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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사과 Sep 21. 2022

단팥죽도 나눠먹는 스웨덴 피카

수공예 학교에서 만들어 먹은 단팥죽

도시에서 일과 야근에 치이며 회사생활을 할 때와 비교하면 시간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매일이 꽤 자유로운 이곳 생활도 주말이 되면 왠지 즐거운 건 어쩔 수 없다. 주로 주말엔 학교 과제 이외에 내 나름대로 계획한 작은 프로젝트에 열중하거나, 요리를 해서 친구들과 나눠먹거나 한다. 마침 욀란드 섬 바다 건너 큰 슈퍼에서 사 온 팥이 있어 이번 주는 단팥을 만들기로 했다.


마지막 낙엽이 떨어지기 전 눈이 왔다






스웨덴 팥과 콩

단팥죽을 만들려면 단팥 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팥은 스웨덴 요리 재료가 아니다. 샐러드에 가끔 삶은 콩이 나오지만 그것도 스웨덴 전통 음식은 아닌 것 같다.


친구와 내가 각각 재료를 준비해왔다. 나는 욀란드에서 다리 건너 나오는 칼마 동네 슈퍼에 갔을 때 발견한 레드 키드니빈을 들고 갔다. 글쎄, 이건... 솔직히 콩에 가까웠다. 첫눈에 보기에도 팥이라기보다는 콩이었다. 구글도 열심히 검색해봤지만 레드 키드니빈은 재패니즈 아즈키 빈, 즉 팥이라고 나와있었다. 더구나 뒷면에는 아즈키 빈이라고 떡하니 쓰여있길래 약간 수상하지만 팥이 맞겠지 생각하고 일단 사 와봤다.


일본 친구 미호는 '진짜' 팥을 가지고 왔다. 본 순간 아 이게 팥이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두 개다 써서 만들기로 했다.


레드 키드니빈과 팥. 아무리 봐도 콩과 팥이다.




단팥 끓이기

냄비에 팥 500g과 물을 넣고 5~10분 정도 끓인 후, 물을 전부 따라버린다. 그리고 다시 팥이 잠길 정도로 물을 채워주고 중불에 한두 시간 끓인다. 이렇게 하면 쓴맛이 없어진다고 한다.


팥은 한 시간 동안 열심히 끓여도 딱딱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두 시간을 끓였다. 오히려 레드 키드니빈이 걸쭉하니 팥 앙금과 비슷한 느낌이 되었다. 어느 정도 물러지면 설탕 300~400g을 세 번에 나누어 넣고 더 끓인다.


레드 키드니빈(위)과 팥(아래)


새알심 만들기

미호가 가지고 온 찹쌀가루로는 새알심을 만들기로 했다. 일본에도 단팥죽이 있는데 우리나라 팥죽처럼 동그란 떡이 들어간다.


새알심 만들기는 쉬웠다. 찹쌀가루에 소금 약간과 따듯한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반죽을 한다. 너무 질지 않게 반죽이 되면 작게 굴려 새알심 모양을 만들고, 끓는 물에 떠오를 때까지 넣어서 익힌다.


열심히 작은 원 반죽을 만들어 끓는 물에 퐁당퐁당 담그고 있는데, 미호가 만드는 새알심은 모양이 다른 것을 발견했다. 미호의 새알심은 크기는 비슷하지만 납작한 원 모양이었다. 시로다마라고 부르는 일본의 새알심은 납작한 모양이라고 한다.



팥앙금과 단팥죽

레드 키드니빈으로 만든 팥앙금이 완성되었다. 처음 끓일 때는 도저히 팥죽의 냄새가 아니어서 나름 걱정했으나 완성되고 보니 맛도 생김새도 딱 팥앙금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에서는 이 레드 키드니빈 앙금도 디저트에 쓴다고 하니, 전혀 엉뚱한 걸 만든 건 아니었다.


진짜 팥으로 만든 앙금에는 새알심과 물, 설탕을 더 넣고 팥죽으로 만들었다.





오후의 피카 타임

팥앙금과 단팥죽이 완성되어 피카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아시안 피카라며 스웨덴 친구들도 불렀다. 진하디 진한 북유럽 커피 대신 녹차를 준비했다. 스웨덴 친구들의 단팥죽 감상은? 레드빈은 음식이지 디저트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단맛이 나는 게 생소하지만 맛있다고 했다. 그럼 그럼, 쌀쌀한 날엔 단팥죽이 별미지!


새알심 두 개씩 들어간 단팥죽 한 그릇씩과 새알심과 찍어먹을 팥앙금도 따로 준비했다. 새알심 뒤에 보이는 건 쇼코가 일본에서 가져온 시오콘부다. 얇게 자른 다시마를 소금과 설탕에 절인 후 단팥죽과 같이 먹는다. 단팥죽을 먹고 조금 달다 싶으면 짠 시오콘부를 먹고, 좀 짜다 싶으면 다시 단팥죽을 먹고, 이렇게 단짠단짠의 법칙으로 무한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잘 먹지 않는 단팥죽 이건만 오랜만에 팥의 단맛과 쫄깃쫄깃한 떡의 식감, 한국이 그리워지는 오후였다. 너무 맛있고 만들기도 쉬워서 앞으로는 자주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남은 팥앙금은 얼려두었는데, 나중에 단팥빵을 만들기로 했다.


다 먹고 나니 밤이 되어 있었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스웨덴의 길고 긴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조촐하지만 도란도란 재미있던 피카
벌써 눈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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