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써 본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시제
[ 60세 할아버지와 20세 친손자가 몸이 뒤바뀌는 이야기를 극적으로 풀어내 쓰시오. ]
이번에 나온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수시 시제, 한 번 써 본 짧은 단편을 업로드해 본다.
<저주이자 선물>
여기, 한 육십 세 남성이 있다. 그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선 채 자신을 죽여버릴 것처럼 노려본다. 그는 고함처럼 그 이름을 속으로 내지른다. 김영춘! 또다시 내지른다. 김영춘! 이윽고 그의 두 손이 전광석화처럼 올라간다. 그는 자신의 목을 조른다. 그의 두 눈엔 혐오감이 가득하다. 그가 맞춘 알람은 3분에서 2분 59초로, 뚝뚝 떨어진다. 시간이 없다. 벌게진 얼굴로 이윽고 그는 소리친다. “왜 하필 당신이야!”
시간은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며칠 전부터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두 명씩 무작위로 몸이 바뀐다는 보도를 보았을 때, 스무 살 김준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모두가 그러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백 커플 이하로 된다고 하였으니 당연히 자신은 해당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간과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신의 선물이며 저주라고 했다. 선물과 저주라니. 그 두 단어가 동시에 불릴 수 있는 건가, 그는 무심코 생각하며 비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60살의 김영춘, 자신의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자신을 치던 주먹, 자신의 명치를 차던 발, 그가 혐오하던 김영춘의 모든 것들로 김준은 도배되어 있었다.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거울을 볼 때마다 김준은 자신을, 아니 김영춘을 죽이고 싶었다. 반면 행동은 쉽게 실행으로 옮겨지지 못했다. 이 혐오스러운 육체를 죽이면 자신이 알고 있는 김영춘은 사라지지만, 자신의 영혼도 함께 죽을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무작정 김영춘과 자신 명의의 모든 통장, 인감을 들고 김영춘과 함께 살던 동굴 같은 반지하 집을 도망쳤다. 젊어진 할아버지는 분명 자신의 젊은 몸을 이용해 더 억센 힘으로 팰 것을 알았기에 나온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도망은 얼마 가지 못했다. “역시 여기였구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김준, 자신의 목소리였다. 스무 살의 김영춘이 고개를 돌리자 육십 살의 김준이 씩 웃으며 그의 멱살을 붙들었다. “신은 있는 것 같다. 하필이면 우리 손주 몸에 나를 불어 넣어줬네. 친손자가 내 돈 다 빼들고 튀려는 찰나, 이 어린 몸으로.” 눈 떠보니 이미 할아버지의 주먹이 손주의 앞에 있었다. 너무도 익숙한 자신의 주먹이었지만 김준은 피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피칠갑이 된 육십 세 중년 남성의 얼굴엔 앳된 표정의 김준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준아. 어린 게 좋다. 네 주먹이 세긴 세다.” 김준의 시선이 이리저리 흐트러졌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김영춘의 몸이 망가져 가는 게 느껴지니 좋은데, 이제는 견디기에 너무도 지겨운 고통이니 죽을 만큼 아팠다. 그렇게 그는 다시 돌아왔다. 동굴 같은 반지하 집, 이 지옥으로.
다시 지금. “크윽, 컥!” 목을 조르던 스무 살 김영춘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젓는다. 죽기 싫어. 죽기 싫어, 그런데 죽이고 싶어. 그 어떤 때보다 쉽게 김영춘을 죽일 수 있는 기회인데, 반대로 그 어떤 때보다 어렵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와중 타이머는 어느새 0분을 가리키며 시끄럽게 울리고, 현관문이 열린다. 할아버지가 늘 오는 귀가 시간이다. 그는 곧 있으면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술을 먹을 것이고 그를 팰 것이다. 어제처럼. 저 멀리서 고성이 들려온다. “야, 김영춘! 아니 김준!” 김준이 고개를 들자 거울 너머로 병째로 소주를 마시는 자신이 보인다. 순간 그는 생각한다. 인간의 급소가 어디였나. 세면대 옆 놓여있던 건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김영춘의 면도기다. 주름진 손이 망설임 없이 그것을 들고, 스무 살의 뜨거운 목을 향해 날아간다. 짧은 신음과 둔탁한 몸부림이 느껴진다. 너무도 익숙한 김준 자신의 몸짓들이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몸을 찌르고 찌르며, 그조차 제대로 본 적 없던 자신의 신선한 핏물을 보며, 그는 그 어떤 때보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토록 혐오했던 김영춘의 손으로 김준의 몸을 찌르는 것인데도, 자신이 제일 최악으로 여기던 엔딩인데도.
“저주이자 선물.” 그가 중얼거리며 다시 거울 속 자신을 본다. 김영춘을 본다. 문득 그는 궁금해진다. 진정 신이란 게 있다면 내게 준 선물은 이것인가.
면도날은 육십 살 김영춘의 목을 향해 날아간다. 그가 웃으며 거울 속 김영춘을 노려본다. 저주이자 선물. 김준은 비로소 그 말을 이해하며 몇 번이고 김영춘의 목을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