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줄기 여행자
봄이면 아카시아 향이 가득한 산 아래, 해가 질 녘 고소한 된장찌개 냄새와 할머니의 잔소리가 대문을 넘는 곳은 내가 나고 자란 곳이다. 마당에는 단풍나무가 우거져 여름에는 큰 그늘을 만들었고, 가을이면 마당에 대놓은 아버지 차 위로 단풍잎이 떨어져 장관을 이뤘다. 나는 둘째를 꼬셔 차 트렁크 위로 기어 올라가 낙엽 놀이를 하고 놀았다. 겨울에는 간신히 매달려 있는 말라비틀어진 아기 사과를 따 먹겠다고 온 까치에 아빠를 불러 같이 구경하곤 했다.
태풍이 불어닥친 그다음 날, 산에서 뿜어져 내려오는 물이 흘러넘쳐 아랫동네로 흘러가는 것을 구경하러 아빠와 동생과 집을 나섰다. 마치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발을 대며 첨벙거리다 위험하다며 핀잔을 듣고는 입이 잔뜩 나오기도 했다. 우리는 대나뭇잎을 꺾어다가 배를 만들고 빠르게 흐르는 물줄기 위로 떠나보내기를 반복했다. 배는 물줄기를 따라 그대로 하수구로 빠지기도 하고, 돌에 걸려 어디로도 가지 못하기도 했다. 동생과 더 멀리 보내기 내기를 한 탓에 그럴 때면 온갖 짜증이 난 채로 다시 내기하자고 졸랐다.
나이를 세 곱절 더 먹었지만,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내 인생이 순탄치 않음에, 자꾸만 돌부리에 걸리는 것에 격노하기를 반복하는 인생을 흘러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그런 내가 너무 싫어 퇴근하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를 데리고 같이 퇴근하시던 아빠가 나지막이 얘기를 시작하셨다.
그의 인생도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남보다 공부도 늦었고,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취업도 늦어졌다. 남보다 결혼도 늦었고, 당연히 자식도 늦게 봤다. 그렇다고 그 이후 인생이 순탄했는가 하면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삶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방황하던 시기도 있었고, 몸이 아파 인생을 다시 돌아보아야 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게 아빠의 삶이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그는 나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3년이면 뭐라도 네가 해내겠지. 뭐가 됐든 계획을 세워서 하나하나 하면 된다. 그거면 돼. 아빠도 늦었다.”
솔직히 그 말을 들을 땐,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치부했다. 그냥 불쌍한 딸에게 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맘에 없는 위로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두고두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마음에 울려 퍼지고 있다. 진짜 삼 년 뒤에는 내가 뭐라도 되어 있을 것이란 소망이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그건 나를 창조해 낸 존재의 축복이었고 꽤 강한 주술과 같았다.
물줄기를 따라가는 인생. 떠다니다 좀 걸려도 어디 좀 빠져도 그 물줄기가 끊어지지 않는 이상 또 어디론가 흘러갈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