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5
잘 해보지 않은 일이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사건은 일종의 결정장애로 인한 해프닝이다. 비유하자면 대표가 인터넷 쇼핑을 했는데 배송이 오기전에 더 좋은 제품이 인터넷 어딘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과장은 인터넷에서 다른 제품들을 추려 목록을 만든 후, 지금 구매한 제품이 여러모로 합리적인 결정이었다는 결론을 내려 대표의 쇼핑이 합당하다는 결과를 보여주려 했다. 안타깝게도 타 업체중 더 저렴해 보이는 곳이 있었고 이런 경우 김과장은 선택해야 한다.
비교군에 그 업체를 포함시킬 것인지 아닌지. 해당 업체를 포함시키지 않으면 일은 비교적 쉽게 끝난다. 대표는 자신의 쇼핑에 확신을 갖고 흡족해할 것이다. 포함할 경우 문책이 따를 수도 있다. 해당 업체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반드시 만들어서 대면해야 한다.
내가 담당자가 아니었다는 말은 정답이지만 오답이기도 하다. 간접적으로 담당자를 비난하는 행위라서가 아니다. 퇴근을 하려면 대표의 호기심이 해결되어야 한다. 선택한 이유에 대한 시원한 해설로 끝나던지 아니면 누군가의 명백한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결말로 끝나던지 둘중 하나의 결말은 지어져야한다. 즉 완성도 있는 결말이 필요하다. 대표가 출근한 이유는 이 쇼핑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의문이 해소가 되지 않으면 평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이 단순한 진리를 김과장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표에게 담당자는 언제나 '지금 나한테 말하고 있는 사람'이다. 앞에서 심상무에게 다가간 선택이 '구국의 결단'이라 함은 이렇게 진행될 거라는 걸 김과장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과장은 해당 업체를 포함하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양심의 문제도 있겠지만 대표의 의중을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일 다른 업체의 가격을 알고 있다면 최악이다. 하지만 이 경우 위에서 오답이었던 내가 담당자가 아니었다는 말이 김과장에게는 최소한의 손절라인이 되어준다. 그렇지만 이렇게 일이 진행될 경우, 월요일에 복귀한 총무씨에게는 말 그대로 지옥이 펼쳐지게 된다.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은 주말동안 대표의 머릿속에서 몸집을 수십배는 키울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맡지 않는게 나았다. 일을 대신 해주고도 미움을 사는 경우가 이런 경우다. 의도치 않았지만 사실상 암살한거나 다름없다. 김과장은 격언을 하나 떠올린다. '모든 지옥으로 가는 길은 호의라는 포장지에 쌓여 있다.' 총무씨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 그는 든든한 조력자다. 김과장이 총무씨를 원망하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애써 아직 모든 사실을 파악한 것은 아니라 마음을 다잡고 지난주 계약한 업체한테 전화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