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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사과 Sep 20. 2022

가을에 가장 가까운 곳, 스웨덴

노란 필터를 끼고 본 세상

사계절 중 가을을 제일 좋아한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느껴질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고 낙엽이 떨어져 나뭇가지만 앙상히 남기 시작할 때의 쓸쓸함도 좋다.


카펠라고든 바로 앞 메인 도로가 노랗게 변했다. 왼쪽으로는 메인 캠퍼스가 있고 도로 오른쪽 작게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위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게스트하우스와 기숙사 네 채가 있다. 여름에는 저 쪽 기숙사에 살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길을 왕복했는데 지금은 메인 캠퍼스에 살아서 여기까지도 나갈 기회가 별로 없다.







계절마다, 시간마다 햇살도 느낌이 다르다. 가을의 햇살은 따스하고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늦은 오후의 느낌을 준다. 스웨덴은 하루하루 해가 짧아지고 있어서 점심때가 되면 햇살은 이미 저녁 같다.


낙엽이 떨어져 길을 뒤덮어 노란 카펫이 깔렸다. 뉴욕 스톰킹 공원에서 봤던 화려하게 빨간색, 노란색으로 물든 나무들도, 도쿄의 내 방 베란다 앞에서 보이던 한 신사(神社)의 커다란 은행나무도, 지구 어디서도 가을은 참 예뻤지만 여기만큼 자연이 가깝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다.


카펠라고든 메인 정원이 그림처럼 변했다. 스웨덴 욀란드의 여유로움, 많지도 적지도 않은 라곰 라이프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만 같다. 전기도 없던 몇백 년 전도, 카펠라고든이 설립된 해도, 이 곳의 가을은 오늘날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을 것만 같다.


서향인 내 방은 해 질 녘에 제일 아늑한 분위기를 낸다. 커다란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면서 해가 완전히 저물 때까지 아른아른한 그림자를 그린다. 따스하고 그립기도 하고, 또 왠지 슬픈 느낌이 들어 감상에 젖었다.


주말엔 날씨가 좋아 자전거를 타고 옆 마을에 놀러 갔다. 이 날 이후는 다시 전형적인 스웨덴의 회색빛 흐린 날씨가 계속되었고, 화창해졌을 땐 이미 낙엽은 다 떨어지고 난 후였다. 내년에는 욀란드의 가을을 못 본다는 생각을 하면 아쉽기도 했지만, 기억 속에 고이 남겨둔 스웨덴 가을, 안녕!




학교 앞 길
학교 캠퍼스에 깔린 노란 낙엽
저녁 노을이 아름답게 비치는 내 방 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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