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친구와 약속을 한 건물 지하에 마침 책방이 있었다. 한강 작가의 <여수의 사랑>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서둘러 책을 펼쳤다. 차례를 보다가 맨 마지막에 자리잡은“붉은 닻”에 손이 갔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바로 그 단편 소설이다. 총 여섯 개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뒤에서부터 읽어보자.
집에 돌아와서 남은 페이지를 마저 넘겼다. 책을 덮고 나니 붉은 녹이 잔뜩 슬어버린 닻의 모습이 머리를 잠식했다. 그 후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하루에 단편을 하나씩 섭취했다. 어둡고 아프고 침울하고 음습한 내용이 책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몸속에 들어온 그것들은 돌덩이처럼 마음을 묵직하고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중 최강은 “어둠의 사육제”였다. 도울하다. 묘사의 극치를 보여주는 비유들이 넘실대는 문장으로 가득했다. 빛나는 어둠의 은유들이 잘 벼린 칼처럼 가슴에 박혀 들었다.
“어둠이 베어 먹다 말고 뱉어놓은 살덩어리 같은 달이 떠 있었다. 이지러진 달의 둥근 면은 핏기 없이 누리끼리했고, 베어져 나간 단면에는 검푸른 이빨 자국이 박혀 있었다. 그 깊숙한 혈흔을 타고 번져 나온 어둠의 타액이 주변의 천체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밤하늘은 온몸을 먹빛 피멍으로 물들인 채 낮은 소리로 신음하며 뒤척이고 있었다.”(68~69쪽)
마지막 한편 <여수의 사랑>을 남겨두고 고통에 오래 노출된 마음이 아우성을 질러댔다. 이제 제발 훈훈한 온기를 넣어 달라고. 어둠을 떨치고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쉬고 싶다고. 마음의 말에 이끌려 <디에센셜>에 수록된 산문 몇 편을 응급 복용했다. 한강의 어린 시절이 담긴 따뜻한 이야기였다. 약효는 빠르게 나타났다. 다행히 다음날에 마지막 편을 진정된 마음으로 차근차근 읽어낼 수 있었다.
한강 작가는 왜 이토록 어둡고 암울한 이야기에 천착하는 걸까. 한강 작가가 스물일곱 살에 찍은 <여수의 사랑>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말한다. 오히려 젊기에 어두울 수도 있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 밝아지는 그런 부분도 있을 것 같다고.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누구한테나 말할 수 없는 상처 하나씩은 다 있다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보니까 그런 인물들을 설정하게 된 것 같다고.
작가는 단편마다 서로 닮은꼴의 인물을 등장시켜서 타인의 상처를 통해 내 아픔을 들여다보고 마주하게끔 한다. 제각각의 어두운 이야기들은 지극히 절망적인 듯하지만, 절망적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희망을 암시한다. 그 미약한 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문장 속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가장 지독한 어둠이 가장 확실한 새벽의 징후임을 나는 수차례 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새벽을 의심했다. 고질병을 가진 사람이 한차례 통증이 지나갈 때마다 죽음을 확신하듯, 나는 얼마 안 있어 지나가고 말 어둠이 영원할 것만 같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했다.”(어둠의 사육제, 127쪽)
“이렇게 고요해질 통증인 것을, 지난밤에는, 또 수없이 반복되었던 그 밤들에는 이런 순간을 믿지 못했었다. 마치 밤이 깊을 때마다 새벽을 믿지 못하듯이, 겨울이 올 때마다 봄을 의심하듯이 나는 어리석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여수의 사랑, 25쪽)
“빛은 몸 구석구석에 눅어 있던 습기를 증발시켰으며, 혈관을 흐르던 검붉은 어둠의 알갱이들을 잘게 부수어주었다. (…) 그 빛에는 모든 절망과 고통들을 우스꽝스럽고 하잘것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기묘한 힘이 있었다.”(붉은 닻, 284쪽)
작가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드러내지 못하는 상처를 드러내 직시하게끔 만든다. 아파서 피하기만 한다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둠을 상처를 직면하는 일은 다시 살아갈 의지를 다지는 일이다. 그것은 곧 나와의 화해이며 나 자신과 당신을 향한 사랑이라고 작가는 내게 속삭인다. 그래서 여수의 사랑이구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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