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치료도 의료행위인가?
– 치과의사의 발기부전·탈모약 복용에 대한 자격정지 처분을 취소한 판결의 의미
2025년 7월 10일, 서울행정법원은 치과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면허자격정지 처분 취소 소송(2024구합86970)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단순한 행정처분 다툼을 넘어, 의료인의 자가치료 행위가 과연 ‘면허범위 외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벌어진 의미 있는 법적 판단으로 평가된다.
치과의사의 자가복용, 면허 외 의료행위인가?
사건의 발단은 치과의사인 원고가 2020년 인터넷 의약품 쇼핑몰을 통해 **발기부전 치료제(이렉시멈)**와 **탈모 치료제(아보다트)**를 구매해 자가복용한 것이었다. 치과의사의 처방 권한은 치과 진료와 관련된 범위에 한정되므로, 보건당국은 해당 구매 및 복용 행위를 “치과의사의 면허범위 외 의료행위”로 보았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제27조 제1항(면허 외 의료행위 금지)를 위반한 행위로 판단하고,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10호 및 관련 행정처분 기준에 따라 자격정지 3개월에 해당하는 처분을 감경하여 1개월 15일 자격정지를 부과하였다.
법원의 판단 – “자가복용은 의료행위 아니다”
서울행정법원의 판단은 명확했다. 자가복용 행위는 의료인이 면허 외의 의료행위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논거를 제시했다.
① 의료행위는 '타인'을 위한 침습적 행위가 중심이다
의료법은 ‘의료인의 면허 외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나, 의료행위 자체를 명확히 정의하지는 않는다. 대법원 판례는 의료행위를 “인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침습적 행위”로 정의하면서, 주로 타인에 대한 행위를 중심으로 개념을 정립해왔다. 따라서 의료인이 자신의 몸에 행한 약물 복용과 같은 자가치료는 전형적인 의료행위의 개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② 자가치료를 제재한 전례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인이 자신에게 의약품을 투여하거나 복용한 행위를 이유로 형사처벌이나 자격정지 등의 제재를 받은 사례는 없다. 오히려 헌법재판소는 치과의사의 탈모약 자가복용 사건에 대해 "보건위생상 위해가 없다"며 의료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2022헌마1680 결정).
③ 일반인에게도 허용되는 자가복용, 의료인만 금지하는 것은 모순
의료법은 비의료인의 자가치료·처방을 금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의료인이 같은 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제재하는 것은 법체계상 일관성을 잃은 해석이 된다는 것이 법원의 지적이다.
④ 자격정지는 법적 근거 없는 과잉 제재
원고의 행위는 오히려 약사법상 의약품 구매절차를 위반한 행위에 가까우며, 의료법상 ‘의료행위’로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격정지를 부과한 것은 처분의 근거 및 비례 원칙에 반하는 위법한 처분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의미와 시사점 – 의료인의 자가치료와 자율성의 경계
이번 판결은 단순한 자격정지 취소 사건을 넘어 의료인의 자율성과 법적 책임의 경계를 재조명한 사건이라 평가된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자가치료는 의료인의 전문성과 자율성의 일환일 수 있으며, 이를 일률적으로 면허범위 외 행위로 제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
형식적 면허 범위보다 실질적 위해 여부를 중심으로 의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법원의 해석론.
약사법, 마약류관리법 등 특수한 법령에 의해 규율되어야 할 사안을 의료법으로 포섭할 경우 과잉처벌 우려가 있다는 점.
또한 이번 판결은 감사원 감사 결과나 수사기관의 기소유예 처분만으로 행정처분이 정당화될 수 없고, 그 법적 근거는 독립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결론 – 의료인의 윤리와 법의 정교한 구분이 필요하다
자가치료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오남용 우려가 있는 약물일 경우, 그 부작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법의 적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평가만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다. 법적 제재에는 명확한 근거와 입법적 정당성이 필요하며, 자격정지와 같은 중대한 불이익이 부과될 경우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서울행정법원의 이번 판결은 의료인의 자율성 보장, 법의 체계적 해석, 행정처분의 정당성 확보라는 세 가지 가치를 균형 있게 고려한 판결로, 향후 유사 사건 처리에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