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강남 물난리를 보는 UX디자이너의 시선
최근 서울 특히 강남에서 물난리가 났었죠. 이것은 재해입니다. 이 사건은 자연재해이면서 인재이기도 하지요. 저는 20세기에 강남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고3때였어요. 그떄도 여름에 폭우가 쏟아져서 탄천이 범람 위기였습니다. 종합운동장과 정신여고 사이 도로는 거대한 수영장이 되었어요. 하루만 비가 더 오면 대치동과 잠실본동은 물바다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학교는 휴교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철없는 저와 친구들은 탄천이 범람하기를 간절하게 빌었습니다. 다행히 비는 탄천 범람 직전에 그쳤고 저는 투덜거리며 등교를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강남은 물에 잠겼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여러번 잠겼었죠. 사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대치동은 90%가 언덕입니다. 센프란시스코보다 훨씬 심하죠. 오죽하면 대치동의 "치"자가 언덕 치자입니다. 겨울이 되면 과거 대치동은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 많은 언덕들이 전부 얼어붙어서 차들이 미끄러지고 그랬어요. 지금은 대형 아파트 단지가 많이 생기면서 평평하게 밀어버렸지만 지금도 주택가로 가면 안습입니다. 비슷한 곳이 어딜까요? 청담이죠. 대로변에서 한 칸만 안으로 들어가면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되어 있고 주차 지옥이 펼쳐집니다.
자. 시간을 더 앞으로 돌려서 조선으로 가봅시다. 왜 서울이 도읍이 되었으며 왜 사대문을 강북에 만들었을까요? 왜 한강 이남에는 빈민들이 살았을까요? 애초에 사람이 살기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래밭이어서 농사를 짓기에도 적합하지 않고 지대도 낮았던 것입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사람들은 대부분 강남을 탐합니다. 사람들이 강남을 탐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쇼핑몰이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해. 나는 번화가가 가까운 곳에 살아야해. 나는 교육이 좋은 곳에서 살아야해.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 근본적인 욕망은 결국 나는 비싼 곳에서 살고 싶어. 입니다. 그럼 사람들은 왜 비싼 곳에서 살고 싶은 것일까요? 강신주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 보면 자본 사회의 사람들이 돈을 욕망하는 이유는 돈이 가지고 있는 권력를 욕망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강신주 작가님의 의견에 100% 동의합니다. 과거 봉건 사회나 왕정에서는 태생이 권력을 결정했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사회가 되면서 돈을 가지면 누구나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인간들은 모두 평등하게 돈을 욕망할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엔 신분에 맞지 않게 권력을 탐하는 사람은 죽었죠.
그래서 사람들은 비싼 데 살면서 좋은 차 타고 좋은 제품 쓰고 이러면서 타인과 "구별되고자" 하는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내면에는 "구별 = 권력"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즉, 권력에 대한 욕망, 다시 말해 권력에 대한 결핍이 사람들의 마음을 구겨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뚤어진 그러나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일반화된 다이나믹스를 증명하듯 해프닝이 하나 터지죠. 바로 정동원 인스타그램 피드입니다.
돈 = 권력을 가진 사람은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기 마련입니다. 정동원 정도의 사람도 권력에 취해서 수해라는 공동의 위기를 자신의 개인적인 유희와 연결시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정동원만의 문제일까요?
연일 뉴스와 유튜브를 도배하고 있는 것은 고급 승용차 침수입니다. 자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돈과 관련된 것들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애초에 왜 이런 일이 발생했고 자영업자들이 지금 얼마나 고통받고 있으며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피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습니다. 80년대에는 이렇게까지 비인간적인 뉴스가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피해받은 사람들의 인터뷰가 하루종일 전파를 탔죠.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여성 인권이 바닥이었을지는 몰라도 인간 자체에 대한 시선이 지금처럼 차갑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뉴스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어요. 중고차, 침수차 이야기만 하는 것이죠. 정동원을 욕하고 싶으시면 스스로 이 부분부터 한 번 생각해보세요. 자신이 자본 사회의 앞잡이로 살고 있으면서 또 다른 자본 사회의 앞잡이를 비난하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부터 한 번 생각해봅시다.
디자이너는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죠. 그러면 디자인이 뭘까요? 이 이야기가 시작되면 밤새도록 계속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하겠다 말하겠죠? 아니에요. 디자인은 그냥 만드는 일입니다. 제가 늘 말하지만 디자인에 대해서 길게 떠드는 건 뭔지 몰라서 그러는거에요. 디자인이라는 것이 만드는건 만드는 것인데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1. 디자이너의 철학과 의도가 반영
2. 다른 디자이너의 작업과 구별이 가능한
3. 상업적인 목표를 가진
자.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에펙, 피그마 기술자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절대로 마음과 머리를 쓰지 않아요. 그냥 남들이 하는데로 따라하고 비슷하게 만들기만 합니다. 예전에는 그런 애들을 학원 디자인이라고 했죠. 속된 말로 하빠리입니다. 디자인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자신의 작업에 단가만 생각하는 인간들입니다. 자본 사회에서 그런 사람들이 자신이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고 싶은 권력욕구는 더 크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건 참 웃긴 일입니다. 당연히 많은 대중들은 깊은 사고를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본 사회의 성실한 구성원으로서 돈을, 권력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돈과 권력을 추구한 디자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동원 사건을 기억하세요. 정동원 욕을 하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임에도 정동원의 잘못은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그래요. 디자이너가 진심을 잃고 디자인을 하게 되면 대부분 정동원처럼 돌팔매를 맞을겁니다. 물론 대중들을 속이는 인생 자체가 거짓부렁인 악인들도 있어요. 당신이 만약이 그런 타고난 사기꾼이 아니라면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정말 내 마음이 가는데로 디자인을 하는거에요.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내가 가슴 아픈 것들을 디자인해야합니다. 회사일을 할 때도 정말 내가 이 일을 잘 되게 만들고 싶고 나아가서는 내가 이 일이 옳다고 믿을 때 그 경험으로부터 얻는 교훈들이 풍부해지는 겁니다. 저는 안좋은 사례를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돈만 슈킹하기 위한 서비스 모델인데 그것을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이 유명해지면 결과는 망하던 말던 상관없는 것들. 사용자는 없고 자본만 존재하는 그런 디자인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생각해봅시다. 폐지줍는 노인들을 위한 디자인이 손수레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폐지 줍는 노인들이 사용자라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부터 디자인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리어카를 디자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너희들은 길에서 폐지나 주어라. 이런 생각입니까? 폐지 줍는 노인을 위한 디자인은 리어카가 아니라 그들이 길에서 리어카를 끌지 않아도 되도록 다른 것들을 디자인하는 것이 순서에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디자인할때 사용자를 보지 않습니다. 마치 정동원처럼요.
저는 강남에서 자라고 강남에서 회사다니면서 너무나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디자이너라는 직함이 중요한 것일까? 디자인이라는 활동이 중요한 것일까? 사람들은 점점 더 본질에서 멀리 떨어지고 있으며 자본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본질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는 것을 모르고 말입니다. 과거 사회에서 강남은 주거지로 매력이 없었습니다. 박정희 정권때 자본이 강남으로 흐르면서 돈으로 인해 매력이 생겼지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주거의 본질을 잊어버렸습니다. 집은 그저 5만원권 다음으로 큰 고액 화폐가 되어 버렸죠. 우리의 머리 속은 망가져도 한참 망가졌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네요.
자. 생각해봅시다.
강남이 정말 주거지로 좋은 곳일까요?
좋은 주거지는 어떤 곳입니까?
당신은 생각한데로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사는데로 생각하는 사람입니까?
이번 수해로 피해를 입은 분들의 걱정은 진흙과 습기처럼 잘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분들이 하루라도 빨리 피해복구를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