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새 언론사 입사 시험을 치를 때 논술 시험을 보면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각종 경제이론, 철학 등을 실례로 들며 기가 막힌 글을 씁니다. 그런데 정작 이 친구들이 못쓰는 글이 있는데 바로 시나 소설 같은 창작글이에요. 논술은 배우면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그런데 문학은 온전히 자기만의 창작이거든요. 요새 젊은 사람들은 그걸 어려워합니다."
현장에서 아이들과 독서논술 수업을 하면서 깊이 공감했다. 논술문은 훈련받으면 잘 쓸 수 있는 글이다. 매월 1번씩 독서논술 수업 후 읽은 책을 바탕으로 논술문을 쓰는데, 이전까지 글쓰기에 전혀 문외한이었던 아이들도 수개월 함께 훈련하면 차차 글다운 글을 써낸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문학이다.
시는 그나마 짧으니까 어떻게든 써낸다. 그런데 소설은 도저히 손을 못 대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힘겨워한다. 수업 때 그토록 많은 문학책을 읽었건만 정작 자신이 a4 용지 3-10매 분량으로 단편소설을 써보자고 하면, 낙담으로 표정이 어두워진다. 소설기획안을 받고, 초안을 쓰기까지 그야말로 아이들은 각자의 산고를 치른다. 제 날짜에 기획안을 내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물어보면 '아이디어'가 안 떠오른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과 앉아서 계속 질문하면서 씨름한다.
어느 시대, 어떤 인물, 어떤 사건을 다룰지, 관심 있는 분야는 무엇인지... 그러면서 점차 추리소설, 로맨스, SF 소설 등으로 자신만의 방향을 만든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이보다 수월하게 글을 썼는데, 코로나 3년 동안 학교생활, 주변과 단절되어 살았던 이후 아이들의 문해력과 창의력까지 많이 줄어들었다.
올 해도 아이들과 힘겹게 소설을 썼다. 기존 수업과 병행하면서 수 차례 피드백을 하고, 힘겹게 써온 원고를 돌려보내면서 괜한 수업을 하는 게 아닌가 속으로 수 차례 자책을 했다. 그렇지만 이전부터 매년 해온 글쓰기를 이제 와서 아이들이 힘들어한다고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원 다니고, 숙제하고, 없는 시간 쪼개 밤잠을 설치며 문장 하나 건지려고 씨름하는 이 아이들에게 여기서 그만하자고 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에 소설을 쓰는 아이들은 곧 수업을 졸업할 중학교 3학년이다. 게임과 입시 공부 대신 어렵게 짬을 내서 기꺼이 자판을 선택, 힘겨운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아이들이 언제 또 자신만의 소설 하나 제대로 써보겠나.
이번 주에 마침내 아이들이 쓴 소설이 완성되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는지, 제목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듭했는지... 투박한 원고를 읽으며 나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주말에 아이들과 모여서 소설품평회를 하기로 했다.
다음 주는 중학교 1학년 애들과 소설 쓰기에 들어간다. 의외로 아이들은 나이 들수록 상상력 발휘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중학생과 달리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에게 소설이나 동화를 쓰자고 하면 겁 없이 덤비고 즐거워한다. 어린아이들일수록 더 겁 없이 천진하게 자신만의 글을 쓴다.
겁 없이 덤벼야 나만의 글을 쓸 수 있구나.
꿈꾸는 장르가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소설 한두 편은 써보았으면 좋겠어요. 소설 속에서는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거든요. (중략) 내가 아니지만 분명 나인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내는 기쁨, 작중 인물을 만들어가는 기쁨이 정말 컸지요. -정여울의 '끝까지 쓰는 용기' 중-
또 하나의 나를 만드는 겁 없는 도전.
그 도전의 끝에서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소설을 쓴다고 말해줘야겠다. 살면서 한 번쯤 겁 없는 도전도 해봐야 인생이 재미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도전한 건 소설이지만 언젠가 아이들이 삶에서 이보다 더 크고 무모하고 겁 없는 도전을 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