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도 그렇다
아이들과 소설 쓰기를 해서 모두 과제 제출을 완료했다. 그런데 유독 한 명만 제출을 못하고 망설인다.
글쓰기에 나름 소질이 있고 누구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철이가 과제물을 계속 안 낸다.
왜 안내냐고 물으니 좀 더 시간을 달라고만 한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탁월하게 쓰는 철이의 글은 매번 인쇄소에서 갓 나온 책의 어느 한 페이지처럼 완벽한 구성과 문장으로 첨삭할 필요가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자신의 글이 친구들에게 읽히는 것이 부담스러워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시간을 지체하나 보다 생각한다.
어떻게 글이 항상 잘 써질 수 있겠나. 삶에도 기쁜 날, 흥겨운 날, 그러나 때로는 비참한 날, 너무 지쳐서 고개 들 힘조차 없는 날이 있지 않나?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 매번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항상 일정 분량의 글을 자신 있게 제대로 쓰기까지 비범한 재능과 에너지를 보유한 사람이 아닌 이상 자신을 독려하며 원고지나 노트북을 마주하는 매일의 분투를 견뎌야만 한다.
친구들은 모두 제출하고 첨삭까지 받았는데 계속 과제를 못 내는 철이가 늦은 밤 갑작스레 문자를 보내왔다.
'제 글이 마음에 안 들어 도저히 못 내겠어요. 마음에 드는 글을 쓸 때까지 좀 더 기다려 주세요. '
아이는 자신이 만족할 정도의 완성도 높은 글을 쓰느라 그 밤을 지새우고 있나 보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노트북을 마주하고 있을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다시 답문을 보냈다.
'글에 완성은 없단다. 모든 글은 과정이다. 너는 아직 과정 중이니 일단 내고 얘기하자.'
그날 밤늦게서야 나는 철이의 글을 메일로 받았다. 철이의 글은 또래 아이들 중 가장 탁월하고 더 이상 손댈 필요가 없는 뛰어난 글이었다. 아이의 글을 읽고 나는 ' 이토록 훌륭한 글을 쓰고도 왜 아이는 제출하지 못했을까?' 생각했다.
다음 날, 함께 각자의 글을 돌려 읽고, 서로의 글에 대한 합평을 했다. 자신의 글에 쏟아지는 아이들의 부러움 가득한 찬사 앞에서 얼굴을 붉히는 철이를 보았다. 아이들은 친구들이 글을 쓰느라 쏟은 수고를 익히 알기에 좋은 점만 들어 나름 유식해 보이는 표현을 찾아 서로 칭찬해 준다. 그런 칭찬에 고무돼서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표정들을 보자니 함께 글을 쓴다는 게 이래서 좋은 거구나 하는 뿌듯함이 든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감안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의 경탄을 선명하게 표현해 준 뒤, 최소한의 수정사항들만 알려준다. 홀가분한 표정으로 왁자지껄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글을 쓰느라 밤을 지새우며 고심하고, 자신의 역량을 시험했던 철이의 모습을 본 뒤로 나는 이제 한 마디의 평가, 한 줄의 첨삭에도 이전보다 더 겸허해졌다.
지금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이 과정이기에 조바심 내지 않고 언젠가 완성에 도달할 날을 기다려 주는 선생님이 되기로 한다.
아이들의 뒷모습에 대고 홀로 가슴에 속삭인다.
'애들아, 글쓰기에 완성은 없단다. 삶도 그렇다....'
이 세상 어디에 진정한 완성이 있을까? 삶도 글쓰기도 우리는 늘 과정 속에 있다. 한 편의 글을 쓰느라 열병처럼 가슴을 앓고, 스스로의 한계에 가슴 아파하며, 때로는 자괴감에 노트북을 닫은 채 글쓰기를 단념하고,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뛰어난 글들에 대한 질투로 속앓이도 한다.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을 안겨 주었던 '노인과 바다'를 200번 이상 고쳤고, 괴테는 파우스트를 수정을 거듭해 죽기 직전인 82세에 발표하지 않았나?
어디 그들뿐인가? 평범한 우리도 마음에 흡족한 글 하나 써내느라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스스로를 다그치며 지루한 싸움을 하나.
그래도 여전히 나는 마음에 드는 제대로 된 글 하나
못 건진 채 언젠가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만 붙든 비루한 자신을 본다.
어디 글쓰기뿐이겠는가?
삶도 그렇다.... 우리의 마지막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완성의 순간은 하나도 없는 것, 오늘 하루도 삶을 이루는 그 지난한 퍼즐을 맞춰 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어느새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으나 속에서 천연덕스럽게 버티고 있던 은밀한 내면은 물론이고, 나와 타인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렌즈가 된다.
그렇게 글 쓰기를 통해서 삶과 세상을 보는 렌즈를 갈고닦으며, 쓰기의 지독하지만 쾌감스런 의식을 치르다 생의 끝자락에서야 완성의 그림자를 보지 않을까.
나는 글 쓰기도 결국 삶과 함께 완성되는 것임을 믿는다. 모든 글은 결국 작가의 삶을 통해 나오는 생생한 분신이기 때문이다.
다음 수업 때는 아이들 모두에게 말해줘야겠다.
글쓰기에 완성은 없다고.. 삶도 그렇다고.
그러니 계속 쓰기를, 꾸역꾸역 살기를 멈추지 말라고... 언젠가는 오랫동안 꿈꾸던 그 완성에 기적같이 도달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