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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터리 공작소 Jan 29. 2024

메모를 다시 시작하며

정리되는 느낌

처음 입사한 후 한참 동안 다이어리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꼭 메모를 해야 할 경우에는 그때그때 적당한 종이에 대충 적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면 어느 정도 기간 동안 상자에 두었다가 다시 쓸 일이 없다고 생각될 때 버렸다. 2002년에서 2003년까지는 그렇게 쓰고 버리는 메모를 했다.


손에 뭔가를 들고 다니는 게 거추장스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해야 할 일의 양은 많아졌고 기억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메모지를 사용할 때는 정리도 어려웠다.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생각해서 버렸는데 다시 찾아봐야 할 일들도 생기곤 하였다. 결국 나는 다이어리를 써야 나의 일이 좀 더 쉽게 정리될 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 처음 다이러리를 구매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이어리에 그날그날의 한일, 할 일 등을 적어두었다. 완료한 일은 앞에 체크표시를 하거나 밑줄을 그어서 완료되었음을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날 하지 못한 일은 그다음 날에 할 수 있도록 옮겨 적어두었다. 시간이 지나서 전에 했던 일을 다시 찾아봐야 할 경우에 너무나 수월하고 좋았다. 그냥 해당 날짜의 페이지를 펼치면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어디까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내 업무상 반복성이 많아서

다이어리를 적으며 2년 정도 업무를 하고 나니 그때부터는 다이어리의 일정 대부분을 미리 적어두었고 기간도 미리 예측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도 적어두었다. 


상사가 부를 때도 항상 다이어리와 펜을 가지고 갔다. 지시를 받으면 간략하게 바로 메모했고, 적을 일이 없는 경우에도 들고 다녔다. 믿음을 주는데 일조를 한듯하였다.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니 지시만 받다가 질문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예를 들면 업무의 내용을 받아 적고 난 후에 '언제까지 입니까?, 비공개입니까?, 다른걸 먼저 해도 되겠습니까? 등등. 생각을 가지고 일하는 직원처럼 보였던 듯하다.


무엇보다 나에게 맞는 업무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다. 적어왔던 다이어리를 기초로 2장 정도의 A4용지에 칸을 그리고 매일업무, 주간업무, 월간업무, 반기업무, 연중행사 등을 만들어 책상 위의 투명 비밀커버 아래 두고 출근하면 다이어리와 함께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는 확실히 나에게는 여유로운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얼마나 걸리는지 이미 알 수 있었고,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한가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를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작은 회사지만 빠르게 승진했고 부하직원들이 들어오고 하니까 시간은 더욱더 넘쳐났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업무를 하면서 생길 수 있는 많은 실수를 미리 줄일 수 있었고 일부러 늦게 퇴근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칼퇴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직장생활이 지루해질 때쯤 나는 퇴사를 해서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되었다. 

목수가 된 이후에도 메모는 언제나 도움이 되었다. 

만들 가구의 도면을 그린 후 납기일, 주문자, 연락처, 배송지 주소, 별도의 주문사항이 있으면 도면 옆에 같이 적어 두었다. 똑같은 모양의 가구를 만들더라도 처음에 나는 무조건 도면을 다시 그리고 똑같은 메모를 반복했다. 나중에는 도면을 그리지 않아도 사이즈별로 모든 수치가 그냥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처음에는 도면을 보고 수치에 맞춰 나를 잘라야 했지만 수없이 많이 도면을 그리고 메모를 반복하면서 모든 숫자가 머리에 저장되었다. 그때부터는 주문을 받으면 도면을 그리는 노트에 가구의 이름만 적고 수치는 생략해도 되었다. 자주 주문해 주시는 단골손님은 저절로 알게 되었고, 취향도 이미 알아서 별도의 요청 사항을 말해주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해드리면 아주 만족해하며 확실한 단골이 되었다.

역시 기록하는 일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어느 날엔가 내가 큰 병을 얻었다는 것을 병원검진에서 알았다. 치료를 위해 오랜 기간 일에서 떠났고,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다이어리 같은 걸 적을 일은 없는 시간을 보냈다. 


며칠 전부터 글을 다시 쓰기로 했다. 다시 노트를 꺼내 들고 이것저것 기록해 보기로 한다.




글쓰기 챌린지 Day 4 - 2024년 이것저것 기록해 보기로 마음먹은 1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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