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 어디까지 해봤니?

아이들은 훌륭한 작가이다.

by 그대로 동행

아이들과 소설 쓰기 수업을 했다.

작가 정여울의 글쓰기에 대한 책 ‘끝까지 쓰는 용기’를 보며 문득 아이들과 소설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는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거든요. 에세이는 대체로 나 자신의 이야기이니까요. 소설을 쓸 땐 ’ 열일곱 살 , 고등학생,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누군가의 딸이고 어느 학교의 학생이라는 모든 속박에서 자유로웠어요. 내가 아니지만 분명 나인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내는 기쁨, 작중 인물을 만들어가는 기쁨이 정말 컸지요.


아이들에게 온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볼 기회를 주고 싶었다.

처음 소설을 쓰자고 제안했을 때 나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아이들은 갑자기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적잖이 흥분했다. 틀에 박힌 글들을 매월 힘겹게 써온 아이들에게 온전히 내가 창조한 하나의 세계인 소설을 쓴다는 게 얼마나 가슴 설레는 도전인지 깨달았다. 2주간의 시간을 주었음에도 불평 하나 없이 아이들은 과제물을 수행했다.


속속 메일로 도착한 아이들의 작품은 예상을 깨고 눈부시게 아름답고 한결같이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아이들이 썼다는 것을 모르고 읽는다면 어떤 작가가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가장 먼저 제출했던 서연이는 ‘화연’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시대의 관습에 저항하는 용기 있고 지혜로운 소녀 화연의 이야기를 연애담까지 곁들여 맛깔나게 썼다. 작품 속 주인공 속에서 명랑, 순진하면서도 늘 성실한 서연이의 모습이 겹쳐져 읽는 내내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현우는 제목 때문에 제출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는데 ‘빗나간 총구’ 작품을 냈다.

우연한 경비행기 불시착 사고로 동굴 안에 갇힌 인물들의 이야기인데 유일하게 총기를 소유한 주인공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한 명씩 제거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정작 자신을 향한 총구에 총알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읽으면서 가슴이 졸이도록 박진감 있었다.


주호는 ‘이드’라는 제목으로 화산이 폭발한 섬 안의 사람들 이야기를 만들었다. 부패한 언론과 정치권력이 화산 폭발을 숨기기에 급급한 채 자신들만 피신할 때,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하나 결국 목적지를 목전에 두고 죽거나 무너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그렸다.

나는 주호가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에 대해 내심 감탄 했다.


수아는 ‘자각몽’이라는 제목으로 한 소녀의 하룻밤 꿈 이야기를 다채롭게 구성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이는 꿈인 줄 모르고 악당들에게 쫓기기도 하고, 정체불명의 방에 갇히다가 탈출을 시행하기도 한다. 결국 주인공이 자신의 방에서 깨어나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깨는데 마지막 순간에 엄마가 해주신 떡볶이를 맛보며 현실로 돌아온다. 수아답게 전개가 기발했다.


함께 읽고 친구들과 선생님의 품평을 들으면서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예상외의 칭찬에 표정이 환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이 거쳤을 창작의 지난한 과정이 나름 훌륭한 보상으로 주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내 작품에 그토록 깊이 몰입하고 즐긴 뒤에 정성스레 품평해주는 경험은 다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신선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소설 쓰기가 끝난 뒤 나는 단순히 아이들의 생각만 한 뼘 자란 게 아니라 나 역시 선생으로서 훌쩍 마음의 키가 자랐음을 느꼈다. 아이들의 글을 정성스레 반복해서 읽고, 여기저기 밑줄 긋고, 메모하고, 꼼꼼히 체크하면서 어느새 나도 아이들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 버렸다.

평상시 수업 때 썼던 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아이들의 철학, 생각, 꿈 등을 소설 쓰기 과정과 글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글쓰기란 이래서 좋다.


글쓰기는 구원을 향한 간절한 기도의 한 형식이었다


작가 카프카의 고백처럼 아이들이 글쓰기를 통해 더 간절한 기도를 많이 퍼내면 좋겠다.

아이들은 이미 훌륭한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