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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생각이 범죄가 된 땅

복지는 시혜인가 권리인가

by 백재민 작가

2024년, 우리나라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기업은 "규제가 과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호소하고 노동자측은 "목숨보다 이윤이 중요하냐"고 일침놓는다. 이를 보도한 TV뉴스를 보다가 "이거 읽던 책 어디서 본 논리인데?" 싶었다. 1910년, 이씨왕조가 백성은 나몰라라하고 나라를 일본에 넘겼다. 나라를 넘긴 대신에 일제에 귀족신분으로 귀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식민지통치. 아무래도 조선의 초대총독으로 부임한 데라우치는 완만하게 통치할 마음이 없어보인다. 조선총독부는 "신민이 일치단결해야지 발전한다. 따라서 조선인의 저항정신은 사회발전을 저해한다"는 식의 공표를 분명히했다. 이에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독립운동가가 된 인물들은 "식민지배를 통치라고 부르나" 총칼이 아닌 말과 글로 대립한다는 조건만 달라졌지, 위와 아래의 대립은 똑같네? 100년이 지났는데 같은 논리의, 같은 논쟁이 반복된다. 나는 데라우치를 연구하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냥 뉴스보다가 기시감 느낀 청년이다. 그것도 성공적이지 않은 청년기를 보내는 청년. "왜 같은 패턴이 반복되지?" "데라우치는 어떻게 식민지배를 이어나갔지?" "우리는 어떻게 광복을 맞이했지?"하는 궁금증이 도졌다. 그래서 파고들었다. 데라우치의 논리를.


야마카와는 이론을 현실에 맞춰 고쳤고, 트로츠키는 자신 사상의 원칙을 지키다 권력을 잃었다. 두사람 모두 감옥과 유배지를 들락날락하긴 했지만 '어떤 사상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일정부분 허용된 사회에 살았다. 그런데 1910년 조선에는 선택지자체가 없었다. 데라우치가 내세운 '문명화'는 왼쪽사상을 범죄로 규정했다. 그 왼쪽사상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감옥에 갈 수 있었고, 말하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이게 식민지의 현실이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먼저였던 시대. 그게 식민지의 현실이었다.

지난 1화와 2화 표지

1910년 8월 29일,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조선총독부 초대총독으로 부임한다.


데라우치는 자신의 지배철학을 이렇게 요약한다.


"질서는 생물의 신경계와 같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며, 진정한 지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한다."


섬뜩하지 않나? 이 말의 뜻은 이렇다. "겉으로는 법과 제도로 다스리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조선인의 머릿속까지 지배하겠다." 헌병대가 거리를 순찰하는 건 빙산의 일각이다. 무서운 건 조선인 스스로가 "저항하면 죽는다"는 두려움을 내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조를 바탕으로 데라우치의 식민지경영은 5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로는 헌병통치를 통한 공포정치였다. 1910년부터 1919년까지 헌병경찰이 조선전역을 장악했다. 1912년 통계를 보면 헌병과 경찰 1명이 관할하는 인구가 평균 800명. 일본 본토의 3배 밀도였다. 의병으로 분류된 사람만 1만 7천 명이 죽고, 3만 7천 명이 부상당했다. 숫자로만 봐도 학살수준이다. "우리에게 대항하면 죽음과 불명예가 따를 뿐"이라는 메시지를 조선인 전체에게 각인했다.

2단계로는 일본식 근대제도 이식을 목표로 진행됐다. 이에 1910년 회사령이 공포된다.


회사를 차리려면? 총독부도장이 필요하다. 일본인이 오면? 네, 바로 찍어드립니다.조선인이 오면? 서류가 미비하네요. 다시 오세요. 이게 몇번 반복되면? 아예 포기한다. 이게 회사령이다.


1920년까지 조선인이 설립한 회사는 고작 166개. 일본인 회사는 449개였다. 더 가관인 건 조선인기업의 평균 자본금이 일본인 기업의 10분의 1 수준으로 제한됐다는 사실이다. "창업? 할테면 해보라, 허가와 번창은 어려울거다"는 말이다.

회사령 반포로 설립된 동척.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모방해 이름도 비슷하게 정해졌다.

눈치챘나?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겁을주고 (헌병)

그다음 돈벌이를 막고 (회사령)

마지막에 땅을 빼앗는다 (토지조사)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진행된 토지조사사업이 경제재편의 토대가 됐다. 대외적으로는 "근대적 토지제도확립"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조선농민의 경작권을 박탈하는 작업이었다. 이 토지조사사업 자체가 영세자영농과 소작농에게 불리하게 진행됐다. 일제는 조선인지주를 포섭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또한 한반도로 이주한 자국민, 그러니까 일본인에게 전체농지의 40%를 넘겼다. 대다수 자영농민은 지주에게 땅을 빌려 월세를 내는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1920년 통계를 보면 자작농은 20%, 소작농은 77%다. 자기 땅에서 쫓겨나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게 조선인의 생활양식이 된 거다.


그 다음 수순은 미곡반출이었다. 당시 일본은 근대화이후에 치솟는 미곡수요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다. 그래서 식민지에서 쌀을 수입해오곤 했는데, 말이좋아 수입이지 사실 강제로 수탈해오는 식이다. 1912년 조선에서 일본으로 반출된 쌀은 198만석. 1930년에는 1,350만석으로 늘어났다. 28년 사이 수탈의 증가세가 자그마치 7배다. 조선인은 쌀 대신 잡곡을 먹었다. 아니, 먹을 게 없어서 만주로, 일본으로 떠났다. 1920년대에만 10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이 고향을 등진다.


왜 이 순서였을까? 1단계 헌병통치로 겁을주고, 2단계회사령으로 경제활동을 통제한 뒤, 3단계에서 토지를 빼앗는다. 이게 데라우치의 방식이다. 저항할 의지를 먼저꺾고, 다음으로 돈벌 길을 막고, 마지막으로 땅까지 빼앗으면 조선인은 생존을 위해 일제의 시스템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4-5단계(교육과 정신개조)는 그렇게 만들어진 '순응하는 신민'을 완성하는 마무리작업 쯤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민족정체성말살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1911년 조선교육령이 반포된다. 조선어는 '선택과목'. 일본어는 '필수'. 조선역사는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일본역사를 외우게 했다. 1938년부터는 아예 조선어과목이 폐지됐다. 학교에서 조선말 쓰다 걸리면 매를 맞았다. 이름도 바꾸라고 강요했다. 1940년 창씨개명이 그렇다. 80%가 넘는 조선인이 일본식 이름을 받아들였다. 선택이 아니라 반강제였으니까.


마지막 5단계는 정신개조에 그 목적이 있다. 신사참배와 황국신민화가 그 예시 되시겠다. 1930년대들어 데라우치의 후임총독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신사참배를 강요한다. 신사는 천황과 일본의 위인들을 신으로 모시는 곳이다. 조선인을 천황의 신민으로 거듭나게 개조하겠다는 말이다. 1935년 평양숭실학교가 신사참배를 거부하자 폐교당했다. 저항하면 학교 문을 닫는다. 이게 '문명화'의 최종목표였다.

데라우치
※ 미주

헌병통치: 일본본토에서는 경찰과 헌병이 분리됐지만, 조선에서는 헌병이 경찰업무까지 담당했다. 헌병은 군인이다. 즉, 조선을 전쟁터처럼 다스린 거다. 재판도없이 즉결처분할 수 있는 권한까지가진다.

회사령(1910): "조선에서 회사를 설립하려면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겉으로는 민도를 따지는 공정한 규제라고 포장했으나, 실제로는 조선인자본의 성장을 막고 조선인의 민도를 평가절하하는 제도로 작용한다.

토지조사사업(1910~1918): 냉소없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조선인 농민의 땅을 빼앗는 작업이다. 글을 모르는 농민이 정책시행을 알지못하고 신고하지 않은 땅, 또한 신고했더라도 서류가 불비한 땅은 모조리 총독부소유가 됐다.

데라우치는 조선병탄이후 전국 곳곳에 들불처럼 일어났던 의병들과 독립운동을 '질병'으로 봤다. 조선인의 저항정신은 미개한 민도에서 나온 병리현상이라는거다. 그러니까 헌병대는 의사고, 감옥은 병원이며, 고문은 치료였던 셈이다. 실제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선인의 반항심리는 교육과 계도를 통해 치유해야 할 사회적 질환이다."


이 논리를 뒤집어보자. 왜 데라우치 같은 인간이 나올 수밖에 없었나?

데라우치 혼자 이런 시스템을 구상했을까?


아니다.

그에게는 교과서가 있었다.

50년 전 독일의 권위주의시스템이 그랬다.


그와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은 롤모델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비스마르크의 독일이다.


비스마르크를 떠올려보자. 독일을 통일하고, 좌파를 탄압하면서도, 세계최초로 복지제도를 만든 인물. "탄압과 회유를 동시에 사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시다. 데라우치는 이 레시피를 조선에 그대로 적용한다. 헌병대(탄압)와 철도·전기(회유)를 동시에 들이민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1871년 독일통일을 완성한 뒤, 내부의 적을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첫번째 타깃은 가톨릭 교회였다. 1871년부터 1878년까지 이른바 '문화투쟁'을 벌였다.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학교를 국가통제 아래두고, 성직자를 추방하고, 가톨릭교회의 재산을 몰수했다. 명목은? "근대국가는 교회의 간섭을 받아선 안 된다."였다.


두번째 타깃은 사회주의자들이었다. 1878년 사회주의자진압법을 통과시켜 사회주의정당과 노조를 불법화했다. 집회도, 신문발행도, 조직도 모두 금지된다. 12년간 1,500명이 넘는 사회주의자들이 추방당하거나 투옥됐다.


데라우치는 이 모델을 조선에 적용한다. "부강한 국가건설을 위해서는 좌파에 대한 철저한 탄압이 필연적이다." 그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면서 가장먼저 한일이 뭐였냐면 독립운동가 발본색원과 언론통제였다. 비스마르크가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했듯이 데라우치 역시도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가리지 않고 탄압한다. 독립운동가들이 자신조국의 사회암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좌파와 노동대중을 향해 탄압일변도로 나오지 않았다. 1883년 세계최초로 의료보험을 도입하고, 1889년에는 노령연금제도를 만들었다.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복지를 국가가 먼저 제공하면, 혁명에 대한 의지가 사그라진다는 계산이었다. 당근과 채찍인 셈이다.


사회민주주의자 입장에서 비스마르크의 복지정책은 독이 든 성배다. 국가주의자는 노동자와 국민의 권리를 존중해서 연금을 주지않는다. 노동자가 스스로 단결해서 국가운영에 대한 주권을 요구하지 못하게 하려고, 국가가 옛다, 이거 먹고 조용히 해라며 던져준 떡고물이다.


사회복지에서 말하는 사민주의는 적극적 권리로서의 복지를 말한다. 내가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한 주권자니까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거다. 하지만 비스마르크로 대표되는 보수주의는 '시혜로서의 복지'를 말한다. 위대하신 국가(혹은 천황)원수가 불쌍한 백성을 어여삐 여겨 베푸는 은혜라는 식이다.


전자는 사람을 물질의 주인으로 만들지만, 후자는 사람을 물질의 노예로 만든다. 빵을 주더라도 노예가 되는 것을 대가로 요구한다면, 그건 복지가 아니라 사육이다. 데라우치가 1910년대 조선에 도로와 철도를 놓고 전기시설을 확충하면서 "천황의 은덕에 감사하라"는 논리가 딱 이 짝이다. 그 철도가 향후의 대륙진출과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처럼 말이다.


오늘날에도 인정받는 독일이 세계에서 가장뛰어난 헌법을 제정할 수 있었던 것은 우익과 좌익이 비스마르크로 대표되는 국가주의자와의 경쟁에서 승리했기에 가능했다.

※ 미주

비스마르크의 문화투쟁: 표면적으로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가톨릭이라는 이념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사회주의자진압법(1878): 공공의 안전을 핑계로노동운동을 와해시키는 도구였다. 비스마르크가 이 법을 폐지한 이유는 "이제 복지로 회유하면 되니 탄압은 그만하자"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억압과 회유의 조합. 이게 국가주의가 복지나 개량을 다루는 전략중에 하나다.

좌파가 보기에 비스마르크가 말한 국가의 안정은 황제와 귀족의 특권유지를 의미한다. 노동자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사회주의혁명 대신 국가체제내에서 만족하도록 유도하는 '국가사회주의'의 일환이다. 잘 알려진대로 이는 나치의 이념으로 변형 및 계승됐다. 국가주의자가 추구하는 복지의 목적은 국민개개인의 행복증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투자에 가깝다.

영화 '암살'에 등장한 데라우치(오른쪽)


쉽게 말하면 이거다.


당신 월급이 200만 원인데,

사장이 갑자기 "다음달부터 복지포인트 10만 원 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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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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