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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asi kang Jul 12. 2023

미래사회에 대한 통찰

정보사회는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

  정보사회란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요즘입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IOT 등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생소한 단어들이 이제는 일상이 된 느낌이네요. 정보화 사회가 가파르게 진행될수록 인간의 자유는 점점 더 늘어난다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입니다. 정보의 격차가 좁혀지고 모든 것이 공개되니 누구나 쉽게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이로 말미암아 계층 간 격차가 점점 축소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인간들은 자유의지를 통해 사회에 종속되지 않고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정보화 사회를 환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실로 그렇게 느껴지나요?

  과거에는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이 없는 자들에게 권위를 내세워 우리의 에너지와 신체적 노동을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죠.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는 인터넷상 데이터를 통해 필요한 것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스스로 데이터를 만들고 소비하면서 권력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보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바로 데이터인데 인간들은 스스로 데이터의 가축이 되기로 작정한 듯 보입니다. 자신의 시간을 들여 SNS를 하고 자신의 생각, 소비패턴, 정치적 성향 등의 모든 정보를 고스란히 권력자에게 넘겨줍니다. 

  우리는 흔히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으로 자유의지를 꼽습니다. 미래의 보이지 않는 목표를 향해 스스로 판단하고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의 장점이라 자부하면서요. 그리고 작은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검색, 의견 개진, 상품 구입 등을 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판단으로 행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보화 사회에서 인간은 철저히 사회적 울타리 속에서 각본에 맞춰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신도 파악하지 못했던 자기의 성향을 찾아 유튜브는 오늘도 콘텐츠를 제공하고, 인간들은 그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큰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소비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생각과 사상도 변화시키면서 인간을 조종하고 있죠. 진중권교수가 현시대를 비유하면서 소설 '1984'보다 '멋진 신세계'에 가깝다고 한 것도 그 이유입니다. 더 이상 감시와 억압으로는 국가를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인간들이 자유롭다고 느끼면서 스스로 통제당하고 감시당하는 사회가 더 합당해 보인다는 이유였죠. 현시대의 권력자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방법으로 인간 개인의 자유, 소통, 커뮤니티를 사용합니다. 최대한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데이터를 통해 감시와 억압, 선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유라고 포장된 갖가지 방법으로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우리를 통제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정보사회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요? 첫째는 데이터 지상주의입니다. 중동의 모랫바람을 맞으며 검은 석유를 캐내는 행위는 이제 구시대의 전유물로 취급됩니다. 자유의 탈을 쓰고 많은 사람들이 생산해 내는 다양한 데이터가 곧 힘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데이터를 빛의 속도로 처리할 수 있는 기계 장치의 발전으로 인공지능이 무섭도록 발전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따르지 않고 그들만의 방법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빨라진 정보처리 속도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게 되고 그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군중들이 모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때로는 타인의 논리적인 주장에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도 하면서 발전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담론이라 하는데 현시대에는 담론이 소용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유한한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으로 판단을 한들 인공지능의 결정을 질적으로 넘어설 수 없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인간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에 종속되고 있습니다. 

  둘째 사회를 통제하는 방식의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감시와 억압이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습니다.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지 못한 개발도상국들을 생각해 본다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반쪽인 북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본다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소설 1984 속 실제 나라가 아닐까 강한 의구심이 들 정도니까요. 하지만 발전된 선진국은 억압보다는 자유와 소통으로 이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유와 소통을 한껏 안겨주어 사람들이 주인인 것처럼 느끼게 하면서 이를 통해 생산된 데이터를 활용해서 교묘히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자유롭다고 느끼는 이유는 인공지능의 편안함에 세뇌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 삶과 생각을 조종하기 때문에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적응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셋째, 진실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사회입니다. 더 이상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흥분시키는 감정적인 문구와 선동적 외침에 더 크게 반응을 합니다. 논리적 근거를 대며 완벽하게 반박한들 사람들은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정보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것을 원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진실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것을 진실처럼 재생산해줄 무엇인가를 원할지 모릅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가짜뉴스가 결정적 예입니다. 가짜뉴스는 진실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실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끊임없는 공격을 가하여 결국에는 진실이 진실이 아닌 상황을 만들어 버립니다. 진실은 사라지고 머릿속 상상이 진실이 되어버리는 기막힌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죠. 미국 티브이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는 '나는 책을 신뢰하지 않아요. 책은 온통 사실일 뿐 심장이 없으니까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탈진실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논리와 이성의 결정체인 책이 감정보다 못하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인간다움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은 인간에 대한 경청과 공감력의 회복입니다. 지금과 같이 사실(진실)보다는 감정에 휘둘리고, 담론보다는 인공지능의 판단에 따르는 삶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인간만의 담론을 통해 스스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상위 권력자들은 이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원하는 데로 행동하고 생각한다면 결국 소설 1984, 멋진 신세계 속의 일반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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