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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재민 Dec 21. 2024

에필로그 : 전쟁의 원인

토마 피케티와 한나 아렌트, 그리고 버니 샌더스

불평등과 극단주의의 동맹, 2차 대전의 숨겨진 얼굴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된다. 통상 이 전쟁의 발발 원인은 제국주의 열강의 패권 다툼이나 군비 경쟁 등 외적인 요인에서 찾는다. 하지만 경제 불평등과 정치적 극단주의라는 내적 요인을 간과해서는 전쟁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토마 피케티와 한나 아렌트, 두 거장의 시각을 빌려 2차 대전의 숨겨진 얼굴을 들여다보자.


피케티는 자본주의의 심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평등에 주목한다. 부의 편중은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이는 극단주의의 발흥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은 이러한 불평등을 극대화했고,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졌다. 피케티의 분석에 따르면, 경제적 궁핍 속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갈망하는 대중의 심리가 전체주의와 민족주의를 낳는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등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에 가한 경제적 압박 역시 나치즘의 부상에 일조했다. 궁핍에 시달리던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의 선동에 열광했고, 그는 이를 발판 삼아 군비를 확충하고 팽창 정책을 추진했다. 일본 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원 부족과 경제 불안은 팽창주의의 동기가 되었다. 이처럼 경제적 불평등은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심지 역할을 했다.


한편, 아렌트는 전쟁의 원인을 경제적 요인보다는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찾는다. 그녀는 전체주의가 인간을 수단화하고 ‘악의 평범성’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나치 독일과 스탈린 체제에서 나타난 전체주의의 특징은 개인의 도덕적 책임을 마비시키고, 자유와 다양성을 억압하는 데 있었다. 아렌트는 “악은 괴물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경고하며, 대중이 체제에 순응하고 도덕적 책임을 외면할 때, 악은 만연한다고 역설한다. 홀로코스트의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은 아렌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사례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회피했고, 이는 전체주의 체제 하에서 인간의 양심과 존엄이 얼마나 쉽게 짓밟힐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왼쪽부터) 토마 피케티와 한나 아렌트



버니 샌더스와 토마 피케티의 경고


미국의 정치인 버니 샌더스는 '불평등한 경제 체제'가 어떻게 국가 내부의 갈등을 초래하는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는 의료보험, 공공교육, 주택 보장 등 사회복지 시스템 확충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로 경제적 자유와 평등을 확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최근 미국의 현실을 보면 그의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상위 1%의 소득은 급격히 증가한 반면, 중하위 계층의 소득은 정체되어 있다. 이는 경제적 불균형을 넘어 정치적 불안정, 나아가 군사적 팽창의 토대가 되고 있다.


한편, 피케티는 불평등이 국제적 갈등의 뿌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부유층은 더 부유해지고 다수의 서민은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역사적으로 전쟁과 국가 간 갈등을 초래해왔다고 분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글로벌 자산세와 같은 국제적 개혁을 제안한다. 경제wjr 균형 없이는 지속 가능한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통찰이다.


물론 샌더스와 피케티의 처방에는 차이가 있다. 샌더스는 실용적이고 즉각적인 불평등 완화 정책을 추구하는 반면, 피케티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을 강조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의 메시지는 일맥상통한다. 불평등은 국내외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뇌관이며, 이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 시대 지성인들의 필수 과제라는 것이다.


베버리지

전쟁의 폐허에서 움튼 희망, 

베버리지 보고서의 역사적 의미


2차 세계대전은 전 지구적 재앙이었지만, 동시에 현대 사회복지 체계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쟁의 참화는 국가와 사회로 하여금 사회보장의 절박성을 절감하게 했고, 이는 곧 복지국가 이념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전후 복구와 재건이라는 시대적 과제는 복지국가 발전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그 중심에는 ‘베버리지 보고서’라는 역사적 이정표가 자리하고 있다.


전쟁은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 대규모 난민의 발생, 여성과 아동의 강제 노동 및 착취, 전시 경제 하에서의 자원 집중 등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유럽 대륙은 난민의 물결로 사회적 혼란을 겪었고, 아시아에서는 여성과 아동이 전쟁의 참혹한 현실에 내몰렸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 내부의 격차를 더욱 확대시켰고, 이는 국제적인 위기로까지 비화되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복지의 역할은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1942년 발표된 베버리지 보고서는 전후 복지국가 건설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사회보험 및 관련 서비스에 관한 보고서’라는 정식 명칭의 이 보고서는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보고서의 핵심은 국가가 국민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사회적 위험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천명한 데 있다. 특히 베버리지는 ‘5대 사회악’, 즉 궁핍(Want), 질병(Disease), 무지(Ignorance), 불결(Squalor), 나태(Idleness)를 지적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포괄적인 사회보험 시스템의 구축을 주창했다.


전쟁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복지국가는 단순한 경제 재건의 수단을 넘어 사회 안정과 연대를 구축하는 핵심적인 제도로 부상했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전후 복구 계획을 넘어, 전쟁과 같은 구조적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연대를 보장하고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했다. 이는 이후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복지국가 체계를 구축하는 데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베버리지 보고서의 영향력은 영국을 넘어 유럽과 북미의 복지국가 건설에도 광범위하게 미쳤다. 미국의 경우, 대공황 극복을 위해 추진된 뉴딜 정책은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소득 보장에 기여했으며, 이후 2차 대전 중 전시 경제 체제로 전환되면서 경제 운영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영국은 국민보건서비스(NHS)를 도입하여 의료 복지를 획기적으로 확대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이미 이전부터 복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사회민주주의적 복지 모델을 더욱 발전시켜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사회 연대를 강화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복지의 역할이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사회 내부의 통합과 위기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국가의 복지 책임이라는 명제를 명확히 했다. 보고서는 복지국가가 단순히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전후 재건 과정의 중요한 사회적 기조가 되었으며, 복지국가가 단순한 경제 안전망을 넘어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전쟁, 기후 변화, 경제 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위기 상황 속에서 사회복지 정책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복지국가는 경제적 안전망을 넘어 사회적 연대를 증진하고,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베버리지 보고서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복지국가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중요한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회복지 정책은 단순한 경제적 안정을 넘어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정신을 고취하고, 국가의 책무를 다하는 방식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태동한 복지국가의 역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사의 암울한 순간에도 희망은 피어난다”는 격언처럼, 전쟁과 복지국가의 역사는 우리가 마주한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베버리지 보고서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긴다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난제들을 해결할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니터 너머의 세계, 게임이 던진 질문들


길었던 연재를 마무리하려 한다. 게임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시작된 여정은 예상보다 훨씬 깊고 넓은 강을 건너, 이제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간 듯하다. 한낱 화면 속 픽셀의 유희로 여겨졌던 것들이 어느덧 역사와 사회, 인간 본질을 성찰하는 중요한 실험장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본 연재는 게임 속 전략과 전술을 분석하며 그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함의를 탐색하는 데 주력했다. 가상 세계의 전쟁을 통해 현실의 참혹함을 반추하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협력의 역설을 탐구하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하고자 했다. 단순한 게임 규칙의 해석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그 규칙들이 인간 사회의 작동 원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밝혀내며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연재를 이어오는 동안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예상외로 많은 독자들이 이 여정에 동참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게임 속 전투와 전략을 넘어, 그것이 오늘날의 사회 현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누고,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준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부족한 필력에도 불구하고, 독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물론 아쉬움도 남는다.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할 질문과 아직 풀지 못한 숙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재를 통해 얻은 성과는 무엇보다 값지다. 게임이라는 가상 공간을 통해 현실 세계를 조망하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담론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


앞으로도 나는 세상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나설 것이다. 게임과 전술,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니터 화면 너머의 현실 세계를 망각하지 않고 날카롭게 응시하는 시각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게임이라는 창을 통해 현실을 비추어보는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참고자료


-버니 샌더스, 정치 혁명

-토마 피케티 ,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 자본과 이데올로기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 뉴딜 정책 자료와 그의 연설문

-영국 전후 복지국가 설계 자료, 영국 노동당의 복지국가 정책과 보편적 의료서비스설립 기록.

-미국 전쟁 경제 관리 자료 (1941-1945) ,당시 최고 소득세율과 전쟁 동원 방식, 공공 자금 사용 관련 기록.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 혁명에 관하여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한나 아렌트, 혁명론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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