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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사과 Sep 14. 2022

스웨덴에도 해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늑한 가을밤 욀란드의 가을 축제 Harvest Festival

여름이 가고 9월 즈음 가을이 일찍 찾아왔다.


아침에도, 밤에도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던 스웨덴의 여름이 가고 있었다. 기온도 조금씩 내려갈뿐더러 요즘에는 내 기상시간과 같이 동이 트고, 이른 저녁을 먹는 오후 5시 즈음엔 노을이 진다. 한국인인 나에게는 지극히 익숙한 태양의 움직임이다. 


아직 가을의 따스함이 만연한 어느 날, 욀란드에서 하베스트 페스티벌이 열렸다. 고대 농부들의 전통을 되살려 1997년에 시작된 가을 축제다. 욀란드 섬 전체를 통틀어 900가지의 크고 작은 이벤트가 일어나는데, 카펠라고든도 학교에서 축제를 열기로 했다. 텍스타일, 도예, 가구, 가드닝 각 학과에서는 작은 워크숍을 준비했다. 유기농 음식을 파는 카페와 작은 콘서트도 기획했다.


축제 일주일 전부터 한 명도 빠짐없이 다 같이 준비를 했다. 방문객을 끌어들일 학교 홍보, 카페, 콘서트, 인테리어 등등 그룹을 나누어 모두 각자 맡은 일을 하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우리의 작업실도 공개하게 되었는데 학생들은 토, 일요일 중 하루는 스튜디오에서 각자 작업을 하면서 손님맞이도 해야 하기 때문에 꽤나 바쁜 주말이었다.


카펠라고든 방문객을 위한 이정표




평소 카펠라고든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키친 그룹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장 큰 일은 카페테리아를 카페로 바꾸기 위해 내부 인테리어를 꾸미는 것이었다. 친구 두 명과 손님들의 동선을 고려하여 어떻게 하면 매끄럽게 사람들을 대접할 수 있을지 의논했다. 마치 처음 카페를 오픈하는 동네 카페 주인이 된 것 같은 책임감이 느껴졌다.


가든의 아이비를 잘라와서 천장에 걸고, 테이블 위에 꽃을 바꾸고 바닥청소도 하고, 모닥불을 피기 위해 우드워킹샵에서 나무도 가져다 벽난로 옆에 예쁘게 준비해 놓았다. 지나가던 스웨덴 친구가 카페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며 진짜 카페처럼 멋있게 메뉴판도 써주었다.


판매용 디저트는 키친에서 만들었다. 우리는 디저트를 예쁘게 데코해서 진열하고, 커피도 같이 주문할 수 있도록 도예학과가 만든 머그잔을 포스기 옆에 두었다. 마지막으로 계산을 위해 포스기 사용법도 배웠다. 스웨덴어로만 되어있어서 나는 이런저런 버튼의 위치를 기억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말이다.



데코를 의논하는 중


까다로운 스웨덴 유기농 KRAV 인증을 받은 디저트다.





축제의 진짜 메인은 밤이 되어서 시작했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오기 시작했다. 촛불을 켜니 낙엽 깔린 정원까지 어딘지 그리운 영화 속 가을밤의 분위기가 바로 연출되었다. 나는 카페 오프닝 그룹이었는데 밤이 될수록 사람들이 많아져서 줄이 벽까지 늘어설 정도였다.


내가 카페를 맡은 시간이 끝나고 다음 그룹에게 바톤을 넘긴 후 슬슬 돌아보기로 하면서 지난주에 딴 사과로 만든 사과주스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딱 말 그대로 사과맛이 났다. 생각보다 시거나 달지 않고, 정말 사과맛만 나는 주스였다. 유기농 사과로 만든 사과주스. 한 박스 살걸 후회했지만 어차피 많이 마시지 않을걸 알기에 한 잔으로 충분했다. 



가을느낌 물씬 나는 카펠라고든 입구
아늑한 카펠라 가을 밤



가드닝 학과에서는 재배한 농작물을 파는 코너를 준비했다. 호박으로 장식하고 야채들을 귀엽게 진열해두었는데 아기자기해서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그러다 우엉같이 생긴 뿌리를 발견했다. 아무리 봐도 우엉같이 생겨서 일단 두 줄기를 사왔다. 나중에 스웨덴 친구에게 물어보니 역시 우엉이 맞았다. 뿌리채소가 많은 스웨덴이지만 우엉은 별로 인기 있는 재료가 아니라고 했다. 우엉을 좋아하는 일본 친구와 같이 우엉 수프를 만들어먹었다.


한쪽에서는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축제 삼일 전부터 점심시간에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콘서트 그룹이 연습하는 소리였다. 노래는 단 두곡 부르고 끝난 간단한 콘서트임에도 모두 진지하게 듣고 박수도 열심히 쳐주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렇게 또 하나 기억에 오래 남을 스웨덴 추억을 만들었다.


우엉같이 생긴(!) 우엉
나름 아마추어 프로 같은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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