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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사과 Sep 19. 2022

파란 손을 얻게 된 이야기

가장 오랫동안 세계적으로 사랑받아온 블루, 인디고를 통해



인디고 염색 수업이 시작됐다.
파란 손톱과 파란 손을 얻었다.


바질 잎처럼 생긴 쪽잎 (출처: 위키피디아)과 파랗게 염색된 손

인디고는 한국에서 '쪽'이라고 부르는 식물이다. 쪽빛, 쪽염색. 바로 이 인디고 염색이다. 인디고는 천연 인디고와 인조 인디고 두 종류가 있다. 천연 인디고 가루는 쪽잎을 삭이고 우리고 말리는 등 길고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 만든다. 둘 다 써본 결과 천연은 파란색이 좀 연하고 인조는 그에 비해 일정하고 진한 파란색을 냈다. 


냄비에 담긴 천연 인디고와 그 옆의 인조 인디고
인디고 가루를 물에 개어서 따뜻한 물에 섞고 있다


염색을 하려면 인디고 가루를 물에 풀어서 염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을 만드는 다양한 레시피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따뜻한 물과 화학약품을 섞어놓은 커다란 솥에 인디고를 물에 풀은 것을 넣으면 인디고 염료 완성. 디테일하게 비율을 달리하거나 물의 온도를 조절하거나 하는 것에서 차이가 나는데 우리는 선생님이 오래 써오신 방식으로 만들었다. 


만들어진 인디고 염료 통에  염색할 것을 넣었다 꺼낸다. 얼마나 담가 둘 것인지는 몇 초부터 몇 분, 혹은 몇십 분까지 원하는 디자인과 그날그날 인디고 상태에 따라 달라서 많은 테스트와 인내심이 필요했다. 통에 담갔다 꺼내면 처음에는 초록색이던 염색물이 공기와 만나 산화되면서 점점 파란색이 나오는데 그 과정이 정말 신기하다.


염색을 반복할수록 더 진한 파란색이 된다. 원하는 색이 되었으면 더 이상 파란색 물이 나오기 전까지 물로 잘 씻어야 한다. 장갑도 별 소용이 없어서 그냥 맨손으로 한다. 파란 손톱과 파란 손은 덤이다. 염색 주간 내내 텍스타일 학과 모두가 파란 손이었다. 손에서 물이 마를 새도 없다. 염료에 쓰이는 화학약품이 강해서 손이 점점 거칠어지고 건조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결과물을 보면 뿌듯하고 과정도 재밌어서 멈출 수가 없다.


깨끗이 헹군 천을 말리고 다리면 끝. 다행히도 날씨가 좋고 하늘이 파랗다. 햇빛 쨍쨍하고 건조한 북유럽의 날씨 아래서는 두세 시간이면 다 마르기도 한다.




수업 때 매운 건 일본의 전통 쪽 염색 테크닉인 시보리였다. 시보리란 염색할 천을 다양한 방법으로 접거나 끈으로 묶거나 해서 모양을 내는 기법을 말한다. 접어서 인디고 염료에 닿지 않은 부분은 천의 색이 그대로 남고, 인디고에 닿은 부분은 파란빛을 띤다. 


먼저 종이를 염색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선생님이 일본에서 가져온 한지도 조금씩 써볼 수 있었다. 한국인에게는 전통 종이인 한지(韓紙)가 스웨덴 친구들에게는 생소한지 처음 봐서 신기하다는 감탄사를 들을 수 있었다.


다양한 시보리 기법 작품들 (출처: 포터리반 사이트)



시보리는 테크닉이 정말 다양한데, 한 가지 테크닉만 전문으로 하는 장인이 있을 정도로 깊게 파고들수록 매력 있는 염색법이라 생각한다. 카펠라 고든 텍스타일 도서관에도 시보리 관련 책이 많이 있다. 모두 다 시도해보고 싶었으나 이번 수업 때는 아라시 시보리, 마메 시보리, 그리고 이타지메 시보리를 해보았다.


 프린팅 하우스 앞에서 시보리 기법으로 염색한 천을 말리는 중





아라시 시보리

커다란 파이프에 천을 감아 고정시킨 후 두꺼운 실을 천 위에 대각선으로 감아서 고정시킨다. 실을 싸맨 부분은 인디고 염료가 닿지 않아 흰색이 되고, 염료와 닿은 부분이 파랗게 된다. 내년 여름에 하고 다닐 수 있는 대각선 스트라이프 실크 스카프가 생겼다.




이타지메 시보리

이타지메 시보리는 염색할 천을 접은 후 나무 조각으로 쪽물이 들어가지 않을 부분을 집게로 집은 후 염색하는 방법이다. 종이접기 하는 것만 같고 만드는 방법도 제일 간단한데 결과물은 그래픽 디자인처럼 멋있게 나온다. 접는 방법과 사용하는 나무 조각의 모양에 따라 정말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다.


마메 시보리

천에 콩이나 작은 공을 넣고 그 주변을 줄로 동여매고 염색을 하는 테크닉을 마메 시보리라고 한다. 콩을 넣는 위치와 방법에 따라 무궁무진한 디자인이 가능하다.


이렇게 멋진 쿠션 커버도 가능하다! (출처: jugu.co.uk)






카타조메

마지막으로 종이와 시보리 다음으로 한 가지 더 시도한 기법이 있다. 선생님인 린다가 일본에서 수업을 위해 카타조메 기법을 위한 준비물을 가지고 왔다. 형지에 무늬를 박아서 염색한 것으로 스텐실과 같다. 형지를 여러 개 만들어 다양한 색과 모양을 넣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가 시도한 것은 인디고 염색과 카타조메를 같이하는 방법이다. 어느 부분이 염색되고, 염색되지 않을지 잘 생각해서 디자인을 한 후, 형지에 옮겨 칼로 자른다. 이 형지 뒤에는 풀이 있어서 다리미로 메시에 붙이고 천 위에 올려놓고 풀로 스크린 프린팅을 한다. 천에 프린팅 된 풀이 마르면 인디고 염료에 넣어 염색을 한 뒤 물로 풀을 씻어내면 된다.


프린팅 하는 풀이 쉽게 굳어서 농도 조절을 해가며 해야 한다. 굳으면 세밀한 선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인디고 염료에 넣었을 때는 풀이 씻기지 않게 일자로 넣고 살짝만 흔들며 조심해야 한다. 


시보리는 어떤 모양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데 그 점이 시보리의 매력이다. 카타조메는 내가 그린 그림이 그대로 나와서 좀 더 컨트롤이 가능했다. 종이에 나온 결과물이 귀여워서 많이 만들었다. 엽서로도 만들어서 한국 친구들에게 보내야지!


스웨덴은 이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흐린 날씨가 계속되다가 주말에 반짝 해가 날 때 염색한 천을 밖에서 말리고 사진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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