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3
일터에서 즐거움을 느끼려면 내가 하는 일에 내 철학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내가 생각한대로 하나의 업무가 흘러가는건 일종의 창작 행위랑 비슷하다. 점점 결과물도 좋아지고 자신감도 붙는다. 그래서 일 중독이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예상대로 평온한 하루가 지나가고, 정시퇴근이 거의 확실해지던 바로 그 때, 김과장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출장을 가셨던 대표님이 기상악화로 일정이 취소되어 늦은시간에 출근을 하신다는 비보를 접한다.
일정이 빠그러진 대표님은 악천후와 같다. 그가 영감을 받는 순간 십년넘게 잘 넘어갔었던 일들도 무언가 잘못된 점이 보인다. 그가 영감을 받지 않는 하루가 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특히 회사의 시스템에 대한 의문은 영원히 풀 수 없는 미스테리다. 외적으로 별다른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라도 방심할 수 없다. 대표가 기존의 시스템에 의문을 가지고 지적을 한다면 기존의 시스템이 얼마나 그동안 효율적이었고 오랫동안 유지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표의 의심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말하는건 그 누구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틀리고 대표가 옳을 경우 업무 능력과 충성심을 동시에 의심받는다. 대표가 틀리고 내가 맞을 경우 잘 넘어갈 때도 있지만 그건 모를 일이다. 대표도 사람인지라 자기 이야기가 틀렸을 때 자존심이 상한다. 특히 자기보다 훨신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그 누구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표현에 더욱 각별히 신경 써야한다. 그리고 대표의 컨디션도 잘 살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컨디션이 안좋은 날이 있기 마련이다. 대표님이 그런 날은 가급적이면 그 어떤 이야기도 삼가야 한다.
비상이다. 대표님은 지금 사옥 보수공사 견적서를 들고 있다. 아주 안좋은 시그널이다. 대표는 아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리벽을 통해 보이는 저 서류는 분명히 지난주에 올린 사옥 보수공사 견적서이다. 대표가 그 서류를 들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낌새를 챈 직원들 사이로 짙은 긴장감이 감돈다. 견적서의 인건비, 원자재 비용, 소모되는 자재의 갯수 등 모든 부분을 검토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보수공사 일체를 담당하고 있는 총무는 오늘 연차를 쓴 상태이다. 지난주에 업체와 함께 미팅했던 점. 상호 합의가 되었던 점은 이제 잊어야 한다. 아직 아무런 말도 듣지 않았지만 김과장은 해당 견적서, 계약한 공사업체와의 회의내용 PDF를 말없이 키고 분석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