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는 루시아 데이 (St. Lucia Day)가 있다. 루시아는 신화에 나오는 빛의 성녀로 길고 어두운 스웨덴 겨울을 밝혀준다고 믿는다. 매 해 12월 13일이 되면 루시아를 기념하는 루시아 데이 행사가 열린다.
12월 13일은 루시아 데이
11월 말이 되자 모두 분주해졌다. 루시아 데이 준비로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 것이다. 모이기만 하면 다들 무슨 선물을 준비할 건지, 어떻게 보낼 건지 의견을 나누기 바빴다. 올해에는 리스와 양초 만들기, 그리고 카펠라고든 전통인 루시아 데이 합창단이 계획되어 있었다.
리스 만들기
크리스마스가 성큼 가까워진 12월 중순 어느 월요일 저녁, 가드닝 학과의 플로리스트 학생 두 명과 리스 만들기가 진행되었다.
아이비, 소나무, 열매가 아낌없이 준비되어 있던 테이블
저녁 먹고 워크숍으로 돌아와 잠깐 밀린 작업을 하다가 시간이 되어 카페테리아에 내려가 보니 벌써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펜치로 굵은 철사를 잘라 동그랗게 만들고 신문지로 여러 겹 감싸 두께감을 준 후 얇은 철사를 감아 신문지를 고정시킨다. 소나무와 아이비 같은 초록색 재료를 철사에 끼워 토대를 만든다. 그리고 사이사이 빨간 열매나 솔방울도 붙여 사용하여 장식한다. 마지막으로 두꺼운 빨간 리본을 둘러 장식하면 더욱 크리스마스 느낌이 난다.
텍스타일 친구와 같이 만들어 우리 학과 문에 장식하기로 했다. 작은 카페테리아에 꽉 차게 옹기종기 모여 리스를 만들고 있으니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난다.
양초 만들기
향초 만들기도 해 본 적 없는 나는 이런 기다란 양초를 직접 만드는 것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과정은 의외로 간단해서 나무판에 달린 양초 심지를 솥 안에 들어있는 뜨거운 초 액체에 담갔다 꺼내면 된다. 한번 꺼낸 초는 다시 빈자리에 매달아 놓아 굳힌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점점 초 모양이 되는데 한 번씩 담그고 식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두세 시간은 걸려야 웬만큼 촛대에 꽂을 수 있는 크기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긴 카펠라고든, 수공예의 학교에서 양초쯤이야!
양초도 만들고 핫도그와 애플 사이다도 먹고 우리가 만든 리스를 가지고 워크숍으로 돌아왔다. 만든 양초들은 루시아 데이 합창 때 쓰려고 준비해두었다. 스웨덴의 겨울나기는 아늑하고 재밌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루시아 데이 합창단
카펠라고든에는 12월 13일 루시아 데이 저녁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는 전통이 있다. 학생들이 지원해서 같이 연습하고 선보이는 일종의 작은 발표회다. 다 같이 뭔가 목표를 세워하는 걸 워낙 좋아하고 고등학교 때 잠깐 합창반도 했던 나는 바로 손을 들고 참가하게 되었다.
악보를 몇 장 받았다. 루시아 데이엔 뭘 부를까 내심 궁금했는데 이럴 수가, 우리가 아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하나도 없고 읽을 수 없는 스웨덴어만 가득한 악보라서 울상이 된 나에게 친구들이 다가왔다. 발음을 하나씩 해줄 테니 받아 적으라는 거였다. 그래서 스웨덴어 발음을 괴상한 한글로 적었더니 정말 웃기고 어색했지만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럼 한국어로도 노래를 하자!
올해 지원한 학생들 중에는 나를 포함해 한국, 일본, 덴마크 친구들이 있었다. 덴마크 친구는 스웨덴어가 능숙했는데 일본 친구들과 나는 스웨덴어로 부르는 노래에 조금 애를 먹었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각 나라의 언어로 노래를 하자는 의견을 냈다. 마침 크리스마스 캐롤 중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한국과 일본에 있어서 가사를 합창단원들에게 가르쳐줬다. 한국어 발음이 어렵다고 했다. 나도 스웨덴어 발음이 어려운걸!
먼 땅 스웨덴에서 외국 친구들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게 될 줄이야. 다들 어색한 한국어 발음이지만 열심히 노력해줘서 더 신이 났다. 이 주 동안 매일 저녁시간에 한 시간씩 모여서 연습을 했다. 루시아 데이 노래도 크리스마스 캐롤만큼 좋았다.
직접 만든 양초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드디어 루시아 데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화관도 쓰고 직접 만든 양초도 들고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라이브러리로 향했다. 나름 무대에 서는 거라고 생각하니 두근두근했다. 무사히 준비한 노래를 모두 부르고 내려왔다.
북유럽의 크리스마스보다 더 겨울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재미있는 경험을 해서이기도 하지만 스웨덴에서 난 첫겨울은 어딘지 더 특별한 느낌이 났다. 순록을 볼 수 있을 것만 같고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