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지령 Aug 25. 2023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평화롭다

내 주변 소리에서 찾은 감사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평화롭다. 코 고는 소리가 평화롭다니,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면 코 고는 소리마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냐며 주책맞다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쌔근쌔근 자나? 아니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는 쌔근쌔근 과는 전혀 무관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는 폭풍전야처럼 천둥이 몰아치고, 비바람이 부는 듯해서 나는 자다가도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 깨서 잠을 다시 못 이룰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짜증이 나서 "짜증"이라는 기분이 묻은 검지손가락을 펴고, 남편의 어깨를 쿡쿡 찔러댔다. 그것은 일종의 리모컨 같은 역할을 했다. 코 고는 소리 좀 제발 낮춰. 그러면 남편은 자세를 바꿔, 코 고는 소리의 볼륨을 스스로 낮췄다.

 

전 국민이 코로나 백신을 한참 맞을 2021년의 일이다. 코로나 백신을 나이대별로 순차적으로 맞을 때였다. 그 당시 코로나에 대한 방역이 철저한 시기여서 백신을 맞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상황들이 많았다. 식당출입도 제지당하고, 회사업무에 필요한 일에도 차질을 빚기도 하는 제한이 많아서, 일상과 사회생활의 원활한 업무를 위해서라도 맞아야 했다. 주변에 백신을 맞고 난 후, 고열로 백신 후유증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혹시 아플 상황을 대비해 우리는 일주일의 간격을 두고 따로 맞기로 했다. 같이 맞아, 같이 아프기라도 하면 아이는 방치될 것이고, 서로를 돌 볼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먼저 백신을 맞았다. 남편은 백신을 맞고 와서, 열도 나지 않고 컨디션도 괜찮다고 후유증 없이 잘 넘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추석연휴를 하루 앞둔 휴일. 아이와 남편과 저녁 산책을 나선 길에 갑자기 남편은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했다. 백신을 맞은 지 이틀이 지난날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증상으로 남편은 길가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길에 남편은 구급차로 응급실에 실려갔고, 코로나 방역 원칙에 따라 아이와 함께 구급차를 탈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보호자로 따라갈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력하게 남은, 나는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처럼 덩그러니 서서 떠나가는 구급차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옆에 있는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날 자정이 다 되어서 남편은 집으로 왔고, 여러 가지 검사를 해서 피곤한 모습으로 잠이 들었다. 검사결과는 이상이 없다는 말에 나는 조금 안도했고, 많이 불안했다. 이상은 없었지만, 증상이 있었으니까. 그날부터 나는 잠든 남편이 잘 자는지 어디 또 아픈 데는 없는지 살피기 위해 코 고는 소리에 예민하게 귀를 기울였다. 코 고는 소리가 듣기 싫어 남편을 툭툭 치며 잠에서 깼었는데 이제는 코 고는 소리를 듣기 위해 잠에서 깼다.

그 후로도 남편은 몇 번의 응급실을 더 갔고, 그때마다 나는 살얼음이 낀  빙판을 걷듯 불안한 나날들을  지나면서, 내 마음은 종잇장처럼 얇아져있었다.

극도로 예민해진 나는 수시로 남편의 숨소리를 확인했다. 굳이 따지자면, 코를 고는 것도 건강상의 문제라지만 그때 나에게 남편의 코 고는 소리는 생사확인이었다.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안심이 되었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서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건강하게 마주 보며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것이던가.


남편은 차차 증상이 호전되었고, 좋아졌다. 남편의 건강이 좋아지면서 나는 진심으로 많이 감사했다. 행복이 별게 아니었다. 오늘을 음미하는 것, 감사하는 마음에서 행복이 찾아왔다. 가족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면, 오늘을 무사히 보내면, 오늘 하루를 이야기하며 서로를 웃으며 마주 보면 그것이 그토록 감사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건강하게 마주 보며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것이던지. 만사 모든 것이 감사했다.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 마음의 불안도 차차 걷어지면서 나는 다정한 시선을 갖게 되었다.

 

그해 겨울은 유달리 추워, 햇빛 한줄기가 구름을 뚫지 못해 세상은 온통 잿빛이었고, 앙상한 나뭇가지에서는 생명을 희망할 수 없어 봄은 오기는 할까 의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언 땅은 녹았으며, 가늘고 여린 새싹은 생명을 희망할 수 없이 두텁게 언 땅을 뚫고 돋아나고 있었다. 나는 아픔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우리 안에 에너지도 꼭 그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여린 새싹들의 에너지를 느끼며, 무한히 감사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감사가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서 시작되었다.




*  엄마의 그림책

이번 글은, 브런치 작가이신  "은수"작가님의 글을 통해 글감을 찾은 거였어요. " 내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  감각을 예민하게 키우는 것에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소리산책>이라는 그림책이  떠올랐어요. 눈으로만 보면 소리를 흘러들을 때도 많거든.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여자아이는 아빠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는데요. 산책하다가 찾은 소리들이 정말 많네요.

"강아지 발톱소리, 자동차 소리, 아빠구두 소리  제트기소리, 공튀기는 소리까지."

저는 오늘 처서가 지난 바람소리가 참 좋네요.

독자님 주변 소리를 들어 보세요. 제가 느낀 것처럼 감각이 확장되고, 감각과 감각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청각을 세심하게 열어두니, 안 보이던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사랑스러워 미소 짓게 됩니다. 제 앞을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곤충소리에 깜짝 놀랐지만요. 새로운 행복이 느껴지는 가을 문턱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떡볶이는 어떻게 초딩들의 소울푸드가 되었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