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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사과 Sep 29. 2022

호두는 원래 연두색이다

형형색색 의외로 화려한 천연염색의 세계



화려한 천연 염색

천연염색 수업시간이다. 에린이 무지개 색깔 동그란 실 샘플을 보여줬다. 생물학자인 에린은 재작년 카펠라고든 텍스타일을 졸업했다. 학생 때 연구 주제였던 천연염색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특별 수업을 진행했다. 


예전 스웨덴 가정에는 이런 실패가 하나씩 꼭 있었다고 한다. 직접 실을 염색해서 걸어놓은 일종의 염색 샘플들인데 보기만 해도 예쁘다. 천연염색이라 하면 대개 감귤색, 흙색과 같은 재미없는 색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번 염색을 통해 그건 큰 오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염색 전 해야 할 일들


색을 제대로 내기 위해 먼저 매염을 한다. 매염이란 섬유를 염색할 때 염료가 섬유에 쉽게 스며들고 고착할 수 있게 화학처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선매염은 염색을 하기 전 염색을 쉽게 하기 위해 매염 처리를 하는 것을 말하고, 후매염은 염색을 한 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하는 것은 선매염이고, 염색된 색을 바꾸기 위해 후매염을 할 때도 있다. 화학 염색과 달리 천연 염색의 경우 색을 예쁘게 내기 위해서는 선매염이 필수다.


귀찮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매염제도 잘 알아보고 써야 한다. 울이나 실크 같은 동물성 섬유는 명반으로, 면과 린넨 같은 식물성 섬유는 아세트산 알루미늄을 사용한다. 동물성 섬유의 경우 염색할 천이나 실이 잠길 정도의 물에 섬유 무게의 15%의 명반을 넣는다. 90도로 1시간 정도 끓이면 완성이다.


식물성 섬유에는 찻잎에 들어있는 탄닌을 사용해도 되는데 찻잎에는 마시고 남은 찻잎을 다시 끓여 사용한다. 어느 정도의 양이 적당한지 물어본다면 각자 시도해보고 맞는 레시피를 찾으면 된다. 내가 에린에게 물어보았을 때도 똑같은 대답을 들었는데, 천연 염색이란 원래 각자 방식이 다르고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여러 번 시도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했다. 우리는 커다란 바구니에 들어갈 정도의 천에 밀가루 1킬로짜리 봉지 5개에 들은 마른 찻잎을 썼다. 명반과 마찬가지로 물에 넣고 끓이면 선매염이 된다.


울 실타래 선매염하기



염료 만들어 염색하기


선매염 후 염료를 만든다. 두 명씩 한 조로 염색할 색을 골라 재료를 받았다. 나와 친구가 고른 색은 자칭 크레이지 옐로, 쨍한 노란색. Weld라는 식물의 나뭇잎을 말려 잘게 부순 가루다. 한국어로는 유럽산 목서 초속이라 한다. 코를 대보니 마치 누에처럼 고약한 냄새가 났다.


사용할 천연염료의 양은 염료와 염색 천에 따라 다르다. Weld는 염색할 천의 무게와 같은 무게를 사용했다. 먼저 weld를 물에 넣고 끓인다. 고약하던 누에 냄새가 한약재 냄새, 그다음에는 마치 맛있는 수프 냄새로 변했다. 같은 워크숍에 있던 친구들도 너네 뭐 요리하냐면서 보러 왔다. 역시 90도로 1시간 정도 끓이는데 100도를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한다. 끓이고 난 weld는 걸러내어 버리면 염료 완성이다.


이제 드디어 천을 끓인 염료에 넣을 차례다. 선매염한 울 실과 천을 넣고 다시 90도에서 끓인다. 점점 실이 노랗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시간 후 염색된 실을 꺼내서 물에 여러 번 헹구어 말린다.





천연 염색한 실과 천

프린팅 워크숍 천장에 염색한 천과 실을 말리니 워크숍이 화려한 모습이 됐다. 짙은 보라색부터 귀여운 딸기우유색도 만들었다.

쨍한 다홍색을 내는 꼭두서니로 염색한 울실을 말리고 있다

로그우드는 보라색과 까만색을 낸다. 중세 시대 때 유행했던 천연 염색 염료라고 한다. 흰색이던 실과 천이 짙은 보라색으로 변하는 과정이 정말 신기하다. 딸기우유색은 연지벌레 염료를 썼다. 아보카도 염색은 여기서 조금 톤 다운된 핑크빛이 나온다. 아보카도는 먹고 난 껍질과 씨를 바로 얼려서 보관하면 된다. 



왼쪽 아래의 노란색이 내 담당이었던 weld 염색 샘플이다.

염색이 끝나고 천과 실이 다 마르면 파일로 만들어 정리를 한다. 천연염료 7종류, 선매염에 쓰인 매염제 4종류, 코튼과 울 실 2종류, 총 세 번의 염색, 모두 정리해서 20명분의 샘플을 만들어야 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다 만들고 모아보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꼭 기억할 점은 염색을 할 때는 항상 노트를 적고 샘플을 만들 것. 우연히 나온 예쁜 색이 레시피가 없다면 그것만큼 아까운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호두껍질 염색

호두나무에 열린 호두 열매. 출처 plantura


호두 열매는 원래 연두색이다?

프린팅 워크숍 앞에는 커다란 호두나무가 있다. 가을이 되자 바닥에 호두를 밟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호두가 많이 떨어졌다. 호두 껍질 염색이 예쁜 갈색을 낸다고 해서 얼른 대야를 들고 밖에 나갔다.


호두 열매는 연두색으로 크기는 자두보다 작다. 말랑한 껍질 안에 단단한 호두가 들어있고, 단단한 호두껍질을 벗겨야 먹을 수 있는 호두가 있다. 염색이 가능한 부분은 가장 바깥의 연두색 부분이다. 비가 많이 오는 날씨 탓에 이미 껍질 부분이 많이 물러져서 낙엽이 섞였다. 모아 온 호두껍질을 손으로 무르게 만든다. 장갑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호두껍질은 한번 손에 물들면 인디고보다도 오래간다. 맨손으로 하다가는 적어도 2주는 손이 온통 갈색이 되어 안 씻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으므로 주의!


진짜 염색이 되는지 의심스러웠던 호두껍질 반죽


순면, 울, 펠트, 리넨, 합성 면 다양한 종류를 염색해봤다. 예쁜 갈색이 나왔다. 앞으로는 가을에 혹시 호두나무 곁을 지나게 되면 떨어진 껍질 중 깨끗한 게 있나 잘 살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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