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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왕띵킹 Thinking Jan 09. 2022

배달비 1만원의 시대 #2. 배달의 민족

미친 중독성 그리고 사치와 사기

최근 나는 '소금빵'에 미쳐있다.

쫀득한 반죽 가운데에 짭짤한 가염버터를 돌돌말아 위에 소금가루를 뿌린 빵.

그게 바로 소금빵이다. 이 특별할 것도 없는 빵에 미쳐있는 이유는

그동안 무언가 잔뜩 넣었던 빵에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고,

버터와 물, 소금과 밀가루라는 클래식 요소가 좋지 않으면 맛이 없는

빵의 순정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동차와 다이어리, 핸드폰과 애플워치를 아무리 튜닝해도

결국 순정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그렇게 소금빵에 미쳤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별 거 들어가지 않는 소금빵을 파는 베이커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과 쿠팡이츠, 요기요를 켠다.

소금빵을 검색했다. 나오지 않는다. 시오빵도 검색한다. 배달의 민족에서만 나온다.

소금빵을 판다는 이 베이커리는 방금 쿠팡이츠에서 본 거 같은데? 소금빵은 품절이네?

근데 배달의 민족에서는 버젓히 판다. 나이스. 소금빵을 짝수로 담고 커피 하나 넣었더니

2만원이 되는 기적. 야 이거 뭔데. 배달비가 왜 4천원이야.



야이씨.


결제 완료.


핸드폰을 침대에 던져두고 한숨을 쉰다. 배민원. 나한테만, 오직 나를 위해서 단일 배달을 한다는 이 서비스가 시작되고 난 후 배달시간 48분보다 25분만에 온다는 이 프리미엄 배달 시스템에 사치를 부리게되는 나.

집에서 소금빵을 만들어 먹을 수도 없잖아...


주말에 이 베이커리에 다시 갔더니 소금빵이 3천원이 아니고 2천 5백원이었다.

아, 가격도 달라?


이 사기꾼 같은 것들.



배달의 민족은 우아한 형제들에서 만든 모바일 배달 앱이다.

스타트업에서 유니콘으로, 독일 딜리버리 히어로에 인수합병되면서 거대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배달앱이었던 배달의 민족은 해외 자본율이 높은 요기요와 같은 배를 타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배달앱 1,2위가 모두 한 모기업으로 합병되어 어디에서 시키든 뭐 비슷한 상황.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산업이 고속성장하고, 4조 8천억원이라는 눈이 띠용할만한 배달의 민족 인수합병 뉴스가 나온 뒤 다시 한 번 읽게되는 배민의 캐치 프라이즈.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

우리 집에서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집이 아니면 안되는 상황 아니냐.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한국인의 배달의 민족이 아니라 게르만인의 후예가 된....


배달의 민족 무료 폰트체를 곰곰히 본다.

싱크대에 겹겹히 씻어 쌓인 일회용품 용기들도 본다.

편의와 취향을 선택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불편의'가 자리잡고 있는 걸까.




언젠가는 배달비에 금액의 절반을 써야하는 나에게 현타가 왔었다.

좋아. 그러면 58분을 기다리더라도 배민원으로 시키지 않겠어.

근데 배달비는 1천원이 싸졌다. 30분을 더 기다려야하는데 오백원 두 개가 차감되는

기적의 시장논리가 배달의 민족에는 있는 것이다.

이 쯤되면 그냥 천원 내고 배민원이나 쓰라는 거다.




20분을 묵묵히 달려도 옆집 마트 가기 힘든 땅덩어리 큰 나라와는 달리,

대한민국은 20분이면 옆 편의점, 약국, 병원, 포장마차 등을 찍고 올 수 있다.

시간당 기회비용이 훨씬 높은 이 나라에선 짧은 시간 내에 최대 집중력을 발휘하는 '효율성' 있는 삶.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라이프 스타일이 표준일지도 모른다.


배달 음식이란, 이삿짐을 다 풀지 못했는데 배고플 때,

혼자 사는 누군가 몸살에 걸려서 손하나 까딱하지 못할 때,

소금빵을 판다고 적혀진 포스팅을 보고 카페 네 군데를 갔는데도 하나도 못먹었을 때

시키는 것이면 '최대 효율'을 지키는 것.


지친 퇴근이 끝나고 밥 한끼까지 차려먹여야 하는 삶의 무게가 지긋지긋할 때 시키는

배달 음식은 나에게 주는 큰(이제 작지 않다) 포상이다.


근데 내가 나한테 주는 포상치고 이제 너무 비싸져서

에잇 한 번 시키지 하기에도 버겁다.

애초에 이렇게 삶의 무게가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더 무거워지는데,

30년 전의 30대, 2022년 30대들과 같은 무게인지조차 모르겠다.


그럼에도,

점심시간에 밥을 들이마시고

카페를 갔다가 회전초밥처럼 회사 주변을 빙빙 돌 수 있는 DNA가 내장되어 있는 우리는 또

열심히 살아내서 언젠가 배달비 6천원짜리 맛집의 순댓국을 아침 해장으로 먹기를 바란다.




P.S.

말레이시아에 잠깐 있었을 때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기도시간때문에 오전에 사라지고 점심먹고 사라지고 퇴근 전에 사라져서 하루종일 얼굴을 2시간도 채 못본 적이 있었다. 잠깐 개종할까 생각했었다.






출처: <DH, 배달의민족 인수에 따른 영향은> 2020-03-26

https://journal.kiso.or.kr/?p=1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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