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위로』 서평
나는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사람이다. 예전부터 그랬다. 산책을 하다 마주하게 되는 햇살과 윤슬, 선선한 바람에도 행복을 느낀다. 밤에 번지는 네온사인과 종종거리는 동물들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그럴 때마다 세상이 참 아름답게 보이고, 그런 세상에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는 시골이다. 게임이나 학원보다는 자연에서 보낸 시간이 많다. 수업이 끝나면 논두렁 사이를 가로지르는 지름길을 지나, 뛰어다니며 잠자리를 잡곤 했다. 진달래 꿀도 따먹고, 내천에 아무생각 없이 몸을 던져 흠뻑 젖은 옷으로 친구들과 거리를 활보했다. 뜨거운 여름날 흙과 지렁이를 만지며 얼굴이 새까매진 채로 집에 들어가기도 하며, 심지어 어느 날은 등교 중에 밭을 갈고 있는 소를 본 적도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황토색 밭을 끼고 산 속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곳으로 진학했다. 성장하는 내내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내가 작은 것을 관찰하고 기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책을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당연히 『야생의 위로』를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자연의 신비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통해 우울을 어느 정도 이겨냈다는 것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나 역시 자연을 좋아하지만, 여태까지 이 덕으로 내 상태가 호전되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 때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었고, 지금도 그 잔재가 나를 괴롭히는데,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조금의 약과 버티는 일만이 효과가 있었다. 작가는 무려 25년 동안이나 고통 안에서 살았다고 한다. 내가 살아온 날들에 준하는 시간이라니.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가정을 꾸렸고, 다양한 직업을 갖고 일을 해냈다. 작가 소개란에 적을 수 있는 번듯한 이력이 있다는 것은 꽤나 멋진 일이다. 물론 나열된 정보로 누군가의 삶과 고통을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일을 할 수 있으니 그렇게 아픈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말들은 쥐약이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이력이라고 적어내릴 것이 없고, 우울은 내가 하는 일들을 족족 망쳐놓았다. 작가의 비결이 궁금했다. 어떻게 고통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이기적일지도 모르지만, 나도 자연의 덕을 좀 보고 싶었다.
작가인 에마 미첼은 동물학을 전공했고, 박물학자,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의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25년 동안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야생의 위로』는 그가 자연으로부터 받은 치유와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서문에서 그는 ‘당신이 무기력해져 소파나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들큼한 슬픔의 진창에 빠진 기분일 때, 이 책으로 내가 관찰한 것들을 잃으며 사진과 그림을 보고, 나아가 직접 고둥이나 족제비를 찾아 나섬으로써 위안을 찾게 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25p)’라고 직접 책을 쓴 취지를 밝혔다. 월 별로, 총 12개의 다른 만남과 상황이 전개되는데, 예를 들어 5월은 ‘나이팅게일이 노래하고 사양채꽃이 피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 장에서는 겨울 내내 움츠렸던 자연에 대한 탐구가 살아나고, 차를 몰아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들으러 간 일, 기분이 좋아져 오솔길의 냄새를 만끽했던 일 등이 서술되어 있다. 작가 본인의 상태, 마주한 자연, 이를 통해 느낀 점과 고찰 등이 각 장의 주된 구성이며, 1년 동안 이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는 내용은 없다. 그러나 단순히 경험만 나열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 과학적 정보들도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계절성정서장애라는 일시적 우울증이 존재한다는 것, 주로 겨울에 나타나는 이유는 일조량 감소가 세로토닌 분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것. 매화의 상징적 의미나 무당벌레의 습성 등의 객관적 사실들은 작가의 말에 힘을 실어준다. 동시에 독자들에게도 위로의 제스처를 취한다.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어느 정도 불가피한 과학적 작용이라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한 표현과 매끄러운 번역이다. 한국어로 쓰였다고 해도 감탄할 만한 문장인데, 번역을 거쳤다니! 단어들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직접 체험하지 않았더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절성정서장애가 올해도 내 뇌신경에서 음침한 홍차처럼 우러나기 시작한 건 아닌지 두렵다(44p)’, ‘나 자신이 점점 고착되어 시무룩한 삿갓조개처럼 자리에 들러붙는 게 느껴진다(70p)’, ‘햇살이 목덜미를 데워준다(168p)’, ‘이 병은 거대한 잿빛 민달팽이처럼 내 마음을 깔고 앉았지만(175p)’ 등 밑줄 친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글에서 드러나는 과감함과 진솔함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유사한 구성이 매 달 반복됨에도, 이러한 표현 때문인지 읽는 것이 즐거웠다. 느슨해질 틈이 없었다. 따로 삽화가를 두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들었는데, 이 책이 온전히 그의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집필 후에 추가되었을 그림이나 사진이 글의 흐름을 깨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야생의 위로』에서는 작가의 의도대로 글과 그림, 사진이 하나가 되어, 독자들을 쉼으로 이끌어주는 듯 했다. 1월이 아니라 10월부터 시작해서 이듬해 9월에 끝나는 구성도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울은 실재한다. 여느 영화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제 누구도 불행하지 않아요!’로 마무리될 수 없다. 작가도 이 책을 마무리 지었지만, 아마 여전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자연이 아름답고 극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여름쯤 ‘자연에서 오는 위로를 받을 준비가 되셨나요? 저는 지금 행복해요.’라고 마무리하지 않은 이유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계절은 돌아 다시 원점, 슬그머니 가라앉는 시간이 된다. 앞날이 괴로울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렵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덜컥 고통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작가의 제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번 해에는 황홀한 자연의 위로를 택할 것인지 말이다.
나는 장점으로 보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반복되는 구성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극적인 전개를 좋아한다면, 이러한 면이 결정적인 단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잔잔한 시집이나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 언제든 꺼내어볼 수 있는 책을 소장하는 사람, 자연을 좋아하고 위로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내가 왜 자연에게서 무언가를 얻지 못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어렸을 때와는 달리 최근의 나는 편의에 따라 자연을 택했다. 이치와 흐름 속에 몸을 맡기지 않고, 내킬 때만 시선을 외부로 돌린 것이다. 산책하며 발견한 작은 것들에 대한 기쁨은 일시적이었다. 잊었기 때문에 나에게 남은 것은 없었고, 또 다시 자극적인 디지털 세계로 돌아와 우울해진 것이다. 작가는 자연의 힘을 믿었다. 지금 불안하고 고통스러울 지라도, 자연은 나를 위로해줄 것임을. 여느 때처럼 괜찮아지고 이겨낼 것임을. 나는 나이를 먹으며 겁이 많아졌고, 모든 것을 의심하며 가벼이 여겼다. 물에 젖는 것이 골치 아파지고, 엉겨 붙는 진흙이 귀찮고, 까맣게 그을린 살이 싫어졌다. 그러나 밖으로 나갈 시간이 된 것 같다. 자연을 마주하여 그로부터 오는 효과를 만끽해야겠다. 금방 날아가지 않도록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고, 여유롭게 그림을 그릴 것이다. 시원한 공기가 폐로 들어와 온 몸으로 스며들 때까지, 몸을 일으켜 또다시 밖으로 나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