돈벌이를 맡아주었으면 어땠을까. 그러나 그런 생각보다, 술 마시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 사람이 아빠였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속으로 생각하는 말이 가끔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은 빈도가 줄 뿐 강도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움의 세기는 더 커지는 것 같기도 했다. 가족끼리 계곡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 고기를 구워 먹던 일이 시도 때도 없이 생각이 났다. 아빠는 아직 키가 덜 자란 태형을 위해 물가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피라미를 잡고 놀 수 있게 해주었다. 엄마는 계곡물에 시원하게 담가둔 수박을 부자의 물놀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썰고, 계란 두 개를 푼 김치 라면을 끓였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니 분명히 엄마도 지금의 태형과 같은, 혹은 더한 그리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더 사랑한다고 말할걸. 더 고맙다고 말할걸.’진부한 후회가 강한 듯 여린 남자아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아빠의 후회는 뭘까, 문득 궁금해졌다. 교통사고로 생을 끝내기 전에 가족을 위한 보험 하나 들어 놓지 못한 것? 아니면 화물차 운전하는 일을 그만하고 차라리 같이 가게를 하자고 청하던 엄마를 모른 척한 것? 태형은 혹시 꿈에서라도 아빠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원망과 미움은 꼭꼭 숨기고 당신의 후회가 뭐가 됐든 돌이킬 수 없으니 이젠 괜찮다고, 그러니 푹 쉬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하고 급하게 아빠가 떠나간 후, 남은 가족은 힘들었지만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봐준 덕분에 많이 나아졌다고, 고맙다고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한마디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태형은 아빠 생각을 좀 더 하면 우울함에 파묻힐 것 같아서 얼른 고개를 저어 기억을 털었다. 자꾸 아빠 생각이 나는 건 얼마 전 목격한 교통사고 때문이기도 했다. 과외를 하러 가던 길에 차가 갑자기 보도로 달려오는 걸 봤다. 휴대폰을 보며 걸어가다가 차에 치일 뻔한 태형 또래의 여자 한 명을 구해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차에 탄 중년의 남자는 구하지 못했다. 언뜻 보아도 하얀 와이셔츠에 온통 피범벅인 모습이 최소 중상이었다. 태형은 마지막까지 보지 못했던 아버지가 왠지 저런 모습이었거나 혹은 더 심하게 망가진 모습이었을 것 같아서 구역감이 몰려왔다. 여자가 괜찮은 걸 확인한 후 얼른 자리를 벗어나 골목 어귀의 하수구에 음식물이라고 할 것도 없는 희여멀건한 액체를 게워냈다. 태형은 그날의 역겨움을 잊으려 노력해왔지만 하얀 와이셔츠가 빨갛게 물들어 있는 잔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태형은 집을 나오기 전 화장실에서 한 번 더 속을 게워냈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잔상이길 바라며 오래된 철문을 열고 나왔다. 다시는 이 문 앞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곳에 엄마가 있는 이상, 그는 무한히 원치 않는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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