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 앞에 놓인 풍경

목자를 아는 양처럼

by 흑진주

우윳빛이 스며든 피콕그린빛의 테카포 호수.

거기에는 작은 교회가 하나 있다.

선한 목자 교회(Church of the Good Shepherd).

뒤로는 안개 낀 산이 수묵화처럼 펼쳐져 있고, 옆으로는 호수가 잔잔하게 누워 있었다. 교회는 작고 낮고 조용했다.

내부로 들어가면 정면에 직사각형 창이 하나 나 있다. 창 중앙에 십자가가 있고, 그 너머로 방금 지나온 호수와 산이 그대로 보인다. 인위적인 장식 대신 자연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떠들던 여행객들도 모두 숙연해졌다.

창밖으로 펼쳐진 자연을 배경으로 묵묵히 서 있는 작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내면의 소란스러웠던 생각들을 하나둘 내려놓는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종교가 무엇인지 상관없이 다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교회의 이름 '선.한.목.자'.

아그로돔에서 목자의 손에 붙들려 털을 깍이던 양의 모습이 떠오른다. 날카로운 기계가 몸을 훑고 지나가는 순간에도 양이 잠잠할 수 있었던 건, 목자의 손길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목자와 양이 보여준 친밀함은 ‘털 깍는 것이 유익한 일’이라는 단단한 신뢰를 낳았고, 그 신뢰가 있었기에 양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길 수 있었다.¹


며칠간의 여행이었지만, 이 땅은 자연에 맞서기보다 그 안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면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땅이 내어주는 만큼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곳을 감싸안은 평안은 그 손 앞에 조용히 머무는데서 나오는 것 같았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 손을 신뢰하기에 편안한 안식을 누리는 것처럼. 깍이는 양처럼.


¹ 양은 하루 8~12시간을 풀을 뜯는 부지런한 동물이다. 강한 무리 본능과 함께 신뢰하는 리더를 따르는 특성이 있어, 목자와의 규칙적인 접촉과 일상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목자를 따르게 된다. (Wikipedia — Sheep: https://en.wikipedia.org/wiki/Sh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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