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대로 동행 May 14. 2024

아빠,  안녕~

우리 아빠였어서 고마워요

토요일 오전 9시, 기도를 다녀온 뒤 피곤에 절어 잠에 취했는데 남편이 흔들어 깨웠다.

"처제 전화야. 빨리 받아봐."

전화기너머 울먹이는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아빠가....."


동생의 흐느끼는 울음을 뒤로하고 나는 바로 전화기를 팽개친 채 나갈 준비를 했다.

차에 올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주말이어서 차들이 빽빽하다. 벌금을 내더라도 전용차선으로 달리고 싶을 만큼 마음은 급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걸려온 전화

"어디야? 아빠가 지금 계속 언니를 찾으셔."


헐레벌떡 내리자마자 아빠를 위해 마련해 준 치료실에 들어섰다.  산소호흡기를 낀 채 희미한 호흡을 유지하며 들어서는 나를 바라보신 아빠.

아빠의 촉촉한 눈가가 우리 가족을 보자마자 반색하며  환영하신다.


나는 그대로 아빠 침대 옆에 앉아 외쳤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까 봐 조바심이 났다.

"아빠, 고마워요. 우리 아빠가 되어 줬어서 고마워요.

나 아빠 딸이어서 행복했어요. 너무 고통스럽고 힘드셨는데 고생 많이 하셨어요. 아빠 사랑해요. 감사해요. 영원히 아빠 잊지 않을게요."


말씀은 못하시지만 아빠가 눈으로 웃고 계셨다.

"이제 왔구나. 우리 맏딸. 네 마음 안다. 고마워."

아빠의 눈물 그렁한 눈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이어서 우리 아이들, 동생 가족들, 엄마, 돌아가면서 아빠에게 작별을 고했다.

엄마는 몇 번씩 아빠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여보, 미안해.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며 연신 사과하셨다.


2년여간 자리에 누워 생활하신 아빠를 최선을 다해 집에서 보살펴 주셨던 엄마.

당신 한 몸이 다 으스러지도록 매일 아빠 곁을 지키며 보살펴 주셨건만 엄마는 여전히 미안해하고 계신다.


세 딸과 사위들, 일곱 명의 손주들, 엄마까지 우리

 14 명의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안아드리고 뺨을 비비며 작별을 고했다.


임종 예배를 위해 찾아오신 목사님과 가족들이 함께 모여 아빠를 위한 예배를 드렸다.

엠티를 가느라 늦게 찾아온 대학생 손주 한 명이  도착하지 않아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동안 서서히 아빠의 눈이 감겼다.

 "아빠, 조금만 기다려 줘요. 이제 오고 있어요. 조금만 참아줘요."


치료실 안에 에어컨까지 켰건만 아빠의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아올 손주를 기다리느라 당신의 온 힘을 다해 버티시는 아빠.


마침내 오후 1시가 넘어서야 당도한 조카는 할아버지의 몸을 붙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으로 당도한 손주와 인사를 하셔서일까?

아빠의 의식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산소농도도 낮아져서 기계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몇 번 와서 장비를 만져준 뒤 아빠는 깊은 잠에 들어갔다. 아이들과 엄마는 부근 친정집에 보내고 딸과 사위들 6명만 아빠 곁에 남았다.


혼자 남는  외롭다고 유난히  싫어하셨던 아빠.

욕창으로 인해 병원 간병병동에 입원한 3주간 가족 면회시간에 찾아갈 때마다 아빠는 늘 집에 가자고 하소연하셨다.  마침내 욕창 치료도 다 끝나서 집에 가도 된다는 병원의 허락이 떨어졌는데 이제 아빠의 생명이 다해간다.


저녁때가 되어서 가족들이 교대로 식사를 다녀오느라 조용해지자 긴 잠에서 깨어난 듯 아빠가 다시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셨다.

홀로 남겨질까 두려우셨나.


다시 아빠 곁에 모여 손잡아 드리고 말을 건네자 스르르 잠을 청하신다.

 이제 시각능력도 상실돼 더 이상 보이지 않지만 고개를 갸웃 거리며 가족을 찾으시던 아빠.


밤 9시가 넘어서야 아빠의 호흡이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간호사는 이대로 하룻밤이 제일 고비라고 했다.

나와 남편은 집에 돌아가 장례 준비를 해서 오기로 했고, 두 동생들이 남아서 아빠를 지키기로 했다.


컴컴한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 용인 우리 집으로 돌아와 퉁퉁 부은 눈으로 잠을 청한 그날, 새벽 4시 다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언니, 아빠...... 가셨어....."


그날 새벽, 찾아간 아빠는 전날에 비해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고이 잠들어 계셨다.

"산소줄을 빼는데 아빠가 환히 미소 지으시더라고. 천국 가셨어."


한 줌도 채 안될 듯, 초등 아이처럼 근육이 다 빠져 쪼그라든 아빠의 작은 몸집이 마침내 흰 천에 싸여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몸은 이 지상에 남겨지고 아빠의 영혼은 그토록 그리던 천국에 가셨다.



이제 아빠는 고통과 아픔 없는 그곳에서  소망하시던 대로 당신의 두 다리로 마음껏 뛰고 걸으실 것이다. 전쟁통에 헤어져 평생 그리워하던 당신의 어머니를 만나고, 20여 년 전 하늘로 떠나보낸 할아버지도 그곳에서 뵐 것이다.

2024년 5년 5일

장례식장을 오가는 길에 계속 비가 내려 비속에  눈물이 다  묻히는 듯했다.

흐르는 비속에서 아빠는 이 지상을 떠나 마침내 우리 가슴속 영원한 별이 되셨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서 2: 10-13


평소에 늘 꽃이 활짝 필 때 죽음을 맞고 싶으시다던 아빠.

그때 아빠가 꽃필 때 가면 우리는 남은 생애 동안 아빠 생각나 꽃구경도  못 간다고 말렸는데... 결국 아빠는 우리를 배려해서 꽃이 다 지고 난 뒤 가셨다.


지상의 꽃은 저물었지만 천국에서는 아빠를 위한 꽃들이 만발하리.

겨울과 비처럼 고통 많은 삶이었지만, 이제 꽃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천국으로 가셨으니 아빠의 꿈대로 이뤄졌다.


만일 오랜 병상의 세월을 보내는 노인이 있다면 존중하라. 그 모습을 결코 추하다 하지 마라.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겹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사랑과 결별을 준비하는 시간을 주기 위해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정재찬 '시를 잊은 그대에게' 중 -


 이 지상에서 당신의 마지막 힘을 다해 의연하게 버티며  사랑과 결별의 시간을 선물로 주고 간 아빠.



아빠, 안녕.

우리 아빠가 돼줘서 고마워요.


아빠, 사랑해요.

천국에서 꼭  만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나이 들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