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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부재가 군인을 국회로 보냈다

12월 3일 밤, 서울이 평양이 될 뻔했던 이유

by 백재민 작가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 헌정사의 시계가 멈췄다.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로 진입했고, 대통령은 종북척결과 반국가세력 척결을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많은 이들이 이를 극단적인 진영정치의 산물로 해석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날밤의 모습은 과도한 정치의 결과물이라기보다 '정치가 부재'한 때문이다.


정치란 본질적으로 '전쟁이 아닌 방식'으로 갈등을 관리하는 기술이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가치가 충돌할 때, 대화와 협상, 견제와 타협을 통해 공존의 길을 찾는게 민주공화국이 약속한 정치의 모습이다. 갈등과 투쟁을 정비하는 진보적 관점에서 보자면, 진영이 나뉘어 격렬하게 부딪히는 것 자체는 오히려 정치가 역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총칼을 들고 싸우던 야만의 시대를 지나, 말과 글로서 싸우는 '정치'의 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의 장에서 상대를 파트너가 아닌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이후부터 정치는 멈추고 전쟁의 논리가 그 자리를 꿰찬다. 정치가 부재한 자리에 전쟁논리가 그 자를 꿰차면 권력은 위기 앞에서 두 가지 선택지를 마주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법치 자체를 중단한다. 후자의 경우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를 결정하는 권한은 법이 아니라 권력자 개인에게 넘어간다. 12월 3일밤, 대한민국은 바로 그 정치의 실종과 한국사회 한켠에서 자라나던 전쟁논리로서의 정치부재를 재확인한다.


이러한 퇴행은 역사 속에서 기묘할 정도로 반복되어 왔다. 68년 전인 1956년 8월, 평양에서도 이와 흡사한 '정치의 종말'이 시작되고 있었다.

왼쪽부터 박창옥 김일성, 최창익

조선노동당 전원회의, 그날부터 조금씩 북한체제가 스스로를 교정할 능력을 잃어버렸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3년. 북한경제는 파산직전이었다. 최창익은 구체적인 숫자를 들이댔다. "천리마운동으로 농업생산이 30% 감소했습니다. 집단농장의 비효율은 명백합니다. 인민들의 1인당 배급량이 전쟁전보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박창옥은 외교노선을 문제삼았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경제를 일으켜세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는 말로 운을 띄웠다.

8월 전원회의 당시 김일성이 발언중이다

거친말을 동원했기에 비판이었지, 그냥 정책토론이었다. 당대 공산당이 정책토론에 비판이라는 단어를 즐겨 썼기 때문에 생긴 단어선택 관성이었다. 한마디로 지금의 우리가 대화하듯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정치가 작동하는 정상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김일성에게는 자신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나보다. 정책의 방향을 두고 토론하던 회의장 분위기가 싸해졌다.


종파분자들이 당의 방향을 흐리고 있다

전원회의는 충성도 검증으로 변질됐다. 기존 권력과 노선에 대한 문제제기는 반역이 됐다. 정치자체가 부정당했다.


처음에는 소련과 중국이 개입했다. 흐루쇼프는 김일성에게 당내민주주의를 회복하라고 압박했다. 중국공산당지도부도 중재에 나섰다. 김일성은 두 후원자, 소련과 중국의 갈등을 이용해가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한다. 9월즈음되자 소련과 중국이 물러섰고, 대대적인 불순분자 발본색원이 시작됐다. 최창익과 박창옥은 당에서 제명됐다. 그들을 지지했던 간부들도 차례로 제거됐다. 일부는 처형됐고, 일부는 탄광으로 보내졌다.

직접 편집한 니키타 흐루쇼프 그래픽디자인

그날 이후 북한에서 토론은 사라졌다. 1967년 '유일사상체계 10대원칙'이 제정되면서 제도화됐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신, 수령의 뜻을 헤아리는 일만 남았다. 사상의 다양성은 '유일사상' 뒤로 숨었고, 정치는 수령의 결정을 확인하는 의례로 굳어졌다. 마이크 헤인스가 지적했듯, 스탈린체제가 가진 구조적결함이 제 3세계 공산권, 북한에서 반복된 것이다.


권력이 비판을 불편해하며 종파주의나 내부총질로 규정하는 것은 정치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다. 복잡한 정책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는 과정은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상대를 설득하고, 타협점을 찾고, 때로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 그게 정치의 본질이다.


하지만 비판자를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면 이 과정이 있어야하는 이유가 없다. 모든 문제는 선과악의 구도로 단순화된다. 분석과 투쟁, 때로는 타협하는 일들이 봉쇄되고 대중의 분노는 인기스타가 된 권력이 지목한 표적을 향한다. 정치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힘의 논리가 채운다.


정치는 적을 동지로 전환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내 의견에 반박하던 반대자가 내일의 협력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정치다. 그 가능성을 닫아버리면 상대측을 제거하고 탄압해야된다. 국가는 통치가 아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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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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