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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21세기 한국에
온다면 어느 편에 섰을까

복음은 어떻게 지배이데올로기가 되었나

by 백재민 작가

2022년 겨울, 나는 서울역에서 집잃은 홈리스들을 만난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팻말과 함께 찬송하는 교인들과 뒤섞인 홈리스들을 말이다.


정당업무차 서울역에 내려 웅장한 서울전경에 놀라있던 터였다. 대합실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계단 한켠에 노숙인 몇분이 몸을 웅크리고 계셨다. 누구하나 말 걸지도 않았다. 텃밭의 흙과 같이 자연스럽다는 듯 그 자리에 웅크려 추위를 버틸뿐이다. 담배 한대 태우며 유심히 지켜보니 한 분이 천천히 일어나 더 따뜻한 곳이라도 있는지 자리를 옮긴다. 영하의 날씨였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과 노숙인의 콜라보로 완성된 아이러니컬한 장면을 보고서도 나는 그냥 지나쳤다.

KakaoTalk_20251214_061416855.jpg 2022년 즈음의 서울역 후문 정문에서는 홈리스분들과 기독교인이 포교 중 이었다.

그 주의 일요일, 청년부 예배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로 시작하는 간증이 이어졌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게를 언급하며 그 하나님께서 굽어살피신 덕에 취업성공을, 누군가는 사업번창을, 누군가는 자녀의 명문대 입학의 극적인 상황을 강조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다 고백했다. 예배 시간 속 코너중의 코너 간증타임은 신앙을 통해 현세에서 어떻게 살아야, 그 신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될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아니라 개인적인 소원성취의 감사보고회처럼 느껴졌다. 나의 신앙에도 그 기복신앙이 있어왔기에 인간된 존재의 나약함을 되새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곤 했다.


간단히 말하면, 교회에서 듣는 간증은 하나님 덕분에 시험 붙었어요, 사업이 잘됐어요같은 개인적인 성공담이 대부분이다. 원래 신앙이란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를 고민하는 것인데, 어느새 '어떻게 하면 편하게 살까'를 고민하고 그 고민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목회자의 설교 중에 왠만해선 잘 안나오는 구절이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같이 정치적으로 첨예하거나, 물질과 관계된 구절이 그랬다. 그런데 왠일인지 그 설교시간에선 이 대목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이제와서 생각해봐도 왜인지 모르겠다.


나는 모태신앙이 아니다. 당연히 탯줄을 끊을 때부터 기도로 시작한 적도, 유아세례를 받은 기억도 없다.


우리 부모님? 종교같은 건 없으셨다. 굳이 따지자면 향내 풍기는 절간과 가까우셨지. 부처님오신 날이면 대구 팔공산에 들러 연등하나 달아드리는 게 전부인, 지극히 불자스러운 정서가운데 성장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기독교에 관심을 가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름대로의 힘든 일이 중첩됐다. 그제서야 나는 신앙을 가졌고, 기독교에대해서 조금씩 공부해나갔다.


우리는 흔히 이데올로기를 마르크스주의나 자본주의같은 거대담론으로 한정한다. 하지만 사상사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이데올로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이데올로기란 세상을 이해하고, 옳고그름을 판단하며,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구조화된 사고의 틀'이기에 그렇다.


쉽게 말해서, 이데올로기란 세상을 보는 안경이다. 우리가 쓴 안경에 따라 같은 현상도 다르게 보인다. 예를 들어, 노숙인을 보면 누군가는 게으른사람으로, 누군가는 '사회구조의 희생자'로 본다. 이게 바로 이데올로기의 차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어떨까. 종교 역시 인간의 현실과 역사를 조직하고 해석하는 이데올로기다. 예수가 말한 '하늘나라 복음' 역시 마찬가지다. 그 복음이 2000년세월을 거쳐오며 당대 로마제국과 예루살렘성전 중심의 율법체계를 타파하고 계급적 이해관계 아래, 상층구조를 비판하는 '반골이데올로기'로서 자리매김해온 측면이 있다. 잘 보시라 반공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반골' 이데올로기다. 이번 단락에서는 그 반골의 입장에서 주관적인 예수정신을 말해볼까한다.


16세기 종교개혁가인 루터, 칼뱅이 목회자의 부패와 타락에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오직믿음', '오직성경', 그리고 '만인 제사장설'을 주장한다. 당연 기존교회의 권위주의를 뒤엎는 철저한 반골사상으로 이어진다. 성전을 개인으로 설정함으로써 근대적 시민의식의 토대를 놓은 계기가 됐다. 이 토대가 이후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성중심의 계몽주의와도 결부된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신부를 통해서만 신과 만날 수 있다고 가르쳤고, 돈을 내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면죄부'까지 팔았다. 루터와 칼뱅은 이런 부패에 반발하며 목사없이도 성경만 읽으면 누구나 신과 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luther-95-theses-artist-ferdinand-pauwels-public-domain.jpg 금속활자와 종이 보급률의 상승으로 성경의 보급률이 높아져 종교개혁과 맞물렸다. 망치를 들고 있는 마르틴 루터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종교개혁가다.

중세 당시의 정치,종교시스템에서는 목회자의 중재를 통해서만 신앙이 가능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을 통해 목회자의 중재 없이, 성전의 권위 없이, 오직 개인이 신과 직접 만난다는 개신교가 시작된다. 그러한 개신교 자체가 기존의 교회권위를 들이받는 사상이었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사람들이 주장한 개인과 신의 직접적인 관계는 오늘날 한국개신교가 말하는 나만의 축복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마르틴 루터의 '소명' 사상이나 존 칼뱅의 금욕주의는, 교회라는 외부권위에서 벗어난 개인이 세상속에서 더욱 치열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공적윤리'를 조건으로 뒀다. 성직자를 통해 구원을 받는 것에서 직업인으로서의 성취와 사회생활에서의 성실로 구원이 증명되었고, 이는 초기자본주의가 형성되는 초반에서 금욕과 절제를 통한 부의축적, 사회기여의 형태로 나타났다.


신 앞에 홀로 선다는 것은, 교회의 중개없이 자신의 삶과 노동, 그리고 사회참여에 대한 '무한책임'을 진다는 무서운 전제를 둔다. 즉,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곧 기도가 되고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생활신앙'의 출발점이었다.


18세기 즈음해서 존 웨슬리는 이를 심화발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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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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