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비행기에서 작업하다 자다를 반복하며 내가 왜 유럽에 왔는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지를 참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라는 큰 다짐도 별로 없었고 지금은 한번에 50개씩 적을수 있는 버킷리스트도 그때는 15개를 적다 지쳤던 것 같다. 그때까지 나는 아직도 <이루고 싶은 것들>이라는 제목 아래 (남들이 보기에)라는 부제목을 두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것 중 내가 가지면 좋을 것들을 헷갈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 장장 6개월의 모험동안 이루고 싶은 것을 적던 리스트에 가장 첫 항목 역시 DELE B2 시험 합격하기 였다. 이렇게 적는데 유럽에 가는게 기대될 리 없었다. 사실 그러면서도 괜히 가는 것이라는 생각, 한국에 남아있을 걸, 이라는 후회는 단 한번도 들지 않았다. 많이 기대하는 것도 없지, 라는 마음이 좀 더 컸던 것 같고, 실감도 나지 않았다. 그 '유럽'에서 내가 지낸다는게 어떨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암스테르담을 경유하면서도 비슷했다. 상업의 나라,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 내리자마자 사람이 붐빌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새벽 5시 언저리의 공항은 조용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행과 서로 기대어 눈을 감으며 쉬고 있었고, 그곳에서 난 2년 째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로 한동안 잘 보지 못했던 저 멀리 지구 반대편 대륙에서 넘어온 이방인이었다. 괜히 쓸쓸한 마음에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첫번째 비행을 마쳤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그리곤 무거운 짐을 들고 조용히 게이트를 찾아 앉아서 기다리다 진짜 말라가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그러다, 내 마음에 꼭꼭 숨어있던 씨앗이 움트게 되었다. 별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잠을 자기에는 불편하고 창가를 바라보는 것에도 지쳐서 비행기 책자에 꽂혀있던 브로슈어를 집어들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내게는 정말 소박하지만 이루기 힘든 꿈이 있었다.그때는 지금보다 더 디저트에 미쳐있었는데, 그 시기즈음 처음 자허토르테 라는 오스트리아의 케익과 프랑스의 타르트타탕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맛본 이 두가지 디저트는 지난 7년정도를 이 환상 속에서 살게 했다. 청주의 오래된 제과점에서 홀케익으로 주문해야만 제대로 맛볼 수 있던 자허토르테, 그리고 한남동의 아주 FANCY한 베이커리에서 2016년 여름에만 팔았던 타르트타탕. 이 두가지 맛을 절대 잊을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도, 어떤 제과점에서도 절대 똑같은 맛을 볼 수 없어서 시간이 나면 늘 서울 타르트타탕, 서울 자허토르테를 검색하며 하이에나 마냥 몇년이 지난 블로그 글까지도 뒤져 찾아헤맸다. 그러나 맘에 드는 결과가 없었고 운이 좋아 찾은 것은 그때 그 맛이 아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내 버킷리스트 상위 5개에 <비엔나에서 본토의 자허토르테 먹기>, <파리에서 본토의 타르트타탕 먹기> 이 두가지를 새겨 넣으며 언젠간 꼭 가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했더랬다. 그마저도 지쳐서 잊고있었지만. 운명은 너무 단순하고 달콤하게 찾아온다. 브로슈어를 펼쳐서 유럽의 디저트를 소개하는 페이지를 보자마자, 한국에서는 얘기해도 아는 사람이 없던 이 디저트들이 내 눈앞에 짠! 하고 나타나자 마자 이상하게 설레기 시작했다. 다른 건 더이상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어떤 것을 맛보고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생기고, 내가 가는 것이 그토록 바라던 유럽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내가 원하던 꿈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 희미하게 눈을 감고 그리던 것들이 정말 눈앞에서 실재할 수 있는 곳. 그곳에 가는 것을, 그리고 그곳에서 6개월이라는 시간을 지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