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퇴근

ep4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4

by 밀크씨슬

잠시 후, 아니나 다를까 심상무를 부른다. 그리고 머지않아 심상무가 나와 깊은 한숨을 쉰다. 직원들은 미리 계획이라도 한듯 화장실을 가거나, 전화를 받거나, 컴퓨터를 바쁘게 두드린다. 금요일 4시에 새로운 업무를 맡는건 구국의 결단에 준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사 관련이면 해피엔딩은 없다. 다들 대표를 납득시킬만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담당자였던 총무는 본의 아니게 신의 한수를 둔 셈이 되었다. 휴가는 타이밍이다.


심상무는 모든 일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치와 디테일은 각 담당 직원들의 몫이다. 거래처를 고르고 미팅을 열고 에누리를 하고, 서로 좋은 관계로 시작하는 것까지가 심상무가 편하게 할 수 있는 역할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애꿏은 담당자를 문책하는 것 까지 그의 임무다. 담당자는 지금 없다. 하지만 단두대에는 누군가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도 직원들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


사람은 사람을 봐가면서 대해선 안된다고 한다. 간을 보지 말라는 뜻이다.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반드시 대한민국 임원일 것이다. 임원들이 제일 잘 하는 일이 바로 만만한 사람과 어려운 사람, 까탈스러운 사람과 무던한사람, 그리고 어떤 일을 결국 해낼사람과 그렇지 못할 사람 등을 구분하는 것이다.


지금 대신 단두대에 올라가줄 사람은 하나다. 심상무도 알고 있다. 김과장은 시선을 느낀다. 백화점에서 길을 잃은 어린아이의 시선이다. 길을 잃은 어린아이는 부모와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애타게 찾는다. 부모가 직접 찾아내지 못하면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트린다. 그의 울음은 파국이다. 작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 백화점 전체에 방송으로 퍼지게 된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인내심은 누구보다도 김과장이 잘 알고 있다. 이런 저런 변수를 생각해 봤을 때 방법은 하나다.


심상무가 곧바로 김과장에게 와서 부탁하지 못하고 있는 건 김과장이 오늘 하루종일 일찍 가려고 표를 냈기 때문이다. 심상무는 아마도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가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은 대체로 그 미안할 일을 해줘 왔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김과장이야말로 결국 길 잃은 어린아이를 구해낼 사람이기도하다. 아이는 기다린다. 역시 수가 좋다. 아이가 울기전에 김과장은 스스로를 설득해낸다. 저녁 약속전에 끝날 수도 있다고 애써 자신을 속여낸다. 그리고 결국 구국의 결단을 한다. 자기 발로 스스로 지옥문을 조심스레 열기로 한다. 김과장은 임원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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