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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사과 Oct 13. 2022

왕립 오페라 발레 감독이 주문한 장밋빛 튜튜

발레 레이몬다 의상은 이렇게 만듭니다

카펠라고든은 욀란드 시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위한 다양한 기회가 많다. 

이번에는 스톡홀름에 가게 되었다.


다음 주에 스웨덴 왕립 오페라 극장에 방문할 거예요.



왕립 오페라의 무대의상 최고 책임자인 마야가 텍스타일 학과의 린다 선생님의 친구인데, 우리를 초대해주었던 것이다. 모든 공연의 의상과 미술을 담당하는 책임자라니, 어떤 이야기를 듣고 배울 수 있을지! 




왕립 오페라는 감라스탄 역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오페라 앞 집합장소에 도착해서 정문이 아닌 직원용 입구로 들어갔다. 이곳이 아티스트들이 드나드는 곳일까? 카펠라고든과 이름이 쓰여있는 이름표는 기념으로 가져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나중에 다시 회수해갔다.



규모가 상당해서 엘리베이터를 여러 번 타고 복도를 한참 걸어서 처음 도착한 곳은 염색실이다. 염색실은 왕립 오페라에서 공연하는 모든 무대예술의 의상의 염색과 디자인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여기서 천이 준비가 되면 재봉실로 전달해 발레리나와 배우들의 사이즈를 재고 옷을 만든다. 작품 하나당 몇십 명분의 의상이 만들어지는 곳 치고는 아담한 크기라 조금 놀랐다. 


벽 쪽으로는 염색물을 세척할 수 있는 싱크대가 쭉 설치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었다. 로열 오페라는 의상의 염색도 모두 직접 한다. 동그란 은색 기계에 염색제와 천을 함께 넣고 염색한다. 테스트를 거쳐 마음에 드는 색이 정해지고 의상 디자인도 정해지면 기록을 한다. 누가 보더라도 똑같이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쉽고 자세히 써야 한다고 했다. 아카이브를 만드는 데 전체 시간의 상당한 부분을 할애한다.


마야가 의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가득한 아카이브 자료, 염색 재료, 실제 쓰인 옷 등등을 테이블에 죽 늘어놓았다. 한쪽에는 백조와 호수의 의상 여러 개가 걸려있었다. 여러 명의 의상 디자이너에게서 받은 샘플을 캐비닛에 붙여놓았는데 다양한 스타일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디자이너마다 의상 스케치를 하는 스타일도 다양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발레 레이몬다 군무에 쓰인 튜튜스커트의 색을 만들어냈던 이야기를 들었다. 


발레 감독이 원했던 것은 '어쨌든 rose pink'

장미에도 분홍 장미, 빨간 장미, 노란 장미 등 색이 다양한데 부연설명 하나 없이 장밋빛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었다. 자연스러운 장미 느낌을 내기 위해서 수백 번의 시도를 했다고 한다. 완성된 튜튜가 무대에서 빛을 받자 예쁜 장미꽃 느낌을 내서 감독과 마야 모두 만족했던 색이라고 한다.


레이몬다의 남자 주인공 의상에는 벨벳에 무늬를 내기 위해 강한 화학약품을 사용해야 했다. 염색하는 사람의 건강은 물론 환경에도 좋지 않기 때문에 빼려고 했으나 발레 감독의 강한 주장으로 들어가게 된 디자인이라고 한다. 의상 하나를 만들 때도 왕립 오페라의 프로의식과 더불어 자칫 간과하기 쉬운 환경보호에 대한 의식이 높은 스웨덴이라 생각했다. 




염색실에서 설명이 끝나고 전체 의상실을 견학할 수 있었다. 층 전체가 다 옷을 담당하는 의상실이다. 모두 우리가 지나가는데 눈길도 안 주고 열심히 일한다. 어떤 작품에 쓰일 옷을 만들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들 너무 집중해서 일을 하고 있어서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내려가는 길에 발레 연습실 하나가 열려있었다. 입구에서 살짝 안을 엿보니 아무도 없었다. 커다란 벽면 거울과 바, 댄스 플로어를 보니 이곳에서 연습하는 무용수들이 궁금해졌다.


원래는 무대의 스테이지와 백스테이지도 견학하는 일정이었는데 하필 오늘 갑자기 리허설 일정이 생긴 바람에 굳게 닫힌 문 밖으로 오케스트라 음악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두근거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매우 아쉬운 소식이지만, 스웨덴 왕립 오페라 의상실을 볼 수 있는 게 어딘가. 카펠라고든 작년 졸업생 중 한 명은 이곳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친구들과 다음 학기에 인턴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정문을 나섰다. 



카펠라고든은 자칫 시골에 속세를 떠나 자연주의적인 사람들만 모인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누구보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세계 곳곳에 열리는 전시회 등을 열심히 찾아서 자신을 알리는 데 열심이다. 생각지 못한 무대 예술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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