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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Aug 29. 2024

이면지 마니아

소소한 에세이 과제 - 내가 아끼는 것

  


  택배비, 배달비, 주차비, 비닐봉지 값


  몇 백 원에서 몇 천 원 사이의 소소한 금액이지만 왠지 내 돈 주기는 아까운 것들이다. 이러한 심리 때문에 사람들은 3만 원 또는 5만 원 이상이라는 무료배송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당장 필요 없는 것들을 추가로 담기도 하고, 쇼핑몰에서 무료주차권을 받기 위해 괜히 지하 마트에 가서 5만 원어치 장을 보기도 한다. 언젠가는 마실 맥주니까, 언젠가는 먹을 과일이니까 하면서 말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비닐봉지 값이 아까워서 핸드백에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장바구니 없이 장을 보게 되면 최소한의 것만 사서 양손에 들고 오는 쪽을 택한다. 쓰레기봉투로 받으면 다시 사용하면 될 일인데 이상하게 그 몇 백 원이 그렇게 아깝다.

  내가 특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집착하는 절약 포인트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이면지이다. 자녀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받아온 각종 안내문의 뒷면이 비어있으면 어쩐지 버리기가 아까워 폐휴지함 옆에 곱게 쌓아두거나 따로 모아두곤 한다. 아이들 낙서장이나 종이접기 등의 용도로 사용하고자 했지만,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의 눈에 띄면 가차 없이 버려지기도 한다.




  어릴 적 부모님이 매일 구독하던 조간, 석간신문에는 무수히 많은 광고지들이 함께 들어있었다. 광고지 뭉치의 내용에는 가족 모두가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양면에 모두 인쇄된 컬러 유광 광고지인가, 한쪽 면만 인쇄된 단면 광고지인가에 따라 그 종이들의 운명이 달라졌을 뿐이다. 양면 광고지는 바로 폐휴지함으로 던져지고, 단면 광고지는 차곡차곡 추려서 큰 집게에 찝혀 이면지로써의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이면지의 용도는 대부분 공부할 때의 보조장치. 글짓기를 하기 전에 초고를 쓰거나, 수학 공부를 할 때 곱셈 나눗셈을 지저분하게 휘갈기는 용도였다. 부모님은 이면지 뭉치를 전화기 옆에 두고 중요한 메모 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패턴이 가득한 낙서를 하곤 하셨다. 중학생 때부터는 용수철이 달린 연습장을 따로 구매해 같은 용도로 사용했는데 어쩐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있는 그 이면지 뭉치가 있으면 될 일인데 그걸 학교나 학원에 들고 다니기는 어쩐지 남사스러워서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면지에 대한 애정은 성인이 된 지금, 직장에서도 이어진다. 예전에는 프린터가 각 교실마다 있지 않아서 학습지 등을 마음껏 출력할 수가 없었는데 요즘은 –흑백 이긴 하지만- 프린터가 교실마다 한 대씩 비치되어 있고 A4용지를 쓰는 것도 눈치 볼 일이 없기 때문에 예전보다 출력물이 넘쳐 난다. 그런데 한쪽만 인쇄해서 나눠주게 되면 그 뒷장이 어찌나 아깝게 느껴지는지... 나는 다음 차시 내용의 학습지까지 미리 끌어와서 뒷면에 함께 인쇄해 주며 극성을 떤다. 물론, 다음 시간에 그 학습지를 잃어버려 다시 뽑아줘야 하는 일이 생기면 내가 괜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생들이 간혹 미술 시간에 스케치를 해야 하거나 찰흙 같은 것을 놓는 받침대가 필요해서 나에게 ‘이면지’를 찾을 때면 은은한 뿌듯함이 느껴진다. 이면지는 버리지 말고 바구니에 따로 모아두자고 안내하거나, 한 번 보고 말 내용은 이면지에 출력해 주면서 환경교육에 대해 강조해 온 나름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내가 가장 아까워하는 이면지는 얇은 A4용지보다도 살짝 두꺼운 120g 이상의 A4용지이다. 학생들에게 도안 같은 것을 도톰한 종이에 출력해서 나눠주곤 하는데 어쩌다 실수로 얇은 종이에 뽑아야 할 것을 도톰한 종이에 왕창 뽑아버리면 아까워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실수로 뽑은 도톰한 이면지들은 심지어 지난번 교실 이사를 할 때 바리바리 이면지 바구니에 담아왔다. 누가 볼까 봐 조금 창피해서 짐 사이에 숨겨온 이면지들은 한 번만 보고 마는 악보나 바로 풀칠해서 알림장에 붙여 가야 하는 내용을 출력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스스로가 제일 바보 같아서 내 머리를 한 대 치고 싶을 때는, 기껏 이면지를 정성스럽게 프린터에 넣었는데 인쇄면에 또 인쇄된 것을 발견했을 때! (토너가 너무 아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면지 상태가 고르지 않아서 프린터에 끼어버린 것을 낑낑대며 빼내고 있을 때이다. 이런 에너지를 소모할 거면 처음부터 고운 종이를 넣는 게 더 이롭지 않았을까 싶다.     


  집에서 아이가 하는 영어학원 숙제 중에 혼자서 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내용이 있었다. 영어로 된 책의 내용을 단순히 베끼는 것이 아니라 네 장면으로 정리하는 것이어서 한동안 내가 아이의 의견을 반영하여 네 문장으로 요약해서 적어주고는 했었다. 그러면 아이는 그 네 개의 문장을 따라 적고, 해당되는 삽화를 그리는 식으로 해 온 것이다. 어느 날인가 저녁 회식으로 귀가가 늦어져서 남편에게 아이 숙제에 대한 이런저런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아무래도 북리포트 숙제는 아빠가 해주기 어려울 것 같아서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고 “딸이 숙제장 보고 알아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놓으라고 해주세요.”라고 했다. 못하면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이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귀가 후 열어보니 북리포트 숙제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웠지만 나를 더 감동시킨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종이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영어 문장을 끼적인 딸아이의 흔적. 뒷면을 보니 그 종이는 다름 아닌 ‘이면지’였다.

  다음날 아침에 딸아이에게 숙제를 스스로 잘한 것에 대해 폭풍 칭찬을 했더니 쑥스러워하면서 “나도 어떻게 요약하는지는 할 줄 알아야 할 거 아니야~” 하고 제법 어른스러운 말을 했다. 어쩜 이면지에다 이렇게 적어볼 생각을 했냐니까 “엄마도 항상 그렇게 하잖아. 이면지에다가!”라고 말하는 딸.     




  예전만큼 물자가 귀하지 않아서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물건 귀한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난다. 색종이는 작은 귀퉁이만 잘라내고도 미련 없이 버리는가 하면, 전혀 사용하지 않은 멀쩡한 색지 역시 잠시 내가 한눈 판 사이 폐휴지함에 버려져 쓸쓸히 누워 있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물자 절약을 외치는 어른들로부터 많은 잔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공책을 앞뒤 표지까지 사용하고 매 페이지마다 쪽수를 기입해서 뜯지 않도록 하는 것, 몽당연필에 볼펜자루를 끼워 끝까지 사용하게 하는 것은 어린 내 마음에 어쩐지 궁상맞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집안에 굴러다니는 모든 ‘멀쩡한’ 종이를 모아둔 이면지 집게의 이미지만큼은 뇌리에 박혀 아직도 내 삶을 따라다니고 있다. 어린아이의 눈에도 뒷면이 비어있는 광고지가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자원처럼 느껴졌던 게 아니었을까? 이면지를 열심히 사용하는 선생님을 보며 자란 학생들, 그리고 그 런 엄마를 보며 자란 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종이를 아끼고 자연을 사랑하며 지구의 앞날을 조금은 걱정하는 어른으로 자라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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