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성장한 이성계
- 『고려사』 1361년 11월 24일
혼란한 세상은 영웅의 고향이다.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시대에는 영웅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임진왜란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순신이라는 이름은 빛날 수 없었다. 이순신이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워 조선을 구하는데 큰 역할을 했듯이, 이성계는 고려를 살리는 데 앞장섰다.
고려 후기는 수시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혼란의 시대였다. 918년에 세워진 고려는 1170년부터 1270년까지 100년 동안 무신 정권의 시대를 거쳤다. 왕권은 허수아비처럼 약해지고, 권력을 움켜쥔 무신들에 의해 정권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하필 이때 막강한 몽골 제국이 고려로 쳐들어왔다. 칭기즈칸으로부터 시작된 몽골 제국은 인류가 무기를 손에 쥔 이후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들은 1231년부터 1259년까지 무려 28년 동안 총 6차례나 고려를 쳐들어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조선에서 가장 큰 전쟁이었던 임진왜란의 기간이 1592년부터 1598년까지 6년이었고, 1636년에 발생한 병자호란 또한 2달 이내였던 점을 감안하면, 28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어진 전쟁의 피해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수도를 버리고 왕과 무신 정권이 강화도로 피신하여 항복을 하지 않자, 몽골 제국은 아예 한반도에 상주하면서 전라도 지역까지 초토화시켰다.
고려의 무신들은 몽골제국에 맞서 굴복하지 않는 정신을 보여줬다고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강화도로 도망가 백성들이 몽골군에게 비참하게 도륙당하는 삶을 제공했다는 점도 엄연한 사실이다.
1359년부터 1362년까지 3년 동안은 중국의 홍건적이 고려를 수시로 침공했다. 중국의 홍건적은 종교 세력으로 시작했으나 몽골 제국에 맞서기 위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 세력은 몽골 제국과 싸우다가 불리하면 고려로 피신하였다. 그 수가 4만에서 10만 명까지였으니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1361년에는 홍건적이 아예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을 차지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그들은 사람들을 잡아먹고, 임신부의 가슴을 잘라 구워 먹을 정도로 잔학했다. 이때 왕은 안동까지 피신을 가야 할 정도로 국력이 강하지 못했다.
나라의 국력이 약해지자 일본의 왜구들은 대규모로 고려를 유린했다. 그들은 한반도에 상륙하여 곡식을 약탈하고, 어선과 집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끌고 갔다. 1380년에는 왜구가 무려 500여 척의 배를 이끌고 동시에 공격을 감행했다. 군인도 아닌 외국의 무리들이 마음대로 고려를 농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가 안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왕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고, 귀족들은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여 백성을 보살피지 않았다.
이러한 혼란의 시기에 나타난 영웅이 이성계였다. 홍건적이 개경을 점령했을 때, 이성계는 사병 2,000여 명을 이끌고 수도 탈환 작전에 동참했다. 선봉에서 사류(沙劉), 관선생(關先生) 등 적장 두 명의 목을 베며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500여 척의 배를 이끌고 충청, 전라, 경상도를 약탈하던 왜구들을 소탕하는 지상의 작전에서 고려군이 패하자, 삼도도순찰사가 되어 그들을 섬멸하였다. 이성계는 북쪽에서 쳐들어온 수만 명의 원나라 군사부터 남쪽의 왜구까지 번번이 퇴치하며 근 30여 년 동안 고려를 구했다. 성과와 기간을 보면 시대를 초월하여 그 어떤 무인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업적이다. 그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대대로 중앙의 정권을 차치한 귀족들의 세상에서 변방의 교포 출신 장수가 이름을 떨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혼란한 세상이라지만 이름을 떨친다 해도 중앙에서 권력을 잡기는 더더욱 어려운 법이다. 모든 성공의 배경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영웅이 된 사람은 없다. 이성계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성계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직책을 이용하여 실전으로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적들을 무찌르며 나라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로 성장했다. 이성계가 우뚝 설 수 있었던 성공의 요인은 실력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390년에는 고려의 군권을 장악하며 최고의 관직을 거머쥐었다.
이자춘이 1360년에 죽었을 때 이성계는 아버지의 관직을 물려받았다. 그러니 귀족들이 지배하던 고려에서 교포 5세의 변방 장수가 최고의 권력을 움켜쥐는데 30년이 걸린 셈이다.
- 위 내용은 2022년 세종도서 교양서로 선정된 저의 도서 『사사건건 경복궁』의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