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퇴근

ep4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6

by 밀크씨슬

악마가 될 시간이다. 타 업체가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반품신청을 하면 최소한 반품비용은 지불해야한다. 하지만 그건 인터넷 쇼핑에서나 그렇다. 김과장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거래는 어지간하면 비용을 지불하는 쪽이 갑이다. 갑질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갑질을 하지 않으면 동료가 죽는다. 인간성의 저울을 소환한다. 오른편에 갑질은 나쁜 것이라는 김과장 본성을 올려둔다. 그리고 왼편에 하필 오늘 악화된 날씨에 대한 짜증을 얹는다. 그리고 그 위에 지난주에 끝난 일에 변덕을 부리는 대표에 대한 경멸을 올린다. 내친김에 길잃은 어린아이에 대한 야속함도 더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세상이 정시퇴근을 오늘 나에게 허락하지 않는지에 대한 분노를 섞는다. 무게추는 충분히 기울었고 그 아래에서 하나의 악마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만들어진 악마에게 차가운 심장을 유지할 것을 명한다. 그리고 비슷한 과거 상황을 토대로 통화 전략을 세운다. 여기까지 마인드컨트롤을 완성한 김과장은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건다.


해당 업체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그리고 원칙을 들이민다. 예상한 반응이다. 김과장이라도 상대라면 똑같이 대응했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반응은 지극히 옳다. 애초에 논리로는 이길 수 없는건 김과장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교활한 방법을 쓴다. 여기서는 총무씨를 팔아먹어도 된다. 대표도 팔아먹어도 된다. 불리한 싸움을 이길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물러설 곳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대표가 어디서 이런걸 들었는데 난리를 치고있다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일어난 것으로 둔갑시켜 말한다. 그쯤 되면 업체에서 변명을 늘어놓는다.


첫번째 탈출 포인트다. 사실 김과장도 업체도 둘다 이 사회의 피해자다. 이 사실을 잊지 않은 김과장은 변명을 좀더 그럴듯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근거가 대표를 납득시킬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본의아니게 다년간 대표의 의중을 파악하는 능력이 생겨버린 김과장은 업체와 가상의 대표를 시뮬레이션에 초대한다. 시뮬레이션 결과 업체가 패했다. 단순히 재료를 많이써서 그렇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다. 적은 재료로 할 수 있는 일을 낭비한다는 느낌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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