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는 예원보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어서 모든 일에 ‘적당히’가 없다. 물론 사랑하는 언니이지만, 하루 종일 겪은 일을 조잘조잘 떠들어야 하고 느끼는 모든 감정을 표현하다가 갑자기 화도 내고 갑자기 울기도 했다가 박장대소하기도 하는 예나의 성격이 예원은 피곤했다.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가 생기면 밤이고 낮이고 스케줄을 따라다녔고, 중학생 때부터 해리포터에 푹 빠져서 굿즈란 굿즈는 전부 모아 온 방에 발 디딜 틈이 없게 만들었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수업도 빠지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녔고, 방학이 되자 영국으로 가 영화에
나오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영국인들이 득실거리는 기차역에서 마녀 코스튬을 하고도 부끄럽지도 않은지 해맑은 표정을 하며 웃고 있는 예나의 사진이 아직도 선반 위에 액자로 남아 있다. 해리포터 박물관에서 온갖 맛이 나는 젤리를 사와 그 중 이상한 맛이 나는 젤리만 골라 동생인 예원에게 과일맛이라 속이고 주면서 장난을 쳤는데, 예원은 그후로도 2주 정도는 콧물맛,귀지맛,토맛까지 온갖 이상한 맛의 젤리를 다 먹어봐야 했다. 결국 이제 그만하라고 정색하고 화를 낸 후에야 예나는 젤리를 다시 건네지 않았다. 다행히도 이성 관계에서만큼은 꾸준하고 성실했는데, 보통 사람들이 ‘그때 했던 연애는 연애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시절부터 사귄 남자친구와는 헤어질 줄을 몰랐고 얼마 전에는 무려 8주년을 기념했다.
질리지도 않고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파고들며 좋아하는 걸 보면 가끔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예원은 저렇게나 열정많은 삶을 산다는 게 딱히 부럽진 않았다. 그냥 언니의 머릿속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고나 할까. 아니면 네살이나 많은 언니가 동생보다 철부지 같아서 강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걱정이 된다고나 할까.
이런 예나와는 정반대로 예원은 쉬는 날에는 주로 집에 틀어박혀 잠을 자거나 모바일 게임을 한다. 재밌는 미드를 발견하면 거기에 푹 빠져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가끔 친구들과 커피라도 마시러 나갔다 수다를 떨고 오면 사흘정도는 다른 약속을 잡기가 싫고, 쇼핑도 온라인을 이용하곤 한다.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분위기를 맞추며 함께 즐겁게 대화를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즐긴다. 집에서 혼자 있는 예원을 보면 예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가서 좀 바람도 쐬고 커피도 마시고 오라며 이불을 훌쩍 걷어내곤 했다.
삶의 방식 차이는 이 두 사람의 성향 차이에서부터 시작 됐겠지만 그보다도 본질적으로 예원은 뭘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렇다고 여느 염세주의자들처럼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세상은 즐길 것들로 가득하다는 건 부정하지 않았고, 그것만으로도 살아 있음에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인정했다. 또 세상엔 배울 점도 많고, 온갖 사람들의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만들어낸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걸까? 어떻게 그런 감정들을 진심으로 ‘내 것’이라고 느끼며 가슴이 도전의식으로 불탄다거나 더 잘 살아야겠다는 원동력으로 만들 수 있는 걸까? 예원은 열망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늘 궁금했다. 예원의 삶에는 큰 고통이나 시련도 없었지만, 큰 행복과 기쁨도 없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동안, 예원은 극장에 앉아 관객석 한 자리를 차지하기만 하는 ‘관객1’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무대에 오른 극이 예원 자신의 삶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삶에 열의가 넘치는 예나와 그 반대인 예원은 특이하게도 각각 나름의 이유로 열정을 쏟는 한 가지가 있었다.그건 바로 복권이었다. 이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요일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함께 복권을 사러 가곤 했다. 물론 둘의 목표는 복권 당첨이었지만 그것보다도 그다음 주 토요일, 복권 추첨 전까지 어쩌면 최악일지도 모를 한주를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책이기도 했다. 또한, 평생 베스트 프렌드로 지낼 자매끼리의 친목을 다지며 수다 떠는 시간이 재미있기도 해서였다.
“오늘 번호는 어떻게 하지?”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에 예나가 물었다.
“나처럼 자동으로 찍어.”
“장난해? 번호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다고. 간절해야 당첨될 거 아니야.”
“아니, 간절하다고 당첨을 시켜줄 거면 심사를 받아야지, 무작위로 번호를 뽑는 게 아니고. 그리고 1등 당첨이 많은 가게라 자동으로 뽑는 게 훨씬 낫다니까?”
“야, 됐어, 니가 뭘 알아.”
“통계가 그런데 간절한 마음이 무슨 상관이야.”
“융통성이라곤 죽었다 깨어나도 없는 것.”
예나는 혀를 쯧, 하고 한 번 찼고 예원은 허참, 하고 어이없는 숨소리를 내뱉었다. 이윽고 도착한 편의점 문에 손을 대자 위쪽에 달린 종이 딸랑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예나가 문을 열다 말고 예원을 돌아보았다.
“우리 누가 당첨되더라도 같이 쓰기로 한 거, 아직도 유효 하지?”
“응, 언니도 유효하지?”
“당연하지. 우리가 남도 아니고.”
확인을 마친 예나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다시 편의점 문을 활짝 열었다. 가게 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예원은 달달한 인스턴트 바닐라 라테 하나를 고른 뒤 자동 5천원 어치요, 하고 순식간에 복권을 샀다. 반면에 예나는 전자레인지 옆의 복권 전용 테이블로 가서 종이와 펜을 들고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번호를 찍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12로 했으니까 이번엔 13 한번 해볼까.......”
예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번호에 집중했다. 예원은 커피를 뜯어 한 모금 쭉 마시고는 예나 옆으로 가서 털썩 앉았다.
“왜? 누가 이번 주에는 13번 당첨으로 해준대?”
예원이 빈정거리며 말하자 예나는 옆자리에 앉은 동생을 한번 째려보고는 다시 숫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예원은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털썩 테이블에 엎드려 예나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언니는 뭐가 그렇게 다 열심이야?”
그러자 예나는 갑자기 얼굴을 마주 보며 말했다.
“너는 뭐가 그렇게 다 무심해?”
두 사람 다 멀뚱하게 뜬 눈으로 서로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예나가 픽 하고 웃었고 예원도 따라 웃었다.
“좋으니까 열심히 하겠지?”
예나가 말했다.
“그러니까. 난 딱히 좋아하는 게 없어서 무감각하겠지.”
예원도 장단을 맞추자 예나가 숫자 두 개를 마저 까맣게 색칠하고는 다시 말했다.
“근데, 좋아하는 걸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하지. 왜냐면 우리 진짜 재미없게 살았잖아. 그니까 재미라는 게 즐거울 때 그 재미말고 가슴 뛰는 일을 할 때 그 재미 말이야. 학생 때도 일탈 같은 거 한 번 해본 적 없고. 남들 살아가는 코스 그대로 밟아왔잖아? 엄마랑 아빠도 유머감각이라곤 없고, 아니, 그걸 떠나서 가족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도 하나 없지. 엄마 아빠 삶의 낙이 뭐냐. 아빠는 우리 용돈 주는 거, 엄마는 맛있는 음식 만들어주는 거, 그게 다지. 엄마가 만들어 주는 음식 다 맛있긴 하지만 그나마도 결국 다 비슷한 메뉴로 돌려가며 먹잖아. 삶이 바빠 초등학교 이후로 가족여행 한 번 가 본 적 없고 심지어 다같이 찍은 셀카 한 장도 없지.물론 엄마 아빠가 사진 찍는 걸 싫어하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 부족한 것도 아니고 가족들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데 이상하지.”
“듣고보니 그렇긴 하네. 근데 언니는 입시 준비도 엄청 열심히 했잖아. 나는 언니가 너무 열심히 하길래 되게 놀랐었는데, 그 때 막 목표가 생겨서 열의에 불탔던 거 아닌가? 그건 가슴 뛰는 일에서 제외야?”
“괴롭고 힘들었지. 가슴 뛰는 게 아니고. 아니, 입시의 힘듦을 몰라서 다른 사람한테 묻는단 말이야? 진짜....... 이래서 내가 더 힘들었어. 사람들이 자꾸 너랑 나를 비교하고, 안 그러는 것 같아도 부모님도 무의식적으로 비교했단 말이지. 나도 너 공부 잘 하는 거 자랑스러워 했으니까 딱히 자괴감을 느끼거나 하진 않았지만. 맞아, 너랑 비교되니까 더 열심히 한 것도 있었지. 그땐 대열에서 뒤처지면 죽는 것 같았다고 해야 하나?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친 거지. 그러다 서울 끝자락 대학에 합격해서 온 거고. 너처럼 공부에 죽어라 목매지 않아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건 내 기준엔 기적 같은 일이지.”
“나 공부 되게 열심히 했는데?”
“네 기준의 열심이 내 기준에선 설렁설렁이야.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되게 열심히 하는 정도로 한국대에 갈 순 없어.”
예나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참 나....... 그럼 취업은 어때? 언니가 특별히 성취하고 싶은 것이 있어? 그런 니즈를 만족시켜주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고 그래? 연봉도 연봉이지만 창립 이념같은게 끌리는곳 이 있어?”
“얘가 순진한 소리만 골라서 하네. 취업하는 건 입시보다 더 힘들지! 그리고 요즘 누가 가슴뛰어서 회사 일을하냐? 차라리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투자하겠지. 적어도 난 그런 사람 본 적 없다. 이력서 쓰는 것도 그렇고, 취업하기 전까지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지 알아? 그러니까 사람이 예민해지고 성격이 점점 나빠지는 거야. 그렇게 해서 취업이 되더라도, 그때 부터는 죽어라 일만 하겠지. 고생길이 훤하다.”
“뭐가 이렇게 부정적이람? 성격 이상하네. 좀 전엔 좋아하니까 열심히 한다며. 그럼 언니는 뭘 좋아하는 건데?”
“그거야 당연히 예쁘고 행복한 나를 가꾸는 거지.”
예나가 예쁜 척하는 표정을 지으며 예원을 바라보자 예원은 웩,하며혀를쭉내밀었다.
“난 내가 예쁜 게 행복하거든? 그리고 행복한 나는 예쁘더라고. 그게 세상에서 제일 좋아.”
“완전 나르시시스트네.”
예원은 커피를 쭉 빨았다. 예나는 픽 웃더니 펜뚜껑을 닫은 후 계산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과는?’
예나의 문자였다.
‘5천 원. 본전 뽑음.’
결과는 늘 그저 그랬다. 꽝인 날이 대부분이었고 종종 5천원짜리에 당첨되었으며 운이 좋으면 4등인 5만원에 당첨되어 함께 치킨을 시켜 먹곤 했다. 최근의 뽑기 운은 최악이어서 몇 주 동안 꽝이었는데, 그나마 이번 주엔 5천원이라도 얻어 걸렸다. 예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복권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또 5천 원이냐.’
‘또라니. 5천 원에 당첨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시비 거는 걸 보니 언니도 꽝이겠구만.’
예원은 휴대폰을 책상에 툭 던져놓고는 침대에 누웠다. 언제쯤 이 방에서 탈출할 수 있으려나. 사실 서울에선 투룸도 감지덕지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거의 제한 사항이 많은 학교 기숙사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다.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친구들은 주로 원룸에 자취를 했고, 불법으로 방을 나눠 놓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구조에서 불편하게 사는 친구들도 종종 봐왔다. 그런 친구들에 비하면 투룸에 살면서 가끔은 먹고 싶은 음식도 사먹는 자신들이 좀 더 여유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봤자 월세살이라는 건 5평이든 10평 이든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예원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돈이 아주 많아서 처음부터 남들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생활을 극복하기 위해 목표의식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 언니처럼 스스로가 예쁘고 행복한 게 삶의 의미가 되지도 않았다. 예원에게 삶은 언제나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문득 미래를 생각해 볼 때면 언젠간 좋은 직장에 취직해 비슷한 수준의 남자를 만나고, 자식이 없어도 괜찮지만 여건이 된다면 아이 하나 정도는 낳아 기르는 보람을 느끼고, 그 아이가 또 학교를 다니고, 입시를 치르고, 취업하고....... 그런 모습이었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쳇바퀴 돌 듯 삶은 이어질 것이다. 각자의 시간은 가치 있고 아름다우니까 예원의 삶도 분명히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텐데 왜 그걸 당사자가 알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고 예원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그저 그렇게 살아도 괜찮으려나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원은 끊임없이 삶의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는 점에서, 가장 열심히 살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생각이 꼬리를 무는 와중에 예나가 벌컥 예원의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노크도 없이 들어오는 건 예원이 제일 싫어하는 짓이다.
“노크하는 법 잊어버렸어?”
미간을 찡그리며 말하자, 예나가 대답했다.
“지금은 그런 거 생각하지 말자. 왜냐하면 나 2등 당첨됐거든!”
“......뭐?”
예원의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예원 은 입꼬리가 귀에 걸린 예나를 잠깐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간절해야 된다고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