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않아도 성립한다”
— 대법원, 음란 메시지를 받은 것만으로도 아동성학대 기수 성립 인정
2025년 7월, 대법원은 아동에게 전송된 음란 메시지가 비록 직접 열람되지 않았더라도 ‘접근 가능’한 상태에 도달하였다면 성적 학대행위의 기수로 인정될 수 있다는 판결을 선고하였다(대법원 2025. 7. 4. 선고 2025도3890 판결). 이 판결은 디지털 시대에서 아동 보호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 판결로, 법적·사회적으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이번 판결은 휴대전화 등 통신매체를 통한 아동 대상 성적 학대행위의 기수 성립 요건, 특히 아동의 ‘실제 인식 여부’가 범죄 성립에 필요한지를 중심으로 법리 해석을 전개하였다. 대법원은 명확하게 “아동이 직접 인식하지 않더라도, 인식 가능한 상태에 놓였다면 성적 학대행위로 기수 성립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기존 원심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며, 그 법리적 함의는 깊고 넓다.
1. 사건의 배경: 차단된 메시지와 법적 쟁점
이 사건의 피고인은 피해 아동에게 음란한 메시지를 전송하였다. 그러나 피해 아동의 모친이 미리 피고인의 연락처를 휴대전화에서 차단한 상태였기 때문에 해당 메시지는 ‘차단된 메시지 보관함’에 저장되었고, 피해 아동은 이를 직접 열람하거나 인식하지는 못했다. 피고인은 이러한 상태를 이용해 문제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송했고, 검찰은 이를 아동복지법상 ‘성적 학대행위’로 판단하여 피고인을 기소하였다.
쟁점은 명확했다. ‘보내진 메시지’가 피해 아동의 기기에 도달하였으나, 실제 열람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아동복지법상 성적 학대행위의 “기수”가 성립하는가? 피고인의 행위는 과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가?
2. 원심의 판단: “현실적 인식 없으면 무죄”
원심 재판부는 아동이 음란 메시지를 실제로 인식하거나 열람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성적 학대행위의 기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른바 ‘기수 성립’을 위해서는 아동이 해당 메시지를 직접 인지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심은 이와 같은 판단을 통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는 표현 전달이 곧바로 범죄 성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전통적 견해에 가깝다. 즉, 범죄행위가 피해자에게 도달하였더라도 그 인식이 없었다면 결과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에 기반한 결론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입장을 뒤집었다.
3. 대법원의 판단: “접근 가능성만으로도 기수 성립”
대법원은 판결에서 아동복지법상 성적 학대행위가 기수로 성립되기 위해 반드시 아동이 해당 메시지를 직접 열람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아동의 인식 여부와 무관하게, ‘성희롱성 또는 음란한 내용이 아동에게 도달하여 인식 가능한 상태에 놓였는가’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즉, 해당 메시지가 ‘차단된 메시지 보관함’에 저장되어 있고, 피해 아동이 이를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는 기술적·물리적 상태에 놓였다면, 이는 이미 성적 학대의 위험 또는 가능성이 현실화되었으므로 기수가 성립된다는 논리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법리를 명확히 하였다.
성적 학대의 개념: 아동복지법상 ‘성적 학대’는 반드시 성폭력 수준에 이르지 않더라도,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고 아동의 건전한 성 가치관 형성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면 성립한다.
기수 성립 기준: 해당 메시지가 객관적으로 아동이 인식 가능한 상태, 즉 ‘접근 가능한 상태’에 도달하였다면, 실제 열람 여부와 무관하게 기수가 성립된다.
범의의 인정 기준: 피고인에게 반드시 성적 학대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러한 결과 발생의 위험을 ‘미필적으로 인식’한 것으로도 족하다.
이러한 법리는 디지털 기술환경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으로, 전통적인 범죄구성 요건보다 확대된 해석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위협이 급증하는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 법해석으로 평가할 수 있다.
4. 판결의 의의와 실무적 함의
이번 판결은 아동 대상 디지털 성적 학대에 대한 사법부의 경각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성적 학대행위가 실제로 메시지가 ‘읽혔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디지털 공간에서도 아동 보호의 법적 울타리가 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번 판결은 다음과 같은 실무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통신매체 이용 아동학대의 범위 확대: 가해자가 음란 메시지를 보냈지만 피해 아동이 직접 열람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휴대폰에 도달한 상태 자체로 처벌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피해자 보호 중심 형사법 해석: 범죄기수 성립 기준을 가해자 중심이 아닌 피해자 보호 관점에서 판단한 사례이다.
디지털 증거의 도달 기준 강화: 앞으로는 메시지, 이미지, 영상 등 디지털 정보가 ‘수신된 시점’부터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5. 결론: 아동의 ‘안전한 권리 공간’을 위한 법적 확장
이번 대법원 판결은 ‘보지 않아도 위협이 된다’는 디지털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판시다. 이는 단지 처벌 강화가 아니라, 아동의 건전한 인격과 성 가치관 형성을 사전에 보호하고자 하는 입법 취지를 충실히 실현하려는 사법적 노력이기도 하다.
정보통신망을 활용한 아동 대상 성적 학대는 그 수단과 방식이 갈수록 정교하고 은밀해지고 있다. 그러한 현실에 법이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범죄행위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접근 가능성’ 자체를 위험 요소로 판단하는 선제적 기준이 필요하다. 이번 판결은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법은 피해자의 울음이 있은 뒤에야 반응해서는 안 된다. 이번 판결은 ‘울기 전의 침묵’마저도 법이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응답한 것이며, 앞으로도 사법부가 아동 보호에 있어 더욱 능동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할 것을 기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