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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이 생산성이 된 나라

"노조가 강하면 기업이 망한다"는 상식은 어떻게 탄생했나

by 백재민 작가

어제 목요일이 본 연재 발행 날짜인데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조금 바빴습니다. 연재요일을 꼭 지켜볼게요.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분들과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복 많이 받으십쇼(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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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 대학선배를 만났다. 취업한 지 1년차, 하청에서일한다. 커피를 마시다가 선배가 불쑥 말하더라. "취업해서 좋긴한데...직장생활 녹록치 않네.." 농담처럼 말하지만 얼굴은 피곤에 절었다. "부럽긴한데...힘들어보이긴 하네...그래도 참아야지. 요즘 취업 어렵잖아. 나오면 다시 경력쌓아야되는데, 노조를 만들던지."


에이~ 노조는 하면 안된다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뭐라고 해야할지 몰랐다. 그래도 노조해야된다라고 말할 수도 없고, 정 힘들면 때려치우고 다른 직장알아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선배 말이 맞다. 요즘 하청에서 직장생활하기 어렵다. 그래서 길거리마다 보이는 연청자켓의 블루칼라노동자의 얼굴은 무언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3교대에, 주말 출근해도, 사수가 꼬투리 잡고 시비걸어도 참는다. 이게 하청노동의 모습이다.


"노조를 만들면 안 된다"는 선배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선배는 왜 '월급을 더 받을 권리'보다 '회사가 망할 위험'을 먼저 걱정하는 걸까? 마치 인질이 인질범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믿도록 길들여진 걸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노조가 강한나라는 정말 다 망했을까? 복지가 두터운나라는 정말 경쟁력이 없을까?


그날 밤 문득 궁금했다. 왜 우리는 늘 참아야만 할까. 하루 8시간, 혹은 그 이상의 노동, 주말휴무, 연차사용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눈치껏 해야된다. 그런데 이상한 건, 우리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원래 회사생활이란게 그렇지 뭐", "회사 사정이 그런데 어쩔 수 없지", "임금 올리면 기업이 어려워". 하는 말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마치 중력의 법칙처럼,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인 것처럼 말이다.


정말 그럴까. 정말 노동자가 희생해야 기업이 살고, 복지를 줄여야 경제가 성장하고, 노조가 약해야 기업경쟁력이 생기는 걸까. 나는 다른사례가 궁금해서 정당활동하다가 읽은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눈에들어온 책이 있었다. [복지국가 전략- 스웨덴 모델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책이다. 1년에 5주 유급휴가, 육아휴직 480일, 실업급여 최대 300일. 노조 조직률 70%. 그런데 1인당 GDP는 한국보다 높고, 기업경쟁력도 세계최상위권이다. 같은 자본주의국가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ledamoter-kammaren1920-tal.jpg 1866년 스웨덴 의회

1889년 스웨덴에서 사회민주노동당이 창당된다.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나라 중 하나였다. 인구의 90%가 농민이었고, 산업화는 이제 막 시작됐다. 흥미로운 건, 스웨덴이 가난했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했다는 점이다. 부유한 귀족계급이 약했고, 농민들은 오랫동안 자치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중세시대부터 농민들도 의회에 대표를 보냈다. 이런 평등주의적 전통이 20세기 사민주의의 토대가 됐다. 노동자들의 상황은 참혹했다. 하루 12시간 노동, 주 7일 근무, 산업재해로 죽어도 보상은 없었다. 학교에 있어야할 아이들도 공장에서 일했다.

오스카 2세(1829–1907)

초기 사민당은 정통 마르크스주의 계보를 포기하지 못했다. 사회주의혁명하자는 정당이었다. 당연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했고, 자본주의체제 전복을 외쳤다. 하지만 곧 높은장벽과 마주한다. 혁명? 스웨덴 노동자들에게 있어 혁명보다 중요한건 당장 내일 먹고 출근해야되는 아침식사 메뉴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성공하자, 사민당 내부에서 논쟁이 일었다. "우리도 볼셰비키처럼 무장봉기를 해야하나."식의 의문이 오고갔을 뿐 결론은 아니었다. 스웨덴은 제정러시아의 상황과 같지 않았다. 차르 같은 군주는 있었으나 이미 의회와 보통선거제도가 있었다.


1920년, 사민당은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혁명 대신 의회주의를 택했던 것. 총들고 싸우는 내전 대신 시민의 표를 받는 의회민주주의를 택했다. 이 선택이 스웨덴을 바꿨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하지만 의회활동만으로는 부족했다. 사민당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그 지원군은 노동조합이다.


그 이전에 스웨덴노동조합총연맹(LO)이 설립된다. 사민당보다 9년 빨랐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한국은 정당이 먼저 생기고 노조가 나중에 생겼다. 정치인들이 모여서 당을 만들고, 당원을 모집했다. 위에서 아래로 만들어진 구조다. 반면 스웨덴은 반대였다. 노동자들이 먼저 노조를 만들고, 그 노조들이 모여서 정당을 만들었다. 아래에서 위로 세워진 구조였다. 그래서 스웨덴사민당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중정치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SSF-Screenshot 4 .png 1918년 12월 12일자 스칸디나비아(북유럽) 사회주의자연맹의 신문기고

한국의 노조는 어땠나. 해방이후 잠깐 노조가 활성화됐지만, 이승만정권이 이를 용공세력으로 몰아 탄압했다. 박정희 정권은 더 노골적이었다. 1971년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노동쟁의를 원천 봉쇄했다. 노조 만들면 빨갱이였다. 전두환 정권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야 노조가 조금씩 숨통을 틔웠지만, 이미 한국경제구조는 재벌중심으로 굳어진 뒤였다.


2025년 현재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10%다. 10명 중 1명. 그것도 대부분 대기업정규직이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플랫폼노동자는 노조조차 없다. 스웨덴의 노조조직률은 70%다. 노동자 10명 중 7명이 노조원이다. 이 차이가 한국의 노동시장을 잘 설명하고 있지않나 조심스레 단정해본다.


1932년 즈음해서 스웨덴사민당이 집권한다. 대공황으로 실업률이 치솟던 시기였다. 사민당은 과감한 정책을 폈다. 완전고용 정책이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일자리를 만들었다. 도로포장을 위해 세멘을 깔고, 공교육의 탄탄한 기반을 위해 교육정책을 손보고 학교를 지었다. 그 다음으로는 공공의료를 위해 병원을 세웠다. 실업자들에게 일을 주고 임금을 지급했다. 이에 보수진영은 반발한다. "그런 식으로 돈을 쓰면 나라망한다.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국가가 일자릴 만들면 시장이 붕괴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하지만 사민당은 계속해서 집권한다. 경제정책의 성공과 함께 노조가 뒤를 받쳐줬기 때문이다. 1930년대 말 즈음해서 스웨덴 노조조직률은 50%를 넘는다. 노동자 두명 중 한명이 노동조합원이었다. 이들이 사민당을 지지했다. 선거때마다 계급투표를 했고, 집회하는 거리에서 목소리를 냈다. 보수진영이 사민당을 공격할 때, 노조가 몸 던져가며 방패가 됐다.


1938년, 스웨덴노조(LO)는 경영자단체(SAF)와 모여서 협약을 맺는다. 골자는 간단했다. "파업과 직장폐쇄를 최소화하고, 문제는 대화로 풀자." 정부는 개입하지 않았다. 노조와 경영자가 알아서 협상했다. 이게 스웨덴 모델의 핵심이다. 정부가 위에서부터 개입하지 않는다. 노조와 경영자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타협점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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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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