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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쓰다 Dec 23. 2022

2.


영업팀 김 과장은 서둘러서 차 뒷좌석에 강 사장을 밀어 넣었다. 대리기사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을 열 번 쯤은 한 뒤 “사장님,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떠나는 차 뒤꽁무니에 대고 90도 인사를 했다. 큰 도로에 들어서는 차를 확인하고서야 부랴부랴 주머니에서 내내 울리던 휴대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여보, 너무 늦었잖아. 지금 윤지 생일 한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어떡해. 애가 울고불고 난리인데…. 선물은 샀지?’


“아, 당연히 선물 샀지. 늦지 않게 갈 테니까 걱정 하지 마. 윤지한테 아빠 곧 간다고 해. 이제 출발하니까 끊을게.”


‘알겠어, 얼른 와.’


김 과장은 전화를 끊고 다시 한번 이쪽으로 배정된 대리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강 사장이 도심 외곽의 산 초입에 끝내주는 오리 고깃집이 있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집에서도 멀어지고 대리 잡기도 만만치가 않은 이곳으로 왔다. 강 사장을 데려간 대리기사도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겨우겨우 온 사람이었다. 그나마 그 대리기사는 양심이라도 있었지, 두 번째로 부른 대리기사는 알겠다고 말만 하고서 아까부터 도통 연락이 되지를 않았다. 콜센터에 전화해서 컴플레인을 할까 하다가 얼마 남지 않은 딸과의 약속 시간이 생각났다. 


“젠장.”


고민은 딱 발을 두 번 구를 동안만 이어졌다. 김 과장은 만취한 강 사장 몰래 밑으로 술을 버려가며 소주 반 병에 맥주 두어 병 정도를 마셨다. 평소 주량의 반 정도밖에 마시지 않았으니 좀 찜찜하지만 혼자 운전을 하기로 했다. 바짝 긴장했는지 술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김 과장은 빠르게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페달을 밟는 강도와 앞뒤좌우 살피는 본능을 느끼면서 이 정도면 사고 날 위험은 없겠다고 생각하고는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내달렸다. 


“오늘 뭐 실수한 거 없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오늘의 술자리를 회상했다. 6시부터 시작된 술자리에 강 사장이 그토록 원하던 도우미 아가씨들은 없었지만 말로 살살 구슬려가며 분위기를 꽤나 잘 맞춘 것 같았다.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해가며 정신없이 술을 먹인 게 통했던 건지 평소 짠돌이로 소문난 강 사장이 거하게 취해서 김 과장의 손에 5만 원 한 장을 쥐여주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토록 원했던 계약까지 따내지 않았던가. 김 과장은 술자리에 가기 전, 알아서 잘 하라며 매서운 표정으로 삿대질을 하던 사장의 얼굴과 오늘은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다며 자세한 사정도 설명해주지 않고 헐레벌떡 자리를 피하던 양 부장을 떠올렸다. 골치 아픈 일만 생기면 김 과장에게 모든 일을 떠맡기고서 눈치를 보다가 일이 끝날 때쯤 보고서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숟가락만 얹는 양 부장의 얼굴을 떠올리자 왠지 이번 계약의 공로도 뺏기는 거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그래도 어쨌든 오늘 자리를 잘 마무리해서 계약도 따냈으니 내일 하루 정도는 회사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앉은 자리에서 바로 도장을 찍어줄 줄은 몰랐다. 강 사장이 어쩌면 그동안 사회성이 좋은 그를 내심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도 했다. 운수가 좋았으니 내일 출근하면 공로를 뺏기기 전에 바로 사장실로 달려가 보고를 해야겠다. 그동안 양 부장이 한 짓을 넌지시 알릴 수도 있겠지. 이제부터 좋은 기운이 시작되는구나. 김 과장은 꽁꽁 매어진 넥타이를 한 손으로 살짝 풀어 내렸다. 그는 백미러로 뒷좌석에 있는 큼지막한 곰 인형을 흘끗 쳐다보았다. 얼마 전 미리 회사로 주문해둔 것이었다. 여자아이에게 진부한 선물이라고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지만, 며칠 전부터 윤지가 제일 원하던 선물이란 사실은 모르고들 하는 소리였다. 그토록 원해 어렵게 가진 외동딸이라서 해달라는 것은 다 해주고 싶었다. 김 과장은 윤지가 태어나던 순간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존재만으로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게 벅찼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처음 느껴보는 사랑과 행복으로 뿌듯했던 그 순간을 집에 돌아갈 때마다 다시 느끼곤 한다. 지친 마음으로 살아가던 인생이 의미 있는 인생으로 바뀌었고, 반겨주는 딸아이의 환한 웃음 하나면 잘나가는 사장들 수발드는 일도 그리 힘겹지 않았다. 가족을 생각하니 편안해져서 그런지 점점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차는 시내로 들어섰다. 현란하게 반짝이는 간판들이 보였다. 그날따라 유난히 더 부드러운 것 같은 핸들을 돌리며 거치대에 걸린 휴대폰으로 집 도착 예정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50분. 집까지 뛰어 올라가면 가까스로 딸의 생일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는 약간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어려운 일도 잘 해낸 능력 있는 사람이자, 완벽하지는 않아도 딸의 생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가정적이고 다정한 아빠니까. 도로에 차가 많이 없는 틈을 타 뒷좌석 곰 인형 옆에 놔두었던 케이크가 찌그러지지 않고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원래 샀던 모양 그대로 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앞을 보는 순간 흰색 진돗개 한 마리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놀란 그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확 꺾으면서 술기운이었는지 실수로 가속 페달을 밟아버리는 바람에 차가 골목 모퉁이의 불이 꺼진 횟집을 덮쳤다. 순식간에 수족관에 있던 횟감과 물이 쏟아져 나오고 깨진 유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성인 팔뚝만 한 물고기 한 마리는 대가리가 차 뒷바퀴에 낀 채로 팔딱거렸다. 차는 유리 출입문까지 부수고 식당 카운터 앞에서 공회전을 했다. 김 과장은 차가 부딪히는 순간에 정신을 잃었다. 반파된 차와 부서진 가게, 피 흘리는 그와 직접 전해줄 수 없을 것 같은 커다란 곰 인형만 세상에서 동떨어진 것처럼 놓여 있었다. 


그 옆엔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 차에 치였을 뻔한 예원이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예원은 그날따라 리포트 작성이 잘 안 되는 바람에 조금 늦게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는데, 저 멀리서 비틀거리던 차 하나가 부웅 하는 소리를 내더니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예원의 바로 앞을 스쳤다. 뒤에서 잡아끄는 손 하나가 느껴졌고 누구인지 확인할 새도 없이 예원은 폭탄처럼 터지는 유리조각을 막으려 노트북을 머리 쪽으로 들어 올렸다. 쾅, 쨍그랑, 부우우웅. 차례대로 커다란 소리가 났다. 폭발음이 멈출 때까지 두 사람은 잠깐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뒤에서 잡아 끌어준 사람이 예원에게 괜찮으시냐고 물었고 예원은 네,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했지만 다시 뒤를 돌아 상황을 확인하거나 제대로 얼굴을 보고 인사할 정신은 없었다. 예원은 문득 발밑에 액정이 다 깨져버린 휴대폰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사고자의 휴대폰인 듯했다.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에 ‘아내’라는 발신인이 뜨고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떤 불길한 예감을 느낀 걸까. 예원은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 사고자를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차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운전석에 탄 사람은 머리에 피가 흐르고 큰 유리조각이 왼쪽 가슴 근처에 박혀 있었다. 발이 계속 가속 페달에 올려진 채였고, 차에서는 부웅 하는 큰 소리가 났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아저씨가 달려와 깨진 앞유리 쪽에서 구조를 해보려다가 여의치 않자 다시 내려와 조수석 유리창을 깨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급히 올리며 예원에게 말했다.


“119에 전화해요!”


예원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119에 신고를 했다. 그러고는 구급대원들이 사고자의 아내에게 나쁜 소식을 대신 전해주기를 바라면서 다 깨져버린 휴대폰을 손에 꼭 붙들고 있었다. 착신음이 울리고 잠금 화면 위로 ‘여보, 오고 있는 거지? 윤지 아직 아빠 기다린다고 안 자고 있어. 최대한 빨리 와.’라는 문자가 떠올랐다. 예원은 이 사람에게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 지금 사고가 나서 위급한 상황이라고 전해줄 용기가 없었다. 주위로 둘, 셋씩 짝지어 몰려드는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돌림 노래처럼 퍼졌다. 1분이 한 시간처럼 흐르는 것 같았다. 구급대와 경찰이 도착하기까지는 딱 7분이 걸렸다. 예원은 바빠 보이는 구급대원의 손에 휴대폰을 쥐여주고 경찰관이 묻는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한 뒤 전화번호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자리를 뜨기 전에 그녀를 구해준 사람에게 다시 인사를 하고자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얼굴도 자세히 보지 못했을 뿐더러 사고 주변에 근접하게 서 있는 사람은 예원과 유리창을 깨던 아저씨뿐이었다. 예원은 큰 사고도 그렇고,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는 사람을 실제로 목격한 건 처음이라 당황스럽고 무서웠기에 감사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자 얼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전자는 거의 소생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 그랬다기보다는 구급 대원들이 정신없이 수습을 하면서도 희망이 없는 듯한 말투를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그날, 그녀는 의도치 않게 한 사람의 인생이 사그라드는 것을 목격했다. 어쩌면 응답 없는 휴대폰에 계속 전화를 걸던 아내와 리본 달린 곰돌이 인형을 선물 받을 정도로 아직 어린 딸의 인생도 그날 이후 무너지게 되지 않았을까. 뒤에서 예원을 당겨주었던 사람이 없었더라면 아마 예원도 운전자와 같은 처지가 되었을 것 같아 허탈해졌다. 예원은 자취방 현관에 들어서서 문을 닫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갑자기 맞닥뜨린 극한의 상황에 충격을 받았고 어쩌면 자신도 그저 그렇게 삶이 끝날 수도 있었다는 두려움, 그로 인한 허무함 등이 합쳐진 감정의 덩어리가 울컥 올라왔다. 언니 예나가 집에 들어와 예원을 달래줄 때까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도 모른 채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울고 있었다. 예나는 동생이 왜 현관에서 불도 켜지 않고 울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보듬어주었다. 그저 그럴 만한 일이 있었으려니 하고 옆을 지켜주는 게 동생에게 가장 위안이 되리라 믿었다. 




얼마 후, 예원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장예원 씨?’


“네, 그런데요.”


‘아, 얼마 전 사고 현장 출동했던 경찰입니다. 휴…. 여쭤볼 게 몇 가지 있어서요.’


“아, 네, 말씀하세요.”


‘하… 그때 차량이 비틀거리면서 주행했다고 하셨죠?’


“네… 좀 그래 보였는데 속도가 빨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어요.”


‘아, 네…. 소리가 어땠나요? 일정하게 시끄러운 속도로 달려왔나요? 아니면 갑자기 달려오는 소리처럼 들렸나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은 못하겠는데, 우선 소리가 갑자기 들리긴 했고 소리가 들리고 나서 차도 갑자기 시야에 들어왔어요.”


‘네, 네. 알겠습니다. 뭐 브레이크 등 같은 건 못 보셨죠?’


“네, 제가 서 있던 자리에선 잘 안 보였고 정신도 없어서요….”


‘예. 아마 음주로 인해 페달을 헛갈렸던 듯하네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놀라셨을 텐데 빨리 신고해주셔서 잘 마무리됐습니다.’


말하는 중간중간 한숨으로 귀찮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경찰은 형식상 질문을 하는 듯했다. 마치 진실은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어본다는 투였다. 인사치레마저 형식 같았던 그 말을 마지막으로 경찰은 전화를 끊으려 했다. 예원이 잠깐만요, 하고 질문을 덧붙였다.


“그분… 돌아가셨나요? 계속 가족한테 전화가 오는 것 같던데, 어떻게… 됐나요?”


‘아, 돌아가셨어요. 유리가 팔뚝만 한 게 가슴에 박혔으니 거의 즉사죠, 뭐.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심정지 상태였어요. 근데 유족이 자꾸 차량 급발진 사고를 주장하니까…. 하, 이거 혈중 알코올 농도만 봐도 딱 음주운전 사곤데, 근데 하필 CCTV도 없고 블랙박스도 애매하고, 참…. 난감하네요. 어차피 결론 나는 것도 뻔한데 일만 더 복잡하게.’


예원이 질문을 하자마자 죽은 사람은 상관없다는 듯 자신의 난감함을 한참 설명하던 그는 문득 전화기 너머에서 아무 대답도 않고 있다는 걸 깨닫고 말을 얼버무리다가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날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사고자의 심정을 약간이나마 느꼈던 예원은 그가 음주 운전은 했지만 결과적으로 횟집의 물질적 피해 말고는 다른 피해를 주지 않은 점과 결국 목숨을 잃었다는 점,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은 인사도 못하고 갑자기 사랑하는 아빠를, 그들의 세상을 받치던 큰 기둥이었던 사람을 잃었다는 점에서 결코 저 형사처럼 가볍게 사건을 대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일주일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대수롭지 않은 교통사고 중 하나처럼 대하는 경찰의 태도에 화가 났다. 


“사람이 죽었는데, 자기 힘든 것만 중요한가?”


굳은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놓는 예원을 보면서 예나가 물었다.


“돌아가셨대…?”


“응. 케이크랑 곰 인형도 있어서 좋은 날인 것 같았는데.”


“감정 이입하면 더 힘들어져. 이제 그만 마무리됐다고 생각하고 남은 가족들이 잘 견뎌내기를 기도해주는 거, 그거면 됐어.”


“응…. 근데 너무 허무하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도대체 뭘 위해서 사는 건지 모르겠어. 이렇게 한 순간에 모든 걸 두고 세상을 떠날 수도 있는데.”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 이제 이 얘기는 그만하자.”


예원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교통사고 이후로 언니와 둘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패닉 상태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사고 생각을 하니 약간 우울해졌다. 언니의 말처럼, 그냥 남아 있는 가족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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